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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재난과 모두의 상실감

변종 재난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완전히 종결되기도 전 지구 저편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이로 인한 식량난도 겪었다. 그러다 최근엔 캐나다 등에서의 대규모 산불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 가운데 하와이 주 마우이 섬에서도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피해 규모가 하와이 주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아름답고 평화롭던 그 섬에서 100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고, 실종자도 1000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피해 지역을 살펴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이처람 비참한 재난은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에 따른 아픔은 개인적 슬픔을 넘어 총체적인 심리적 상실감을 초래한다. 나는 회복을 위해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사회적 지원만 아니라 아픔에 대한 영적 이해를 나누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집을 잃은 피해자들은 신적 자비와 긍휼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왜?”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때론 자신이 겪는 재난과 상실이 무슨 잘못에 대한 벌인가 자책하며 질문하게 된다.  반면 영적 이해를 통해 삶의 여정에서 만난 아픔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계기를 통해 전적으로 새로운 성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영적 대처를 통해 신적 자비와 긍휼에 대한 확신과 신성한 소망을 발견하는 영성이 도움이 된다. 이 영성에 대해 생명학자 M. 폭스는 “각자의 생의 뿌리를 유심히 보는 활동”이라 보았고,  C. 파크스는 “슬퍼함은 사랑함의 비용”이기 때문이라 보았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의 아픔은 부끄러운 일, 혹은 두려운 일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막닥들이는 재난과 상실 중에서도 신성한 소망을 재발견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우이 섬으로 보내는 경제적 후원 위에 지도자들과 관계 기관을 위한 기도를 함께 보내자. 당면한 과제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한계 너머에 있으니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사름들은 추억 가운데 ‘생명 스토리’를 말할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  만약 삶의 모든 일들이 ‘나’를 중심으로 한다면 인종주의, 우월주의, 배타주의를 없애기 어려울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 소망의 공간을 남겨주려는 꿈을 실현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성서의 기록을 본다. 주님이 빈들에서 수 천 명의 사람을 가르칠때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육신으로는 사랑하는 친족이요 영적으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대중 선지자를 상실했다. 그러나, 곧 이어 주께서 그 마음에 차오르는 비탄 중에 행하신 기사를 기록하고 있다 ? “주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시니라. 빈들이요 때가 저물었으니… 너희가 먹을것을 주라”   상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회복의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우리가 그 회복 과정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신성한 소망을 더욱 환하게 발견하고 체험하는 축복을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디렉터·미주장신교수열린광장 재난과 상실감 재난과 상실 심리적 상실감 재난과 모두

2023-08-22

[건강 칼럼] 코로나19 상실감 해소 중요

팬데믹의 장기화로 “코로나19로 지난 2년여는 잃어버린 시간, 없는 시간이 됐다”는 말을 흔하게 듣게 됐다. 코로나19로 시간의 상실, 일상의 상실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상실(Loss)의 사전적 의미는 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2. 어떤 것이 완전히 없어지거나 사라짐이다. 상실감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의 느낌이나 감정 상태를 말한다. 영어로 상실감을 뜻하는 Grief는 한국어로 깊은 슬픔, 비탄, 비통 등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정신건강의학에서는 대상을 상실에 따른 심리, 생리적 반응이라고 본다.     동반되는 반응에는 애도와 비탄이 있으며 애도(mourning)는 심리적 과정을, 비탄(grief)은 상실로 인해 수반되는 정서적 반응을 가리킨다. 상실감의 요인은 사별, 이별, 이혼, 유산, 실직, 사업실패, 은퇴, 이직, 건강악화 등처럼 관계, 역할, 상황, 환경, 신체·건강 등 다양하다. 이렇듯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상실과 상실감을 경험하게 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아지고 더 커졌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팬데믹 동안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재난이나 매우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사례가 늘었고 이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상실감은 정신건강 장애는 아니지만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상실감에 반응하는 감정과 이로 인해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충격, 고통, 슬픔, 불안감, 죄책감, 안도감 등의 감정으로 인해 수면장애와 우울증, 불안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상실은 심리학적으로 보통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과 회복의 5단계를 거치면서 해소되지만, 사람마다 어떤 단계에 머물거나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감정과 증상을 일단은 어떤 변화(상실)에 대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힘들다면 표현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것을 권한다.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를 무시, 부정, 회피하거나 숨기거나 담아두기보다는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표현, 발산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사람을 자주 만나거나 요리 등 취미생활 또는 자아실현 활동을 하는 등 각자에게 맞게 해소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수용과 회복에 이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분노, 슬픔, 우울 등의 감정이 옅어지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문의: (213)235-1210 문상웅 / 심리상담전문가 이웃케어클리닉건강 칼럼 코로나 상실감 상실감 해소 우울증 불안증 슬픔 비탄

2022-03-08

[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생사의 감각

하늘의 끝은 어디일까? 하늘의 끝 다음에는 또 무엇의 시작일까 하는 의문이 시작된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그 후 학교만 꼬박 27년을 다녔는데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때와 별 차이가 없다. 사춘기에 가졌던 철학적 명제 가운데 가장 절실했던 죽음에 대한 사유는 창조주를 알게 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면서 명쾌해졌다. 하지만 화창한 젊음 가운데 생각해보던 죽음은 아직 추상이었다. 몇 년 사이로 정말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삶의 구성원으로 생생하게 듣고 보아온 이들을 결별하게 하는 죽음은 어떤 질의 답변과도 상관없이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볼 때의 현기증과 함께 속절없는 상실감을 동반하는 적나라한 현실이다. 바람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사라지는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지켜낼 수 없다. 전날 통화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현실은 어지럼증을 동반한다.신학적으로나 임상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죽음은 또 부서진 인간 관계, 삶의 애환과 질병, 영적인 공격을 받는 상태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죽음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이간이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성경에서 죽음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하나님의 입을 통해서다. 인간에게 모든 과일을 마음대로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을 때다. 두번째로 죽음이 언급된 것은 사탄의 입을 통해서다. 뱀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을 때다. 이것이 사탄이 인간에게 한 가장 치명적이고 또 최초로 한 거짓말이다. 사탄의 최우선적인 공격 대상이 하나님이며 그 다음이 인간을 속이는 일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바로 생명을 파괴시키고 죽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첫 인간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탄의 말을 들음으로써 죽음이 현실이 되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긍휼과 자비로 첫 번째 인간인 아담이 저질러 놓은 모든 잘못을 깨끗하게 청산시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본래대로 회복시키기 위해 두번째 아담으로 예수를 인간 세상에 파견했다. 그 분을 통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부활과 영생을 증거시켰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첫 번째 인간인 아담과에 속한 사람들이다. 인간적인 성정에 따라 살고, 마음에 내키는 대로 살다 죽으면 끝이라는 허무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다. 죽으면 끝이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사람들도 흔히 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죽음은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 허무와 절망, 그리고 의욕을 상실한 채 살아가게 하는 배경이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믿는 마음 상태라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산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또 다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갖고 영원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뿐이라면 그런 사람들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고 천명한다. 믿음은 설명할 수 없어도 믿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화잍헤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세속을 초월한 지속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그분이 창조한 이 우주의 신비를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비록 죽음으로 인한 지독한 상실감 때문에 현기증과 구토, 애간장이 오그라드는 슬픔을 감당할지라도 재회의 소망이 있으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않겠는가. 하늘의 끝은 아직 헤아릴수 없어도 그것을 만든 이를 믿을 수 있다면 감사하지 않겠는가.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www.palmtreechurch.org]   최선주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생사 창조주 하나님 아담인 예수 상실감 때문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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