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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섣달 그믐밤이 서글픈 까닭

섣달에 접어들었다. 어느새 한 해의 끝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눈물의 시대라 한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말했다. 피의 시대에서 땀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눈물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위로와 공감, 누군가 함께 흘려주는 눈물이 필요한 시대라는 얘기다.  
 
날씨마저 쌀쌀해진 요즈음 어느 때보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때다. 이 한 해, 나는 누구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사람이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이웃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함께 울어준 적이 있는가. 울어주기는커녕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 좌절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계절 탓일까. 외롭다는 사람이 많다. 고독하다고 한다. 외로움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 소외로 생기는 것이고, 고독은 내가 나를 스스로 소외시킬 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나만 외롭고 고독할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외롭게 태어나 고독하게 살다가 혼자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시인은 산그늘도 외로워 저물녘 마을을 찾아 내려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2000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일이다. 혼자 걷는 길은 때로 외롭다. 너무 외로워 제 발자국을 벗 삼아 사막을 걸었다는 어떤 이의 말에 공감이 갔다. 그때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불러내어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골목에서 훌쩍거리는 안쓰러운 어린 나를 데려와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속에 앙금으로 남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지난 일을 사과받고 누군가에게는 용서를 빌기도 했다. 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듯 길바닥에 나를 맡기고 걸었다.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나를 맡겨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 길에서 눈보라 치는 날이 있었다. 눈이 내리는 하늘의 길은 있어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걷는 길이 바로 내 길이었다. 내 길은 내가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가볍게 걷기 위해서는 가벼워져야 한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비워야 한다. 덜어내고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홀가분하게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빈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 이 해를 열심히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뒤처진 사람도 넘어진 친구도 있고,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때.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해 함께 울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이 눈물의 시대에.  
 
섣달이다. 이즈음 느껴오는 사람들의 정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조 30대 광해군이 재임 8년,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문제다. 책문(策問), 일종의 논술시험 문제다. 같은 문제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는 중이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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