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아니마, 아니무스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제12장에서는 Gender Rigidity(젠더 고정관념의 법칙)를 다룬다. 우리는 누구나 남성적 속성과 여성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일부는 유전이고 일부는 반대 성의 부모가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우리에게 일관된 정체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속성들을 억누르고 우리에게 기대되는 남성적 혹은 여성적 역할에 충실하게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사고와 행동 방식이 남들이 기대하는 성 역할로 경직되어 간다. 작가는 이렇게 잃어버린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자각하고 저변에 있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끌어올림으로써 당신은 진정한 당신 자신이 될 수 있고 당신에게 맞는 성 역할을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면을 가진 온전한 존재로 태어난다. 그중에는 반대 성의 자질도 있다. 우리의 성격에는 자연히 여러 층의 깊이와 차원이 있다. 자라면서 우리는 특별한 역할을 연기해야 하고 특정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타고난 자질들을 쳐내고 다듬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우리는 성격 속의 귀중하고 풍요로운 부분을 상실한다. 연구에 의하면 남자아이의 경우 어릴 때는 오히려 여자아이보다 더 감성적이고 더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갖고 있고, 여자아이들도 모험적이고 탐험 적인 정신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어 주변 환경을 바꾸기도 한다고 한다. 스위스의 분석 심리학자 Carl Jung(1875~1961)은 인간의 깊숙한 내면에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라는 심성이 있다고 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적 심상이다. 사회화와 교육에 의해 아니마는 남성 안에 억압되어 정신의 깊은 곳에 발달하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 융은 정신적으로 발전하고 자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아니마를 알아차리고 발달시키고 포용해야 한다고 한다.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남성적 심상이다. 사회 문화적 가치를 습득하여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을 이상화하는 사회에서 아니무스가 여성 안에서 균형 있게 발달한다면 강인하고 이성적이며 적극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수백 년간 남자들은 여자를 뮤즈로 영감의 원천으로 생각해왔으나 실제로는 양성 모두에게 뮤즈는 자기 안에 있다. 당신의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와 가까워질수록 당신의 무의식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당신의 무의식 속에는 아직 활용하지 못한 창의성의 보물창고가 있다. 현대인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잠재적인 추론 능력이나 행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방식은 달라도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남녀 직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여성 정치가, 행정가, 기업 총수, 우주 비행사, 과학자들이 많고, 셰프, 디자이너, 전업주부, 가사도우미까지도 남성이 침범해오고 있다. 요즘 같은 밀레니엄 시대에는 성 역할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사내다운 남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여성스러운 면이다. 여성스러운 여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사내다운 면모다’ -수전 손택. 우스운 일화가 있다. 딸아이가 결혼 날짜를 받아 놓고 한창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내 시어머님께서 손녀딸에게 덕담하고 계셨다. “이제 네가 결혼하게 되면 혼자 살 때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혹시라도 신랑 될 사람과 의견이 달라도 따지지 말고 조신하게 네, 네, 하고 굽혀야 한다”고 하셨다. 딸아이 하는 말 “아니 왜요 할머니? 어떻게 싫은데 네, 네 해요. 난 할 말 다 할 거예요” 하며 세차게 부정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아니무스 아니마 아니마 아니무스 여성적 속성 남성적 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