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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여성 실비아 멘데스 교과서 실린다

가주 공립학교의 인종분리 교육 정책 철폐를 끌어낸 오렌지카운티 여성 실비아 멘데스(88)의 이야기를 가주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우게 된다.   개빈 뉴섬 가주 지사는 멘데스와 웨스트민스터 교육구의 소송 과정과 결과를 공립학교의 역사, 사회과학 수업 커리큘럼에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AB 1805)에 지난 20일 서명했다.   뉴섬 주지사의 서명으로 발효된 이 법안은 오렌지카운티의 톰 엄버그(샌타애나·민주) 주상원의원과 트리 타(웨스트민스터·공화) 주하원의원이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멘데스 남매는 1943년 웨스트민스터 교육구의 17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교육구 관계자는 당시 멘데스의 부모에게 “멕시코계는 멕시칸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멘데스의 부모 곤잘로와 펠리시타스는 같은 처지에 놓인 멕시코계 네 가족과 함께 카운티 내 4개 교육구를 상대로 약 5000명의 라티노 학생을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1946년 연방법원이 1심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자 교육구 측은 항소했다. 라티노 민권단체, 미 시민자유연맹(ACLU),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원고 측을 지원하면서 재판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듬해 제9순회항소법원이 원심 판결을 확정하자 얼 워렌 가주 지사는 모든 공립학교와 공공장소에서 인종분리 정책을 폐지했고, 가주는 전국 최초로 인종분리 교육을 철폐한 주가 됐다.   멘데스 남매는 처음 입학을 시도한 지 5년이 지난 1948년, 전교생이 백인인 17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멘데스와 웨스트민스터 교육구 간 소송 결과는 1954년 연방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이사회 소송에서 ‘인종분리 교육은 비합헌적’이란 판결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 판결에 따라 전국의 흑백 학생 분리교육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성장 후 간호사가 된 멘데스는 두 딸을 입양하고 풀러턴에 살았다. 은퇴 후엔 전국 각지에서 자신과 관련된 소송이 미국에 미친 영향에 관해 강연했다.   우정국은 2007년 멘데스 관련 소송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멘데스는 2011년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2018년 버클리 통합교육구는 르 콘테 초등학교를 실비아 멘데스 초등학교로 개명했다.   웨스트민스터 시는 2022년 웨스트민스터 불러바드에 멘데스를 기리는 히스토릭 프리덤 트레일을 개통하고 멘데스의 부모 동상과 손을 잡고 등교하는 두 학생의 동상을 제막했다.   트리 타 의원은 “AB 1805 발효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고 가주의 민권 투쟁 관련 성취를 차세대에게 확실히 알려주게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임상환 기자실비아 멘데스 실비아 멘데스 웨스트민스터 교육구 멘데스 남매

2024-09-24

한영섭, 맨해튼 SWPK 갤러리 개인전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실비아 왈드포김 갤러리(SWPK: Sylvia Wald and Po Kim Gallery)는← 내년 2월 10일까지 ‘영원한 관계(Infinite Relation)’라는 전시 명으로 한영섭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갤러리 주소 417 Lafayette street 2nd floor New York, NY 10003, 웹사이트 www.SWPK.org.   동화문화원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한영섭 작가의 미국에서의 첫 기획전이자 50여 년간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는 전시로 대표작들이 출품됐다. 한영섭 작가는 한국의 오랜 전통 유산인 한지와 탁본을 사용해 한국적인 미와 자연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비아 왈드포김 갤러리는 “그는 1970년대부터 돌, 나뭇가지, 옥수수 줄기 등 소박한 자연물을 한지에 탁본하는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여러 생명의 흔적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을 추상적 패턴으로 표현해 왔다”며 “하늘과 땅을 근간으로 하는 자연의 선묘는 작가가 체험한 산천초목의 유기적인 모습과 생동감을 나타내며, 작가와 자연 간의 무한한 관계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실비아 왈드포김 갤러리는 “자연에 의지하여 조형 형태를 얻어내는 소박한 작가의 자세를 통해 자연의 숭고한 감동은 그의 화면에 고스란히 옮겨진다”며 “붓의 속도와 압력, 먹의 양을 섬세하게 조절하여 얻어진 무수한 형태와 조합은 다양한 자연의 결을 담고자 했던 작가의 지난한 세월을 반증하고, 또 자연을 재료로 하여 자연과의 관계성에서 그려지는 형상과 질서들은 곧 작가의 감각에 의해 예술로 재탄생한다”고 설명했다.   한영섭 작가는 수십년간 머물렀던 광주 지월리의 자연이 갖고 있는 소박하지만 끈질긴 생명력과 다채로움을 떠올리며,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창문 밖 큰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물결, 그리고 저녁의 금빛 노을을 통해 매일 매 순간 자연을 느끼곤 했다. 고정된 형태보다 시시각각 움직이고 변하는 자연의 형질을 다루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한영섭 작가는 1947년 평안남도 태생으로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 미술계에서 한지 화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상명대 예술대학 교수 및 학과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상명대 명예교수로 전 세계적으로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지면서 자연의 미를 한국적인 표현 방식으로 재현해 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세계 예술의 구심점인 맨해튼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삼성문화재단 등의 후원으로 최근 개최된 한국 현대적 실험미술의 지평을 소개한 대규모 전시 ‘Only the Young: Experiment Art in Korea: 1960s -1970’에 소개되며 한국 예술의 위상을 높인 바 있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한영섭 한영섭 개인전 한영섭 실비아 왈드 포김 갤러리 동화문화원 실비아 왈드 포김 갤러리 한영섭 구겐하임

