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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슈베르트 ‘마왕’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가곡 ‘마왕’은 괴테가 지은 서사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노래에는 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 이렇게 네 사람의 대사가 등장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목소리로 부르면 재미가 없다. 역할에 따라 목소리를 다르게 해서 불러야 훨씬 실감이 난다. 이야기 줄거리를 얘기해주는 해설자는 보통 목소리로, 아들을 달래는 아버지는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겁에 질린 아들은 높고 긴장된 목소리로, 아들을 유혹하는 마왕은 속삭이듯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마왕’에서는 노래 못지않게 피아노가 중요하다. 이 노래의 피아노 반주는 셋잇단음표로 빠르게 연주한다. 그것이 마치 힘차게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킨다. 왼손이 연주하는 낮은 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피아노 소리가 작아질 때는 어둠 속을 달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초조한 마음이, 커질 때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음산한 밤의 풍경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피아노와 노래, 시의 완벽한 결합을 통해 슈베르트는 독일 예술가곡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마왕’을 쓴 괴테는 음악을 좋아하고, 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예술적 이상은 고전주의였다. 그래서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낭만주의 음악을 싫어했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이 너무 번잡하고, 너무 시끄럽고, 툭하면 징징 짠다고 생각했다. 슈베르트의 ‘마왕’에 대한 평가도 비슷했다. 슈베르트는 ‘마왕’의 악보를 괴테에게 보냈지만 그의 반응은 차가웠다. 작품에 대한 어떤 코멘트도 없이 악보만 달랑 슈베르트에게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런 괴테도 말년에는 생각을 바꾸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마왕’을 듣고는 크게 감동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내 시를 훔쳐간 것이나 다름없어. 괘씸하게도 말이야.”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슈베르트 마왕 보통 목소리 피아노 소리 낭만주의 음악

2024-12-09

[음악으로 읽는 세상]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평생 600여 곡의 예술가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이다. 물론 그가 가곡만 작곡한 것은 아니다.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 독주곡 등 악기를 위한 곡도 많이 작곡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상(理想)은 ‘노래’이다. 슈베르트는 악기를 가지고도 노래를 부른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본질적으로 노래일진대 슈베르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악기의 특성에 따라 노래가 잘 되는 악기가 있고, 그렇지 못한 악기가 있다. 인간의 목소리는 호흡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레가토(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것)가 가능한 악기이다. 이 점은 관악기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는 호흡의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레가토 악기이다. 얼마든지 길게 레가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는 그렇지 못하다. 피아노는 해머로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일종의 타악기이다. 레가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악기라는 말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리를 지속시켜주는 페달이 발명되었지만, 그 지속력이 인간의 목소리나 관악기, 현악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피아노 속에서 최대한으로 레가토를 끌어낸다. 멜로디 라인을 유연하게, 프레이즈의 마지막 음까지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노래 부르도록 한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작품 90의 제3번이 특히 그런 곡이다. 슈베르트는 여러 곡의 즉흥곡을 썼는데, 그중에서 특히 제3번은 듣는 이에게 피아노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다. 여기서 피아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한다. 피아노곡이지만 멜로디를 인간의 목소리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른손은 멜로디를, 왼손은 반주를 연주하는데, 그 아름답고 명상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슈베르트 노래일진대 슈베르트 관악기 현악기 멜로디 라인

2024-09-09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떠나볼까,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나라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베토벤의 고장이며, 지금도 연간 4500개가량의 크고 작은 음악제와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문화 대도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초원에서 메아리쳤다. 마리아와 트랩 대령의 아이들이 춤을 추며 도레미 송을 부른 곳은 미라벨 정원. 미라벨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정직한 이름 그대로 궁전과 정원 모두 바로크 양식의 대리석 건물과 조각상 사이로 화려한 꽃들이 한껏 만발해 아름다움을 뽐낸다.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신동 볼프강 모차르트의 고향이어서 도시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모차르트가 태어나 17세까지 살았던 생가는 도시의 대표 번화가인 게트라이데 거리에 위치한다. 이 거리에는 유달리 개성 넘치는 간판들이 가득한데, 문맹이 많던 중세 시대에 글을 몰라도 상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림이나 조각으로 상점을 표시하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고 한다. 생가 근처에는 모차르트 광장, 모차르트의 단골 식당도 있다.   또 다른 랜드마크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이다. 역사상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난공불락의 성은 9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시 경관이 환상적이어서 잘츠부르크 내 '인생샷 맛집'으로 통한다.   문화예술 성지순례는 오랫동안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에서 계속된다. 비엔나야말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를 비롯하여 하이든,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브람스, 말러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모두 거쳐간 도시다.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의 성 슈테판 대성당은 '빈의 혼'이라 불리는 명소다. 성당 이름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 슈테판에서 따왔다. 이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탑으로 올라가면 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나온다.   베토벤 하우스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다. 그가 연주하던 피아노와 편지,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이곳에서 작곡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까지 설치되어 있다.   유서 깊은 쉔부른 궁전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이다. 오스만투크르 군에 의해 본성이 파괴된 후 1696년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프로 새롭게 지어졌다. 삼위일체 상을 만든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고 이 궁전의 옅은 황금색 외벽은 일명 '쉔부른 황색'이라 불린다.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로코코 양식으로 꾸며진 실내에는 방이 1441개나 되는데, 모차르트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구혼했던 거울의 방이 특히 볼만하다.   도시 전체에 아름다운 선율이 흐를 것만 같은 비엔나의 명물이 아직 두 개 더 남았다. 바로 달콤한 비엔나커피와 호이리게다. 햇포도주에 소시지, 돼지고기, 감자, 양배추 절임 등이 곁들여지는 전통음식인 호이리게로 비엔나의 근사한 맛까지 빠짐없이 즐겨보자.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오스트리아 모차르트 모차르트 슈베르트 모차르트 광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2024-05-16

