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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밤을 지샐 수 없는 이유

우리 민족에게 내려오는 풍습 가운데 ‘수세(守歲)’라는 것이 있다. 수세는 설 전날인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 일을 뜻한다. 이날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지 않고 놀면서 밤을 보냈다.   어린아이들은 수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오늘은 안 자고 밤을 샐 거야”라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지낸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밤(을) 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새다’는 잘못된 표현으로 ‘새우다’를 써야 바르다.   ‘새다’는 ‘날이 밝아 오다’는 뜻을 지닌 자동사다. 자동사는 동사가 나타내는 동작이나 작용이 주어에만 미치는 동사로, 목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새우다’는 타동사로, 동작의 대상인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와 같이 조사 ‘을/를’이 붙는 목적어 뒤에서 사용된다.   정리하면 주격조사 ‘이’가 붙는 ‘밤이’ 뒤에는 ‘새다’를, 목적격조사 ‘을’이 붙는 ‘밤을’ 뒤에는 ‘새우다’를 써야 한다.   이는 ‘지새다’와 ‘지새우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밤이 지새도록 술잔을 기울였다”에서와 같이 ‘밤이’는 ‘지새다’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다”에서처럼 ‘밤을’은 ‘지새우다’와 짝을 이뤄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동사로 목적어 음력 섣달 풍습 가운데

2024-11-13

[살며 생각하며] 동포사회를 하직할까 안타까운 음력 설

오늘이 양력으로 2023년 1월 21일! 음력으로 임인년 섣달 그믐날이고 내일이 계묘년 ‘설’날이다. 양·음력 사이가 불과 22일에 불과한 경우다. 몇 년 못 가 양·음력이 바뀌어 음력 오뉴월에 흰 눈이 내리거나 추석에 파종하라는 등의 농가달력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선조들이 지혜를 발휘하여 몇 년에 한 번씩 윤달을 넣어 시간의 흐름을 조정했는데 올 2월이 이에 해당한다. 이유는 음력은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을 29.530일로 기준으로 하는데 그렇다 보니 일 년이 354.37일에 불과해 지구의 공전주기인 365.24일에 약 11일 정도 모자라면서다.   전통적으로 설의 시작은 Eve 즉 섣달 그믐날인 오늘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아침 어른들은 안방 미닫이 넘어 장롱, 서랍, 가구들은 물론 신주 옹기까지 모두 대청마루로 옮긴 뒤 작년 이후 겹겹이 쌓인 먼지, 쓰레기, 쥐똥 같은 것들을 깨끗이 쓸어낸다. 그런 뒤 방의 돗자리를 걷어 바깥 양지에 말리고 황토를 이겨 온돌 구들 틈새나 벽의 쥐구멍을 막아 침투하는 연기의 원천을 막는다.   설 명절이 사람의 축제이지만 소, 돼지, 닭 같은 가축에게도 호사다. 이날 짐승들의 침실인 마구간의 젖은 짚들이 보숭보숭한 새 이불로 바뀌고 멍석 커튼들이 달리어 엄동설한의 찬바람을 피하게 해준다. 이후 어른들은 삽과 괭이, 굵은 싸리비로 마루 밑이며 마당, 창고, 뒤뜰은 물론 사립문 넘어 동구 밖까지 장마에 드러난 돌부리와 잡풀들을 제거하면서 분주했던 낮 일과가 얼추 마무리된다. 오늘 하루 아이들 또한 발에 땀이 나게 바쁜데 주로 이웃의 빌린 돈이며 쌀, 계란은 물론 낫, 톱, 망치 같은 연장들을 반납하라는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인해서다.   이제 남은 중요행사, 가족의 목욕재계다. 산뜻하게 맞이해야 할 새해! 여름 이후 묵히다 싶이한 몸의 때를 지닌 채 설을 맞이함은 어불성설이어서다. 시설이야 헛간이나 골방에 항아리와 수세미, 비누를 비치함이 전부다. 순서는 보통 아이들부터 시작되는데 이때 어른들은 속옷 포함 입던 옷을 바깥 추위에 던져 이, 벼룩 같은 것을 동사케 하라는 통쾌한 훈수를 하신다.     목욕 후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아! 추워를 반복하며 방으로 뛰어들면 어느새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기분 좋게덮인 새 솜으로 지은 무명바지, 저고리를 꺼내어 입히시고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을에 송아지 팔아 만든 깔깔한 1000원짜리 지폐 뭉치를 꺼내 ‘돈을 많이 품고 자야 명이 길어진다’는 덕담과 함께 품에 밀어 넣어 주신다.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이자 이날의 피날레! 엿 썰기 시간이 온다.   엿을 만드는 일은 대략 자정 무렵인데 아이들이 그 시각까지잠을 안 자겠다는 다짐은 잠귀신으로 인해 대개 허언이기 일쑤다. 그리고 설날 아침! 엿 제작의 현장을 미스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향해 어른들은 “눈썹이 하얗게 휘어졌다”며 “먼저 거울부터 보라”고 놀렸던 이중고를 격은 ‘설 Eve’가 끝났다.   내일은 2600만명이 민족대이동을 한다는 수천 년 전통의 설 명절이다. 그러나 이곳 동포사회는 너무 조용하다. 추억의 설 이야기조차 전혀 공감대를 얻을 수 없는 격세지감이 시간이 가면서 우리 곁에서 ‘설’을 영영 빼앗아갈까 아쉽고 안타깝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동포사회 하직 음력 오뉴월 음력 사이 섣달 그믐날인

2023-01-20

[이 아침에] 섣달 그믐밤이 서글픈 까닭

섣달에 접어들었다. 어느새 한 해의 끝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눈물의 시대라 한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말했다. 피의 시대에서 땀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눈물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위로와 공감, 누군가 함께 흘려주는 눈물이 필요한 시대라는 얘기다.     날씨마저 쌀쌀해진 요즈음 어느 때보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때다. 이 한 해, 나는 누구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사람이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이웃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함께 울어준 적이 있는가. 울어주기는커녕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 좌절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계절 탓일까. 외롭다는 사람이 많다. 고독하다고 한다. 외로움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 소외로 생기는 것이고, 고독은 내가 나를 스스로 소외시킬 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나만 외롭고 고독할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외롭게 태어나 고독하게 살다가 혼자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시인은 산그늘도 외로워 저물녘 마을을 찾아 내려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2000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일이다. 혼자 걷는 길은 때로 외롭다. 너무 외로워 제 발자국을 벗 삼아 사막을 걸었다는 어떤 이의 말에 공감이 갔다. 그때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불러내어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골목에서 훌쩍거리는 안쓰러운 어린 나를 데려와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속에 앙금으로 남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지난 일을 사과받고 누군가에게는 용서를 빌기도 했다. 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듯 길바닥에 나를 맡기고 걸었다.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나를 맡겨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 길에서 눈보라 치는 날이 있었다. 눈이 내리는 하늘의 길은 있어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걷는 길이 바로 내 길이었다. 내 길은 내가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가볍게 걷기 위해서는 가벼워져야 한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비워야 한다. 덜어내고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홀가분하게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빈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 이 해를 열심히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뒤처진 사람도 넘어진 친구도 있고,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때.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해 함께 울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이 눈물의 시대에.     섣달이다. 이즈음 느껴오는 사람들의 정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조 30대 광해군이 재임 8년,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문제다. 책문(策問), 일종의 논술시험 문제다. 같은 문제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는 중이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그믐밤 섣달 섣달 그믐밤 문학평론가 이어령 산티아고 순례길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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