2023-11-19

“이민 2·3세대 후원이 우리들의 사명” 실비아 루크 하와이주 부지사

이민 120년을 맞이한 하와이 한인들의 감회는 유달리 깊다.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해 ‘하와이’로 향했으며 이들의 눈물겨운 이민 생활이 현재 한인사회의 근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올해 이민사 120년에 한인으로는 최고위 선출직에 오른 실비아 루크(장은정) 부지사는 “뜻깊은 이민역사에 우리 모두 감사하며 2~3세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루크 부지사와의 일문일답.     -취임 후 바쁜 일정이 많았다고 들었다.     “맞다. 팬데믹 이후에 하와이를 다시 지구촌 관광 메카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년에 본격화될 활동 내용에 대한 확인 작업과 구체적인 실천방안, 예산 등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이민 1세인 어머니의 오래된 성경을 취임식에 사용해 화제가 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항상 생각해 오던 것이었다. 지금은 애틀랜타에 계시지만 취임식을 지켜보시기 위해 하와이에 오셨다. 성경 속지에는 ‘사랑하는 딸 은정에게, 사랑하는 주는 나의 힘’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이 성경은 힘겨운 이민생활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걱정을 멈추지 않고 항상 기도해주신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나 스스로도 감동이었고 다른 분들에게도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     -9살 때 이민와 1.5세로 자랐다. 이민 120년의 역사는 어떤 의미라고 보는가.     “이민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됐다는 것을 한인들 이외에는 많이 알지 못한다. 실제 한국인들은 다른 민족과 인종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가 100년 넘게 이민 행렬에 나섰으며, 단순히 해외에 나가서 생존한 것 뿐만 아니라 세계에 정치와 경제계 수많은 인물과 주요 커뮤니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지난 22일 호놀룰루 행사에는 인천시장 등 방문단이 와서 큰 행사를 했는데.     “120년 전에 약 120여 명의 이민자들이 호놀룰루로 출발했는데 이번 인천 방문단도 124명이 오셨다. 공연단도 함께와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셨다. 매우 의미깊고 알찬 행사였다. 감사할 따름이다. ”   -이민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지만 120년 전 첫 문을 열 때는 달랐을 것 같다. 어떻게 받아들이나.     “정말 그렇다. 초기 이민 선조들에게 깊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감수해야 했던 많은 것들은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이들이 척박한 땅에서 일하며 번 돈의 일부는 한국으로 되돌아가 학교(인하대학교: 인천과 하와이 조합)를 만들었으며, 독립운동을 하는 곳에도 사용됐다. 이는 우리 한국인 역사에서도 길이 남을 훌륭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지금의 한국 역사와 이민 역사의 시금석이 된 것이다.”   -한인으로서 부지사 당선과도 연관이 있는 것인가.     “당연하다. 당시 선조들은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 지금의 우리는 그 바탕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차별과 비하에 맞서 당당히 싸워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싸움이 승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아시안들, 한인들의 성공 아니겠는가. 우리 세대의 성공이 앞으로의 후손들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한인 최고위 선출직에 취임했다. 앞으로 미국 내 한인(한국인)들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보나.     “30~40년 전만 해도 한국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을 보면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예술 분야는 물론 기계 기술, 에너지 및 최첨단 기업 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전을 이뤄왔다.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며 앞으로도 이는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엔 한인들이 ‘연결 매개체’ ‘교량’ ‘민간 대사’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미국 내에서는 한인 의원들이 연방의회에 진출해 더 많은 활약을 할 것이다.”   -2023년 새해가 시작된다.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인은 창조적이다.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다. 120년의 이민역사를 축하하는 지금이 우리에게는 매우 혁신적인 시작점이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     ━   루크 부지사는 …     .1967년 12월 15일 서울 출생 .     .9살 때 하와이로 가족 이민.   .샌프란시스코대 법대 졸업 후   변호사 활동.   .1998~2013년 하와이 26,   25지구 하원 의원.   .하원 부의장, 전쟁대비위원장,     재무위원장 역임.   .11월 8일 중간선거서 부지사   당선 (67% 득표율).   .2022년 12월 5일 하와이 15대     부지사 취임.     .남편 마이클 루크와 슬하에 아들.   최인성 기자실비아 하와이 하와이 한인들 루크 부지사 이민 역사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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