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내내 꽉 찬 밀도감·몰입감으로 압도
개봉 70주년 ‘7인의 사무라이’
도적떼에서 농민 구하는 떠돌이 칼잡이 영웅담
구로사와 감독의 간결한 구성·스토리, 휴머니즘
스필버그·루커스·봉준호 등 전세계 감독에 영향
올해로 개봉 70주년을 맞은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개봉 이래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로 거론되어 왔다. 간단한 구성,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만으로도 러닝타임 3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몰입감과 무언가 꽉 차 있는 듯한 밀도감, 그리고 휴머니즘에 바탕한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일본 영화의 황금기로 꼽히는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 특히 원자폭탄과 미국의 점령으로 인해 상처가 가득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또한 모든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은 미군의 점령기 동안 음악과 영화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이 시대에 등장한 3명의 거장 중 한 명이 구로사와 아키라다. 50년대 일본은 서구의 영화를 수입하는 나라였지만 1954년 ‘라쇼몽’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계기로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1980년 칸영화제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그의 또 다른 사무라이 영화 ‘카게무샤’가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추앙받게 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휴머니즘을 기초로 하지만 늘 일본적인 것들에서 소재를 찾는다. 그는 가부키, 사무라이와 같은 일본 문화의 아이콘들을 자주 차용하고 일본풍의 색채를 가미시켜 완전히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매그니피션트 세븐(The Magnificent Seven)’이라는 타이틀로 서구권에 소개된다. 위기에 빠진 마을에 영웅들이 나타나고 마을을 도적들로부터 구출한 후, 유유히 떠나는 내용의 ‘7인의 사무라이’는 이후 ‘황야의 7인’(1960), ‘매그니피션트 세븐’(2016, 리메이크)과 같은 대히트 서부영화들의 원작이 될 정도로 후세대 영화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봉건시대 일본의 작은 마을. 도적떼들의 끊임없는 습격으로 마을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절망에 빠진 주민들은 하루에 밥 세 끼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사무라이 칸베에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그는 사무라이 여섯 명을 더 데려온다.
사무라이는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켜 군대를 조직하고 방어벽을 구축한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계급인 농민과 전성기의 영광을 누렸던 사무라이들은 근본적으로 동화될 수 없는 갈등 관계이지만 농민들의 절박한 삶에 사무라이들은 다소의 책임의식을 느끼며 마을을 지켜 주려 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의로운 존재들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과 사무라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구로사와는 농민과 사무라이들의 관계를 통해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영화에서의 사무라이와 농민들의 모습은 이전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던 농민 계층과 사무라이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을 묘사하면서도 사무라이의 기사도 정신과 자기희생을 일본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시켰다.
그는 ‘라쇼몽’의 본질적 주제인 휴머니즘을 사무라이들의 서사로 각색하고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렸다. 약탈자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밖에는 줄 것이 없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떠돌이 칼잡이들의 이야기에 서부극, 전쟁 영화, 범죄 드라마의 방식들을 생동감 넘치는 액션과 휴머니즘적 내용으로 조화시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끌어냈고 동양적이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마지막 장면,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이 전쟁에서 죽은 동료들이 묻힌 땅에 서 있다. 밭갈이에 열중인 농부들은 이제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칸베에는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라고 말한다. 절대적인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로사와의 메시지와 함께 영화는 승리한 자들의 씁쓸한 패배감 속에서 막을 내린다.
구로사와의 사무라이들은 도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사무라이의 험한 세계를 버텨온 자들답지 않게 순수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들은 정의로운 일에 담대하게 나선다. 잃어버린 대의명분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로사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무사정신이다.
영화는 한두 명의 주인공에 치중하지 않는다. 대장 격의 사무라이 칸베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딱히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구로사와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던 미후네 토시로는 공격적이고 까불거리는 캐릭터, ‘가장 이질적인 사무라이’ 키쿠치요로 출연한다.
1988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한 구로사와는 봉준호, 박찬욱, 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뤼크 베송 등 거장들의 존경을 받는 감독이다. 구로사와의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힘의 근원은 영화를 통해 보여준 그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는 일본적인 삶의 가치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일본 영화의 틀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오늘날 K무비의 열풍은 74년 전 ‘라쇼몽’을 발표해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던 구로사와의 영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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