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아름다운 우리말] 잣 가지 높아 서리 모르실 님

‘잣 가지 높아 서리 모르실 님이시여!’는 신라 향가 ‘찬기파랑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헌화가에서는 붉게 핀 꽃이 나옵니다만, 남아있는 향가 중에서 나무의 종류가 나오는 것은 잣나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잣나무가 어쩌면 기록 속에 남아있는 순우리말로서는 가장 오랜 나무 이름일 수 있겠습니다.     잘 자란 잣나무는 매우 큰 키를 자랑합니다. 40m 이상 자라기도 합니다. 잣나무는 키가 크고 열매가 위쪽에 열려서 잣을 따기에 매우 고생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서리 정도의 고통은 모른다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고고함을 비유하기에는 잣나무만 한 것이 없습니다. 잣나무는 우리의 기상을 나타냅니다. 요즘에는 잣나무보다는 소나무를 주로 기상을 나타내는 비유로 쓰는데, 우리 시가인 향가에서는 최초의 비유로 잣나무를 사용한 겁니다.   잣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잣나무를 소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생각하지만 잣나무와 소나무는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바늘 모양 잎이 다섯 개씩 뭉쳐나는 것이 잣나무, 두세 개가 달린 것을 소나무로 구별합니다. 참고로 최근에 알게 된 것입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홍송(紅松)’은 소나무가 아니라 잣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중국에서는 잣나무를 홍송이라고 합니다.   잣나무에는 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잣나무는 바로 우리나라의 나무라는 점입니다. 잣나무의 학명인 ‘Pinuskoraiensis’ 자체가 한국 소나무라는 뜻입니다. 즉 ‘Korean Pine’이 바로 잣나무입니다. 중국에서는 예전에 잣나무를 ‘신라송(新羅松)’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어로 하면 ‘조선송(朝鮮松)’입니다. 어떤 학명에 Korean이 들어가면 반갑습니다. 이 땅을 원산지로 하는 식물이니 우리를 닮았고 우리가 닮은 식물입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살고 발견되는 동물은 우리보다 더 오래 이곳을 지켜왔을 겁니다.   잣나무는 건축이나 가구에 널리 쓰이는 나무입니다. 잣나무의 잣은 열매의 이름입니다. 소나무, 전나무 등과는 달리 열매도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잣기름으로 사용하거나 팥죽이나 식혜 등에 넣어서 먹기도 합니다. 또한 잣나무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피넨이라는 물질을 내뿜습니다. 잣나무 숲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겁니다. 잣나무는 나무의 모든 부분이 우리와 가까운 고마운 나무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평이 잣나무로 유명합니다. 특히 축령산(祝靈山)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잣나무가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곳에 ‘잣 향기 푸른 숲’이라는 치유의 숲이 있습니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멋진 숲길이 이어집니다. 잣나무가 뿜은 피톤치드로 말 그대로 치유가 이루어지는 숲입니다. 최근에는 입구 쪽으로 ‘무장애 나눔 길’이 생겨서 몸이 불편한 분들도 잣나무 숲 향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축령산은 이름 그대로 신령한 산이고 제사를 지내던 산이라는 점에서 서리 모르는 잣나무 숲이 참으로 어울립니다. 축령산을 오르다 보면 고려말 이성계가 사냥하며 쉬었다는 수리바위와 남이(南怡)장군이 수련을 하였다는 남이바위가 나옵니다. 쩌렁쩌렁한 기개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잣나무 숲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입니다. 한편 축령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바로 가까이 있는 서리산을 함께 오릅니다. 연계산행이라고 하는데, 산 이름이 서리산인 게 왠지 흥미롭습니다. 찬기파랑가에서 서리를 모르는 잣나무라고 하였는데 말입니다. 잣나무 숲을 지나면 서리산이 나오니 재미있습니다.       왠지 걷고 싶을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잣나무 숲을 걸어보기 바랍니다. 우리의 뿌리를 느끼며, 오랜 세월 이 땅을 지켜온 힘을 느끼며 걸음을 옮겨 보세요. 새로운 향기를 맡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잣 향기에 세속의 때를 떨구고 서리마저 이겨내는 기(氣)를 받아 보세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서리 소나무 전나무 서리 정도 신라 향가

2022-09-18

[살며 생각하며] 계란의 편에 서리

 일본 영화 ‘Drive My Car’가 지난 일요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일본의 대표적 작가인 그가 예루살렘 상을 받은 2009년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폭격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을 때였다. 언어의 귀재인 그의 수상 연설이 잊히지 않는다.   이후 ‘벽과 계란’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해진 이 연설에서 그는,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 지구의 폭격과 전투로 피해를 본 것은 아이들과 노인과 같은 일반시민들이었습니다. 저는 전쟁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높고 단단한 벽과 그 벽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있다면, 저는 언제나 계란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 어쩌면 그에게 상을 준 이스라엘 정부를 훈육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계란이 벽과 싸우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크라이나라는 작은 계란이, 거대한 조폭 같은 러시아라는 벽과 싸우고 있다. 그 와중에 어린 러시아 병사의 허기를 빵과 차로 달래주고 엄마와 영상통화까지 연결해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엄마 얼굴에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는 러시아 병사를 보며 함께 눈물을 훔치는 이 선량한 백성들】〉〕이, 맨몸으로 달려들어 군용트럭을 막고 탱크를 막으며 나라를 지키고 있다.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푸틴이라는 한 미치광이 때문에 평화롭게 살던 한 나라가 폐허가 되고 국민의 4분의 1이 난민이 되었다. 엉겁결에 평화유지군으로 알고 나왔다 상부 명령으로 전쟁에 휘말린 러시아 군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그들도 안타깝다. 그러기에, 폭격하라는 명령에 민간인이 대피하기까지 그럴 수 없다고 항명하는 대화나, 천천히 가고 있다는 말에 더 빨리 진군하라며 욕을 해대는 러시아 군 상관 소리를 도청한 파일을 들을 때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우크라이나의 재난이 지금 지구촌 사람들의 선의를 결집하고 있다. 여러 나라 수만의 용병이 우크라이나로 모여들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캐나다에서 온 한 젊은이를 보았다. 총 쏠 줄도 모르는 그, 둥그런 고무로 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고칠 수 있다며, 자신의 타이어 수리 기술로 전쟁을 돕겠다고 사지로 왔다. 난민들을 운전해주러, 음식 만들어 주러, 댄스 클래스로 위로해주러, 아니 뭐든지 하겠다고 모여드는 사람들. 집을 개방해 15명의 난민을 품어 준 혼자 살던 루마니아 할머니가 구글 번역 앱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대화하며 웃는 모습은 눈물 나도록 정겹다.     폐허가 된 마을에, 텅 빈 호텔에, 피란민으로 북적대는 기차역에,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바이올린 소리도 들린다. 전쟁 통에도 피아노를 광장에 내놓고, 대피소에서도 콘서트를 열면서 음악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이 나라, 방공호에서 의자에 올라가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용기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영화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부르는 어밀리아의 영상은 이미 수천만 번 조회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정말 멋진 국민이다. 그 대통령에 그 국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3월 18일 도쿄 FM 라디오 방송 일일 디제이로 나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Never Die Young’ ‘Imagine’ 같은 음악들을 해석과 더불어 틀어주며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수도 키이우 시내 진입을 막아낸 데 이어, 리조트 시티인 오데사도 탈환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아침이다. 한 달이 넘도록, 계란이 바위를 막아내고 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계란 서리 러시아 병사 최우수 국제영화상 우크라이나 사람들

2022-03-30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