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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내내 꽉 찬 밀도감·몰입감으로 압도

2018년 BBC는 역대 최고의 외국어 영화 1위로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를 선정했다. 1919년 창간된 일본 최고의 영화전문지 ‘키네마 준보’는 1999년 이 영화를 ‘일본영화 올타임 베스트 순위’ 1위에 올려놓았다. ‘7인의 사무라이’는 ‘라쇼몽’과 함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올해로 개봉 70주년을 맞은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개봉 이래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로 거론되어 왔다. 간단한 구성,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만으로도 러닝타임 3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몰입감과 무언가 꽉 차 있는 듯한 밀도감, 그리고 휴머니즘에 바탕한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일본 영화의 황금기로 꼽히는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 특히 원자폭탄과 미국의 점령으로 인해 상처가 가득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또한 모든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은 미군의 점령기 동안 음악과 영화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이 시대에 등장한 3명의 거장 중 한 명이 구로사와 아키라다. 50년대 일본은 서구의 영화를 수입하는 나라였지만 1954년 ‘라쇼몽’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계기로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1980년 칸영화제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그의 또 다른 사무라이 영화 ‘카게무샤’가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추앙받게 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휴머니즘을 기초로 하지만 늘 일본적인 것들에서 소재를 찾는다. 그는 가부키, 사무라이와 같은 일본 문화의 아이콘들을 자주 차용하고 일본풍의 색채를 가미시켜 완전히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매그니피션트 세븐(The Magnificent Seven)’이라는 타이틀로 서구권에 소개된다. 위기에 빠진 마을에 영웅들이 나타나고 마을을 도적들로부터 구출한 후, 유유히 떠나는 내용의 ‘7인의 사무라이’는 이후 ‘황야의 7인’(1960), ‘매그니피션트 세븐’(2016, 리메이크)과 같은 대히트 서부영화들의 원작이 될 정도로 후세대 영화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봉건시대 일본의 작은 마을. 도적떼들의 끊임없는 습격으로 마을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절망에 빠진 주민들은 하루에 밥 세 끼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사무라이 칸베에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그는 사무라이 여섯 명을 더 데려온다.     사무라이는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켜 군대를 조직하고 방어벽을 구축한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계급인 농민과 전성기의 영광을 누렸던 사무라이들은 근본적으로 동화될 수 없는 갈등 관계이지만 농민들의 절박한 삶에 사무라이들은 다소의 책임의식을 느끼며 마을을 지켜 주려 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의로운 존재들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과 사무라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구로사와는 농민과 사무라이들의 관계를 통해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영화에서의 사무라이와 농민들의 모습은 이전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던 농민 계층과 사무라이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을 묘사하면서도 사무라이의 기사도 정신과 자기희생을 일본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시켰다.     그는 ‘라쇼몽’의 본질적 주제인 휴머니즘을 사무라이들의 서사로 각색하고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렸다. 약탈자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밖에는 줄 것이 없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떠돌이 칼잡이들의 이야기에 서부극, 전쟁 영화, 범죄 드라마의 방식들을 생동감 넘치는 액션과 휴머니즘적 내용으로 조화시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끌어냈고 동양적이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마지막 장면,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이 전쟁에서 죽은 동료들이 묻힌 땅에 서 있다. 밭갈이에 열중인 농부들은 이제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칸베에는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라고 말한다. 절대적인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로사와의 메시지와 함께 영화는 승리한 자들의 씁쓸한 패배감 속에서 막을 내린다.     구로사와의 사무라이들은 도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사무라이의 험한 세계를 버텨온 자들답지 않게 순수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들은 정의로운 일에 담대하게 나선다. 잃어버린 대의명분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로사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무사정신이다.     영화는 한두 명의 주인공에 치중하지 않는다. 대장 격의 사무라이 칸베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딱히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구로사와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던 미후네 토시로는 공격적이고 까불거리는 캐릭터, ‘가장 이질적인 사무라이’ 키쿠치요로 출연한다.   1988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한 구로사와는 봉준호, 박찬욱, 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뤼크 베송 등 거장들의 존경을 받는 감독이다. 구로사와의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힘의 근원은 영화를 통해 보여준 그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는 일본적인 삶의 가치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일본 영화의 틀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오늘날 K무비의 열풍은 74년 전 ‘라쇼몽’을 발표해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던  구로사와의 영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몰입감 밀도감 사무라이 영화 구로사와 감독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2024-04-17

“아시안이 만드는 맥주엔 특별함이 있다”

