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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구멍 난 스웨터

노동절에 이어서 한해를 마감하는 두 번째 명절인 추수감사절도 지났다. 오늘따라 엷은 가을 햇빛은 게으름을 피우면서 앞뜰에 머물고 있다. 지금 것도 나무 몸체에 매달려 있는 주황색 감나무 잎들은 햇빛을 받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더 외롭고 찬란해 보인다. 입동이 지난 지 이미 며칠인데, 아열대 기후인 LA는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다. 그래도 흐르는 계절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질 감 나뭇잎을 보면서, 내가 칠십 대라는 것에 생각이 머물렀다. 이심전심인지 뉴욕에 있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월화야, 네 수필 잘 읽고 있어. ‘고물상’도 공감이 가는 얘기야. 우리 나이에 쌓아 둔 것은 많고, 무엇을 정리할지 머리는 굳어져 있고….네 다른 수필 ‘대중이는 어디에 있을까’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어. 그런데…우리는 요즘 ‘비목’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고 있어. 아미 스테이지(Army Stage)라는 한국의 국군 악단이 현충원에서 부르는 것을 유튜브에 올린 것이야.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라 더 가슴에 울리네. 이 음악을 들으며 6·25 때 전사한 너의 큰오빠 생각을 많이 한단다. 묘지는 있지만, 유골이 없는 무덤, 그리고 묘지도 유골도 없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죽음을 맞은 많은 사람들…. 나도 늙었나 봐. 그리고 열심히 한글 홍보하는 너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Monica, 파이팅!”   나를 응원하는 짧은 문자에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안타까움, 억울함이 내재하여 있다. 한국 전쟁 때 3살이었을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3000마일 멀리에서, 나는 발신인(發信人)을 위로하고, 또한 응원한다. 그 발신인은 흔들리고 있던 수신인(受信人)에게 구멍 난 스웨터를 풀어서 다시 털옷을 짜고 완성하자고 한다. 내 큰오빠나, 친구의 아버님이 남기고 떠난 구멍들을 우리는 칠십 여 년 동안 열심히 메꾸어 오고 있었다.     친구가 알려 준 데로 아미 스테이지를 유튜브에서 찾아 ‘비목’이라는 노래를 들어 보았다. 이 가곡은 한명희 시인의 시에 장일남 작곡가가 곡을 붙인 것으로 1969년에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트럼펫을 불고,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젊다 못해 무척 앳되어 보였다. 아마 내 큰오빠가 세상을 마감할 때도 그랬을 것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 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나는 울었다.     ‘비목(碑木)’이란 ‘비석(碑石)’의 뒷글자, 돌이라는 뜻의 ‘석(石)’을 나무라는 뜻의 ‘목(木)’자로 바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지가 죽으면, 죽은 자를 땅에 묻어 무덤을 만들고 자리를 표시한다. 이름과 그에 관한 간단한 사항을 돌에 새겨서 무덤 앞에 세워 놓거나, 눞혀 놓는다. 그것이 비석이다. 돌 대신 나무로 망자가 묻힌 곳을 표시한 것이 비목이다.     돌이 아닌 나무를 써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장례 치를 시간이 없는 급박한 상황인 경우이거나 빈곤한 죽음일 것 같다. 이 가곡을 들으면 전쟁터에서, 죽은 전우를 급히 묻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상상된다. 전우를 묻은 구덩이에 서둘러 돌을 쌓고, 비목을 세우고 후퇴했을 것이다. 언젠가 돌아와 제대로 장례를 치러 줄 것을 약속하고 믿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을 거다. 그렇게 큰 오빠의 전사 장소에 비목이 세워졌을 것이다. 비목을 세웠던 그의 전우들은 살아남았을까.     내 나이 칠십 대. 나는 큰 오빠가 이 세상에서 머물었던 기간의 세배 정도를 살고 있다. ‘칠십 대’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품고 나와 함께 있다. 흐르듯 지나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라는 추억 가운데 엉키고 설킨,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아파하며 울었던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몇 년 전 보았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시작 부분에 ‘나이 칠십이 되니 친구의 장례식에선 이젠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별이 점점 익숙해져 간다’라는 대사가 있었다. 확인차 넷플릭스에 들어가 찾아서 다시 보았다. 은퇴한 우편집배원이 친구들의 별세에 슬퍼하지 않게 된 ‘나이 칠십’에 발레를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겪어 가는 이야기였다. 아들들과 딸, 아내, 발레 스튜디오 교수가 어림없는 일이라고 반대할 뿐만 아니라, 내어놓고 비웃기도 했다. 노인은 장래에 발레리노로서 비상하리라 믿고 있던 23세 예비생에게 수모를 잘 견디면서 발레를 배운다. 그 천재 예비생을 따라 결국 무대 위에서 비상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친구의 응원은 어깨에 메고 살아온 짐 보따리를 내려놓게 한다. 실오라기가 풀어진 부분과 방심하다 잘못 가위질을 해서 생긴 스웨터의 구멍들을 짜깁기해서 메꾸어 보려 한다. 짜깁기가 안 되면, 스웨터를 풀어서 새 스웨터를 짜면 되겠다.   류 모니카 / 수필가수필 스웨터 구멍 큰오빠 생각 나이 칠십 고향 초동친구

