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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몸도 마음도 수선이 필요해

남편의 허리가 31인치로 줄었다.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이다. 내 일이었으면 오죽 좋으련만. 아무튼 바지 여섯장의 수선을 맡겼다. 연변 아주머니인 린다네 수선점이다. 고쳐 입느니 새로 살까도 싶었지만 불경기엔 지출을 안 하는 것이 돈 버는 일이 아닌가?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면 그 수선비도 안 들겠지만 이젠 눈이 어두워 바느질이 어렵고, 하도 많이 해본 옷 수선이어서 지겹기도 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 돈벌이가 얼터레이션(alteration)이었다.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할 때 텍사스 오스틴의 유태인 세탁소 톱 클리너스에서 일감을 받아다가 집에서 옷 수선을 해 가계에 보탰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벌어 남편 공부 시켰다고 큰소리치며 산다. 오래된 옷이나 낡은 옷을 버리지 않고 수선해서 입는 미국인들의 습관 덕에 돈도 벌고 절약 정신도 배웠다.   린다 아줌마는 “일 없습네다”하며 허리 줄이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말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엔 옷수선점이 성업이다. 일이 밀렸다며 일주일 뒤에나 찾아가란다. 옷 수선해서 번 돈으로 연길에 번듯한 집을 한 채 더 샀다고 자랑한다. 불경기에도 실속 있는 비즈니스가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경기가 좋거나 아니거나 간에 맞지 않는 옷은 고쳐 입어야 한다. 비단 옷 뿐이랴? 고쳐야 할 것은 고쳐가며 살아야 한다.   이번 우기엔 많은 비 때문에 피해를 본 집들이 있었다. 우리 사무실도 작년에 비가 샜건만,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올해는 더욱 볼만했다. 무려 다섯 군데에 쓰레기통을 받쳐두고 빗물을 받았다. 건축회사의 사무실 광경이 그러하니 유구무언이었다. 날씨도 우중충한데 사무실에 가면 쓰레기통에 포위되어 일을 보는 격이어서 짜증이 났다.   며칠 전 한인타운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나는데 커다란 배너가 걸려있었다. ‘나를 고치소서’라고 적혀있고 그 밑에 ‘한 해를 무릎으로 시작합시다’라고 쓰여있다. 새해의 표어인 모양이다. 그걸 보니 내 마음이 급해졌다. 나도 빨리 무릎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살면서 신장도 위도 관절도 한 번씩 대 공사를 하여 몸은 대강 정비된 듯했는데 간에서 발견된 혹은 무어란 말인가? 여기저기 기도만 부탁해 놓고 정작 환자인 나 자신은 망연자실하여 멍 때리는 시간이 많다.   얼터레이션일을 놓으면서 마음도 놓아버리고 살았나 보다. 남편이 공부를 마쳤다고, 바라던 직장을 가졌다고, 시민권을 받았다고, 살림이 조금씩 펴진다고 안심하고 살았다. 그사이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았다. 많이 교만해지고 무척 이기적이 되고 갈수록 물질성향이 되었다. 내가 쓰는 글도 치열함이 줄었다.   초심을 회복하며 사는, 마음의 얼터레이션이 절실하다. 고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내 마음에서부터 먼저 일어나길 소원한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마음 수선 남편 공부 유학생 남편 사무실 광경

