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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계란의 편에 서리

 일본 영화 ‘Drive My Car’가 지난 일요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일본의 대표적 작가인 그가 예루살렘 상을 받은 2009년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폭격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을 때였다. 언어의 귀재인 그의 수상 연설이 잊히지 않는다.
 
이후 ‘벽과 계란’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해진 이 연설에서 그는,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 지구의 폭격과 전투로 피해를 본 것은 아이들과 노인과 같은 일반시민들이었습니다. 저는 전쟁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높고 단단한 벽과 그 벽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있다면, 저는 언제나 계란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 어쩌면 그에게 상을 준 이스라엘 정부를 훈육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계란이 벽과 싸우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크라이나라는 작은 계란이, 거대한 조폭 같은 러시아라는 벽과 싸우고 있다. 그 와중에 어린 러시아 병사의 허기를 빵과 차로 달래주고 엄마와 영상통화까지 연결해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엄마 얼굴에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는 러시아 병사를 보며 함께 눈물을 훔치는 이 선량한 백성들】〉〕이, 맨몸으로 달려들어 군용트럭을 막고 탱크를 막으며 나라를 지키고 있다.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푸틴이라는 한 미치광이 때문에 평화롭게 살던 한 나라가 폐허가 되고 국민의 4분의 1이 난민이 되었다. 엉겁결에 평화유지군으로 알고 나왔다 상부 명령으로 전쟁에 휘말린 러시아 군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그들도 안타깝다. 그러기에, 폭격하라는 명령에 민간인이 대피하기까지 그럴 수 없다고 항명하는 대화나, 천천히 가고 있다는 말에 더 빨리 진군하라며 욕을 해대는 러시아 군 상관 소리를 도청한 파일을 들을 때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우크라이나의 재난이 지금 지구촌 사람들의 선의를 결집하고 있다. 여러 나라 수만의 용병이 우크라이나로 모여들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캐나다에서 온 한 젊은이를 보았다. 총 쏠 줄도 모르는 그, 둥그런 고무로 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고칠 수 있다며, 자신의 타이어 수리 기술로 전쟁을 돕겠다고 사지로 왔다. 난민들을 운전해주러, 음식 만들어 주러, 댄스 클래스로 위로해주러, 아니 뭐든지 하겠다고 모여드는 사람들. 집을 개방해 15명의 난민을 품어 준 혼자 살던 루마니아 할머니가 구글 번역 앱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대화하며 웃는 모습은 눈물 나도록 정겹다.  
 
폐허가 된 마을에, 텅 빈 호텔에, 피란민으로 북적대는 기차역에,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바이올린 소리도 들린다. 전쟁 통에도 피아노를 광장에 내놓고, 대피소에서도 콘서트를 열면서 음악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이 나라, 방공호에서 의자에 올라가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용기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영화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부르는 어밀리아의 영상은 이미 수천만 번 조회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정말 멋진 국민이다. 그 대통령에 그 국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3월 18일 도쿄 FM 라디오 방송 일일 디제이로 나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Never Die Young’ ‘Imagine’ 같은 음악들을 해석과 더불어 틀어주며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수도 키이우 시내 진입을 막아낸 데 이어, 리조트 시티인 오데사도 탈환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아침이다. 한 달이 넘도록, 계란이 바위를 막아내고 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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