2023-12-07

[오늘의 생활영어] in case ; ~할 경우, ~할 때를 대비해서

(Joan is talking to her sons Eric and Paul …)     (조운이 아들 에릭과 폴에게 얘기한다 …)     Joan: So you're off to go camping.     조앤: 그럼 이제 캠핑 떠나는 거니.     Paul: Yes we are.     폴: 네.     Eric: Do we have everything in the car?     에릭: 차에 모든 것 다 실었지?     Paul: Everything is packed.     폴: 다 실었지.     Joan: Take extra sweaters in case it gets cold at night.     조앤: 밤에 추울 것 대비해서 스웨터 여벌을 가져가라.     Paul: I did.   폴: 벌써 챙겼어요.     Joan: How long are you going to be gone?     조앤: 얼마나 오래 가있는 거니?     Eric: For a week.     에릭: 일주일이요.     Paul: We'll be back next Saturday.     폴: 다음 토요일에 돌아올 거에요.     Joan: All right. Take care and have a great time. Take pictures.     조앤: 그래. 조심하고 좋은 시간 보내라. 사진도 찍고.     ━   기억할만한 표현       * to be off (to do something): (~ 하러) 떠나다     “I‘m off to the market to get dinner.” (저녁 식사 사러 전 마킷에 가요.)     * (something) is packed: (짐을) 꾸리다 채워넣다     “That bag is packed with cookies.”     (그 가방은 쿠키로 꽉 채워져있습니다.)     * to be back: 돌아오다     “She’s not here right now. She‘ll be back in about ten minutes.”     (그녀는 지금 여기 없어요. 10분 후면 돌아올 겁니다.)오늘의 생활영어 아들 에릭 car 에릭 스웨터 여벌

2023-07-11

[이 아침에] 내 쇼핑의 변천사

다시 쇼핑 시즌이다. 쇼핑에 정신이 팔렸던 때가 있었다.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짬만 나면 옷과 액세서리를 사러 다녔다. 좋은 물건 싸게 샀다고 이웃과 정보 교환까지 해가며, 쇼핑의 즐거움에 정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밀레니얼 몇 해 전 주재원인 남편 따라 잠시 영국에서 살았다. 뜻이 맞는 친구와 당시 붐을 탔던 본차이나 그릇을 사러 다녔다. 새것은 소유의 만족감으로 중고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품일 것이라는 이유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미국으로 다시 오게 되었을 때 본차이나 그릇과 장식품이 이삿짐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귀한 분들께 선물하려고 바리바리 사 온 당시 유행했던 영국산 본차이나 장미 그릇 세트, 동네 코스트코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영국보다 싼 값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사 온 새것들 대부분 미국이 더 싼 것을 알고 ‘헛짓했구나’ 싶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편의성, 효율성 그리고 외관상의 아름다움까지 고려한 새로운 생활용품은 끊임없이 주부의 마음을 흔든다. 애들 제 갈 길 가고 요리도 많이 하지도 않는 데다 외식도 잦아 크게 필요치 않다고 해도 또 수시로 이것저것 사게 된다. 시대 흐름이 그렇듯 나 역시 식료품 외에는 인터넷을 통한 구입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인터넷 구입이 편하긴 하지만, 옷이나 신발은 매장에 가서 사는 것이 리턴할 확률이 낮은 것 같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는 가볍고 따스한 질감의 캐시미어를 좋아한다. 산 지 십 년이 된 캐시미어 스웨터가 두 개 있다. 즐겨 입어선지 아니면 오래 입어선지 이음새 있는 곳에 고가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작년 이맘때쯤, 십 년 전에 샀던 그 백화점 같은 장소에서 무려 다섯 벌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샀다.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아 기분 좋게 여러 벌을 샀고, 그중 두벌은 소중한 분께 성탄 선물로 드렸다. 그런데 한 달 입어 보고 품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십 년 동안 입은 스웨터는 여태껏 매끈한데, 이번 제품은 함께 입는 옷에 털이 심하게 묻어나고 보푸라기까지 흉하게 일어났다. 내가 입은 옷은 그렇다 치고 선물 드린 분께 미안한 심정이 될 정도였다.   요즈음 물가가 장난 아니게 뛰고 있는데 값이 오르지 않았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가격을 겁나게 깎는 분이 있다. 에누리가 통하는 것을 볼 때면 내가 너무 느슨한 사람같이 느껴져 다음에는 나도 해 봐야지 마음을 다져 보곤 한다. 하지만 ‘기업이 무슨 논 팔아놓고 장사하냐’ 던 옛말처럼 이전 가격을 고수하려면 품질을 낮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왕성하던 내 쇼핑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시점이다. 쇼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정이 식어선지 쇼핑에 시간과 에너지 쓰는 것이 아깝다. 나이가 들면 체질도 바뀌는지, 예쁜 디자인이 더 많은 모조품 액세서리는 몸이 가려워 밀려나고, 옷도 신발도 편한 것만 찾는다.  필요한 쇼핑 리스트를 만들어서 나가는 편이라 충동구매는 줄었지만, 가격과 품질 양쪽의 추를 잘 맞춰야 하는 현명한 소비자의 길, 참 녹록지 않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변천사 쇼핑 쇼핑 리스트 캐시미어 스웨터 본차이나 그릇