2023-05-15

[이 아침에] 삶의 모서리를 돌아갈 때…

아파트 9층에서 뛰어내렸는데 자동차 위에 떨어져 살았다는 뉴스가 TV를 장식했다. 그 상황을 손님이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우리 가게에서 3~4블록 떨어진 저널스퀘어 9층 아파트에서 길가에 주차된 BMW 차량에 떨어졌다. 차는 유리창이 부서지고 완전 박살 났다.     떨어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팔 하나가 부러졌다. 죽고 싶다고 외친다. 젊은 백인 청년이다. 나이도 젊고 적어도 영어는 잘할 것이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 보통 사람보다 여건이 좋은데 왜 죽고 싶었을까? 청년 속마음은 모르지만 사는 재미와 의미를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흑인 할아버지가 왔다. 낮인데도 술 냄새가 났다. 몸무게가 줄어 양복 수선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왜 바지가 헐렁하냐고 물었다. 지난해에 아내와 여동생을 코로나19로 잃었고 하나 남은 남동생이 또 병원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숨이 헉 막혔다. 내일모레가 장례식인데 양복이 맞지 않았다. 그 양복은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란다. 입어보니 지금 유행하는 옷이 아니다. 펑펑했다. 그것을 줄이면 어떠냐고 묻기에 그냥 그대로 입고 허리만 줄이자고 했다. 혹시라도 동생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못 알아보면 실망할 것 같다고 했더니 수긍했다.     그리고 울먹이며 어깨를 보여준다. 어깨에는 ‘조부(祖父)’라고 하나뿐인 손녀딸을 위해 타투를 했다. 손녀 8살 생일날 100달러를 선물로 주었더니 하나에서 백까지 손가락을 꼽으며 세더니 너무 많은 돈이라며 돌려주려고 했다면서 눈물 방울을 보인다. 일본계 손녀딸을 위해서 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인생이 급하게 커브 길에 접어들면 생활의 몸체나 마음의 몸체 따위가 일상 바깥쪽으로 훌쩍 기울어 버린다. 그러면 정신을 평소처럼 가누기가 어렵다. 경황이 없으면 마음도 마음인데 시야가 너무 흔들린다. 눈에 뵈는 게 없으면 요즘 말로 멘탈이 붕괴되기 쉽다. 그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다고 해도 차 안에 있는 한 차체의 흔들림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듯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다고 해도 이 생 안에 있는 한 생의 격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유능한 운전사라도 미동 없이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의 운전사도 마찬가지다. 차가 커브 길에 접어들 때 차창에 얼굴을 부딪히지 않으려면 차가 나아가는 방향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의 커브 길에 접어들 때 우리가 인생의 모서리에 몸이나 마음을 부딪히지 않으려면 인생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심신을 기울여야 한다. 예기치 못한 진로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는 일단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그 방향으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이 이 생 안에서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처세술 아닐까.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싶다면 생이 직선 도로에 진입했을 때 유턴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흑인 할아버지처럼 희미한 그림자를 잡고도 살아갈 의지를  찾아야 한다. 죽을 것 같지만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슬그머니 들어 올려 새로운 목적지를 발견하고 반듯한 아스팔트 길을 닦아야 한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모서리 청년 속마음 양복 수선 아파트 9층

2021-11-02

[삶의 뜨락에서] 생의 커브 길에서

아파트 9층에서 뛰어내렸는데 자동차 위에 떨어져 살았다는 뉴스가 TV를 장식했다. 그 현황을 손님이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우리 가게에서 3~4블록 떨어진 저널스퀘어 9층 아파트에서 길가에 주차된 BMW 차량에 떨어졌다. 차는 유리창이 부서지고 완전 박살 났다. 떨어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팔 하나가 부러졌다. 죽고 싶다고 외친다. 젊은 백인 청년이다. 내가 보면 백인이고 젊고 적어도 영어는 잘할 것이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 보통 사람들보다 여건이 좋은데 왜 죽고 싶었을까? 청년 속마음은 모르지만 사는 재미와 의미를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흑인 할아버지가 왔다. 낮인데도 술 냄새가 났다. 몸무게가 줄어 양복 수선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왜 바지가 헐렁하냐고 물었다. 지난해에 아내와 여동생을 코로나19로 잃었고 하나 남은 남동생이 또 병원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숨이 헉 막혔다. 내일모레가 장례식인데 양복이 맞지 않았다. 그 양복은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란다. 입어보니 지금 유행하는 옷이 아니다. 펑펑했다. 그것을 줄이면 어떠냐고 묻기에 그냥 그대로 입고 허리만 줄이자고 했다. 혹시라도 동생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못 알아보면 실망할 것 같다고 했더니 수긍했다. 그리고 울먹이며 어깨를 보여준다. 어깨에는 조부(祖父)라고 하나뿐인 손녀딸을 위해 타투를 했다. 손녀 8살 생일날 100달러를 선물로 주었더니 하나에서 백까지 손가락을 꼽으며 세더니 너무 많은 돈이라며 돌려주려고 했다면서 눈물방울을 보인다. 일본계 손녀딸을 위해서 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인생이 급하게 커브 길에 접어들면 생활의 몸체나 마음의 몸체 따위가 일상 바깥쪽으로 훌쩍 기울어 버린다. 그러면 정신을 평소처럼 가누기가 어렵다. 경황이 없으면 마음도 마음인데 시야가 너무 흔들린다. 눈에 뵈는 게 없으면 요즘 말로 멘탈이 붕괴되기 쉽다. 그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다고 해도 차 안에 있는 한 차체의 흔들림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듯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다고 해도 이 생 안에 있는 한 생의 격벽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유능한 운전사라도 미동 없이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의 운전사도 마찬가지다. 차가 커브 길에 접어들 때 차창에 얼굴을 부딪치지 않으려면 차가 나아가는 방향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의 커브 길에 접어들 때 우리가 인생의 모서리에 몸이나 마음을 부딪치지 않으려면 인생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심신을 기울여야 한다. 예기치 못한 진로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는 일단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그 방향으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이 이 생 안에서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처세술 아닐까.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싶다면 생이 직선 도로에 진입했을 때 유턴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흑인 할아버지처럼 희미한 그림자를 잡고도 살아갈 의지가 있다. 죽을 것 같지만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슬그머니 들어 올려 새로운 목적지를 발견하고 반듯한 아스팔트 길을 닦아야 한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커브 청년 속마음 양복 수선 아파트 9층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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