[시로 읽는 삶] 시 쓰는 인공지능

달리는 구름과 바람은/ 잠든 적이 없는 창을 때리고/ 모든 문을 열고// 마침내 사랑으로 나를 감싸도// 나는 어둠 속에서/ 나의 그대를 본다   -인공지능이 쓴 시 ‘우리의 봄은 끝났다’ 전문   챗GPT가 요즘 화재다. 카카오톡에 연결해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시도해 봤다.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편리했다. 별별 질문을 척척 답해주는 박사다. 물론 사용약관에는 OpenAI가 제공하는 답변이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경고가 들어 있기는 하다.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뉴저지에서 가볼 만 한 강은 어디인가?’ ‘뉴저지에는 가볼 만 한 강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델라웨어 강과 라만타 강이 있습니다. 델라웨어 강은 팰리세이즈 스테이트 파크 내에 위치하며, 라만타 강은 팰리세이즈네이셔널 월드 앤 스프림스 지역에 위치합니다. 두 강 모두 하이킹, 자전거 타기, 캠핑, 낚시 등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라는 답이 나왔다.   ‘밤에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 말해줘?’라고 묻자 ‘1. 베토벤 교향곡 9번, 2. 드뷔시-클레르드루나, 3. 바하-평화 칸타타, 4. 쇼팽-녹턴, 5. 라흐마니노프-전주곡 1번, 6. 비발디-사계 중 겨울, 7. 쇼스타코비치-피아노 소나타 2번, 8. 모차르트-아다지오, 9. 프랑-할리크의 노래, 10.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이라고 즉각 답을 한다.   이런 지식적인 거야 즉각 답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시를 하나 지어 달라고 해도 지체 않고 지어내는 건 뭔가.   ‘봄에 어울리는 시를 지어 줘’라고 묻자 ‘봄날이 왔다, 희망의 계절/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이 노래한다/ 어둠과 추위를 물리치고/ 봄바람이 나를 감싼다// 너도 이 봄바람처럼 부풀어 오르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날아올라라/ 희망의 빛으로 물든 이 봄/ 너의 인생도 더욱 화사해질 것이다.’라는 시를 지어낸다.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시인은 꽤 많은 시간 공을 들인다. 쓰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퇴고를 여러 번 거쳐 완성했어도 좋은 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시 한 편 완성하는데 드는 시간은 초 단위다. 아주 즉각적이고 서슴없다.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가 탄생한 것은 벌써 전이다.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 등을 읽으며 한국어를 공부했고 1만3000여 편에 달하는 시를 읽으며 작법을 배워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주제어와 명령어만 입력하면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곧바로 시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써진 시들이 ‘시를 쓰는 이유’라는 시집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시나 소설을 쓰고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게 더는 뉴스도 아니다. 신문기사는 물론 그림이나 작곡도 해내고 있어 SF적 상상력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예술과 과학의 협업, 인공지능이 예술이라는 분야에 접목되어 예술의 영역이 얼마나 넓어질지는 알 수 없겠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1만3000여 편이나 시를 읽으면서 시 작법을 공부했다니 실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더 시적 기량이 향상될 건지도 예측할 수 없겠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이 위협당하는 건 사실이리라.   그렇지만 예술이란 삶이 우려내는 향기다.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이 자아낸 색채 같은 것, 시가 함축된 문장의 조합만은 아니잖은가. 엄밀히 말해 인공지능이 쓴 시란 데이터에 의한 언어조합일 뿐이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인공지능 협업 인공지능 예술과 과학 슈베르트 교향곡

20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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