2022-12-14

[이 아침에] 내 쇼핑의 변천사

다시 쇼핑 시즌이다. 쇼핑에 정신이 팔렸던 때가 있었다.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짬만 나면 옷과 액세서리를 사러 다녔다. 좋은 물건 싸게 샀다고 이웃과 정보 교환까지 해가며, 쇼핑의 즐거움에 정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밀레니얼 몇 해 전 주재원인 남편 따라 잠시 영국에서 살았다. 뜻이 맞는 친구와 당시 붐을 탔던 본차이나 그릇을 사러 다녔다. 새것은 소유의 만족감으로 중고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품일 것이라는 이유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미국으로 다시 오게 되었을 때 본차이나 그릇과 장식품이 이삿짐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귀한 분들께 선물하려고 바리바리 사 온 당시 유행했던 영국산 본차이나 장미 그릇 세트, 동네 코스트코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영국보다 싼 값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사 온 새것들 대부분 미국이 더 싼 것을 알고 ‘헛짓했구나’ 싶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편의성, 효율성 그리고 외관상의 아름다움까지 고려한 새로운 생활용품은 끊임없이 주부의 마음을 흔든다. 애들 제 갈 길 가고 요리도 많이 하지도 않는 데다 외식도 잦아 크게 필요치 않다고 해도 또 수시로 이것저것 사게 된다. 시대 흐름이 그렇듯 나 역시 식료품 외에는 인터넷을 통한 구입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인터넷 구입이 편하긴 하지만, 옷이나 신발은 매장에 가서 사는 것이 리턴할 확률이 낮은 것 같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는 가볍고 따스한 질감의 캐시미어를 좋아한다. 산 지 십 년이 된 캐시미어 스웨터가 두 개 있다. 즐겨 입어선지 아니면 오래 입어선지 이음새 있는 곳에 고가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작년 이맘때쯤, 십 년 전에 샀던 그 백화점 같은 장소에서 무려 다섯 벌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샀다.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아 기분 좋게 여러 벌을 샀고, 그중 두벌은 소중한 분께 성탄 선물로 드렸다. 그런데 한 달 입어 보고 품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십 년 동안 입은 스웨터는 여태껏 매끈한데, 이번 제품은 함께 입는 옷에 털이 심하게 묻어나고 보푸라기까지 흉하게 일어났다. 내가 입은 옷은 그렇다 치고 선물 드린 분께 미안한 심정이 될 정도였다.   요즈음 물가가 장난 아니게 뛰고 있는데 값이 오르지 않았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가격을 겁나게 깎는 분이 있다. 에누리가 통하는 것을 볼 때면 내가 너무 느슨한 사람같이 느껴져 다음에는 나도 해 봐야지 마음을 다져 보곤 한다. 하지만 ‘기업이 무슨 논 팔아놓고 장사하냐’ 던 옛말처럼 이전 가격을 고수하려면 품질을 낮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왕성하던 내 쇼핑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시점이다. 쇼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정이 식어선지 쇼핑에 시간과 에너지 쓰는 것이 아깝다. 나이가 들면 체질도 바뀌는지, 예쁜 디자인이 더 많은 모조품 액세서리는 몸이 가려워 밀려나고, 옷도 신발도 편한 것만 찾는다.  필요한 쇼핑 리스트를 만들어서 나가는 편이라 충동구매는 줄었지만, 가격과 품질 양쪽의 추를 잘 맞춰야 하는 현명한 소비자의 길, 참 녹록지 않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변천사 쇼핑 쇼핑 리스트 캐시미어 스웨터 본차이나 그릇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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