아시안에게 맥주는 정체성과 문화를 담아내는 도구다.   뉴욕타임스(NYT)는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맥주 양조 업계에서 아시안이 운영하는 업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맥주 양조장은 미국 내에서 2%에 불과하다”며 “그러나 아시안들은 이민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들의 유산을 반영한 맥주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뉴욕타임스는 가주 오클랜드 지역의 수제 맥주인 ‘도깨비어(Dokkaebier)’를 조명했다. 도깨비어는 이영원(사진)씨가 지난 2020년 설립한 맥주 회사다. 한국 설화에 나오는 ‘도깨비’를 접목한 브랜드부터 라벨 디자인까지 한국적인 콘셉트를 맥주에 녹여냈다.   이 대표는 “김치에서 배양균을 추출해서 사워(sour)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었다”며 “신맛을 바탕으로 고추와 생강 등을 사용한 맥주도 있다”고 말했다.   도깨비어는 고춧가루부터 오미자, 양강, 대나무 잎 등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아시안에게 친근한 맛을 통해 주류 사회로 진출 중이다.   시애틀 지역 ‘럭키 엔벨로프 브루잉’은 중국인 2세인 레이몬드 콴, 배리 챈이 설립했다. 이들은 30대 후반까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지금은 맥주를 통해 아시안에 대한 ‘모범적 소수계(model minority)’라는 인식을 맥주를 통해 타파하고 있다.   레이몬드 콴 공동대표는 “아시아계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가 묵묵히 일만 하길 바라는데 이는 소수계 콤플렉스에 의해 강화된 인식”이라며 “우리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럭키 엔벨로프 브루잉은 먼저 맥주의 맛으로만 승부했다. 지난 2015년 미국 맥주 경연 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세뱃돈 등을 넣는 중국식 붉은 봉투인 ‘홍바오’를 강조하기 위해 로고를 새롭게 만들고 십이지간을 이용한 기념 맥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는 ‘베어보틀 브루잉 컴퍼니’가 있다. 이 업체의 일본계 미국인 레스터 코가 대표도 자신의 정체성을 맥주 양조에 활용하고 있다.   코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이 사회에 최대한 동화되는 법을 배우지만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는 것은 계속되는 일이었다”며 “우롱을 이용한 맥주, 사무라이 사케 밀맥주 등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내 아시아계의 맥주 양조 역사는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994년 중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오스카 웡이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맥주 양조장을 열었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아시아계 맥주 맥주 양조장 맥주 사무라이 맥주 경연

2023-06-28

[문화산책] ‘사무라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

얼마 전 신문에 한국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와 연하장을 주고받았다는 기사가 제법 크게 실렸다. 그게 뭐 그렇게 요란하게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바람에 안도 다다오가 누구야? 라고 묻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멋진 사람의 삶을 공부하며 배우는 일은 참 즐겁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 예술가로도 그렇고, 인간으로도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열심히 살아라, 그 긴장감을 생의 마지막까지 유지해갈 내적인 힘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길을 잃거나 좌절로 고통받는 일이 생긴다면, 아름답고 든든한 고향의 풍경으로 되돌아갔으면 한다. 그곳에는 당신이라는 사람의 뿌리가 있을 테니.”   안도 다다오가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에게 주는 말이다. 안도 다다오를 배우고 닮고 싶은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를 꼽는다면, 독학으로 확고한 자기 세계를 세워 세계 정상에 오른 집념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독학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개성이었을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지독하게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독종’이다. 그의 삶과 건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 ‘사무라이 건축가’일 정도다.   널리 알려진 대로, 안도 다다오는 특유의 철학과 개성적 조형미를 담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계 곳곳에 세웠다. ‘물의 교회’ ‘빛의 교회’ ‘물의 절’ ‘지추(地中)미술관’ 등 노출 콘크리트 건축으로 유명하다. 한국에도 그의 작품이 7곳이나 있다. 서울 마곡동에 세워진 LG아트센터가 그의 최근 작품이다.   그에게는 현실적인 스승이나 인맥이 없다. 대학에도 가지 않았고, 선배 건축가 밑에 제자로 들어간 적도 없이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차려, 혼자서 외롭게 자기 세계를 개척했다. 안도에게 건축가의 삶을 가르쳐준 정신적 스승은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다. 그리고 여행은 그의 학교였다.   젊은 시절 권투선수, 트럭운전수, 공사장 막일꾼 등으로 살던 안도 다다오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 르 코르뷔지에의 책에 푹 빠져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온갖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헌책방에서 책을 사서 닥치는 대로 읽으며 건축 공부를 해나갔다. 르 코르뷔지에 작품집은 너무 많이 베껴서 모든 도면을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근대 건축의 명작들을 직접 보고 체험하고 싶어서 스물넷 되던 해에 배와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고 싶었지만,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혼자 세계를 떠돌았다. 로마의 판테온, 르 코르뷔지에의 롱상성당 등을 보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빛과 공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다.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로 불리는 안도 건축의 미학은 단순, 절제, 조화로 요약된다. 인간과 자연, 빛과 그림자, 절제 및 사유의 공간이 그 속에 응축돼 있는데,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은 ‘빛’이다. 그의 작품에는 늘 빛과 바람, 나무와 물이 공존한다.   그는 단 한 번도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도쿄대를 비롯해 하버드대 등 명문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말한다. “건축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정신적 건전함과 꿈을 지속할 힘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고 회고한다. 두 차례 암 선고를 받고 십이지장 등 5개의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이 역시 극복해내고, 82세의 나이에도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림자를 직시하고 그걸 뛰어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장소현 / 시인·미술평론가문화산책 사무라이 건축가 사무라이 건축가 세계적 건축가 선배 건축가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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