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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과거를 직시하는 책 정리법

나이가 많을수록 물건을 살 때 남은 삶을 헤아리며 신중을 기한다. 벌이가 쪼그라든 마당에 자연스레 줄이는 소비는 청빈한 삶도 안겨줘 일거양득이다. 책 역시 돈 주고 사는 물건인데, 소비욕이 별로 없는 나는 독서 계획도 없이 책만큼은 매일 사들인다(책을 읽기 때문에 소비욕이 덜한 것일 수도 있다. 독서에 좋은 옷 같은 건 필요 없으니). 특히 1000쪽이 넘는 과학, 철학, 역사책이 꽂힌 책장을 보면 예감한다. 죽을 때까지 저 책들을 읽을 일은 아마 없을 거라고. 그래서 최근 책 정리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좀 더 과거 지향적이고 주관적으로.   책 정리의 대전제는 분야별 분류로, 관심 주제나 작가를 찾을 때 편리하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일반적인 방식이라 가끔 그 책장이 내 것이 아닌 듯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 생소함은 책 광고와 서평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입해 책 샀을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데서 기인하는 면도 있다. 자기 방에서 낯섦을 느끼는 것은 때로 유익하지만 때로는 기분을 해친다. 낯선 감정은 나 자신과 거리두기 하면서 젊은 시절 흘러넘쳤던 호기심과 열정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당시 지적 욕구가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쳤음을 일깨워준다. 피상성은 늘 우리를 괴롭힌다. 그것은 자기기만의 결과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만에서 벗어나려고 2~3년 전부터 연도별 정리를 하고 있다.   이 방법은 앞으로 읽을 책들을 위한 열망과 충동을 조금 가라앉히고, 지난날들을 되새기게 한다. 내 책장 일부는 2021년, 2022년, 2023년에 읽은 책들이 한 줄씩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분야도 주제도 제각각인 그 책들은 나름의 이야기 망을 구성한다. 단지 같은 연도에 읽혔다는 이유로 한 칸에 놓였지만,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거나 지층 속으로 깊이 내려간 고유한 질문과 사유의 계보를 드러내 준다. 내 생각에 이것은 시간을 저장하는 좋은 방법인데, 과거의 시간은 얼마나 맥락화하는가에 따라 더 잘 기억되기 때문이다.   전년도의 축적은 이듬해의 반박과 도약의 좋은 토대가 되어준다. 지난해 나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글의 구조가 갖는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 책을 읽으면 독자는 작가가 구축한 구조에 붙들려 감탄하게 되는데, 이는 글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늘 강조하는 점으로, 조지 손더스 역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체호프 글 구조의 ‘무서움’(탁월함)을 언급한다. 하지만 올해 나는 구조를 파괴하고 무정형으로 쓰인 뒤라스의 『물질적 삶』과 배수아의 『작별들 순간들』을 읽었다. 뒤라스는 “이 책엔 시작과 끝이 없고, 중간도 없다. 어느 책이든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이 맞는다면, 이 책은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놀라운 건 뒤라스의 의도와 달리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떠도는 시간의 공기가 독자를 북돋운다는 점이다. 즉 그 공기는 읽는 이의 마음속에 스며 안개 뭉치 같은 것을 형성하고 느낌을 강화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열도록 돕는다.   지난해 내 책꽂이의 절반은 소설로 채워졌다. 하지만 올해는 소설보다 역사와 철학책을 주로 읽고 있다. 한 분야를 집중해서 보면 그쪽 작가들의 작법이 짐작되곤 한다. 두 해쯤 SF소설에 빠졌지만, 유사하게 변주되는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 상상력에서 다른 미래를 엿보기 힘들었다. 도약하는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며 지금 관심사는 다시 오랜 시간 축적된 연구와 역사적 세부 사항으로 향하게 됐다. 로스 킹의 『피렌체 서점 이야기』는 등장인물과 가문 이름 하나하나가 책과 지식을 향한 욕망과 분투를 되새기게 하는, 지적 집적의 아름다운 총체성이다. 이 책은 모든 장면이 세부를 파고들도록 자극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또 올 한 해 동안 독파하려고 계획한 『하이데거 극장』(전 2권)은 1600여 쪽이라 부담되지만, 철학의 계보를 좇으며 인식론과 인식론 너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어떤 분야가 약간 정체된 듯 보일 때 독자가 변신을 꾀할 수 있는 대안적 출구는 늘 마련돼 있으며, 좋은 책은 꼭꼭 씹어서 앎이 삶이 되는 지점까지 나가도록 격려한다.   지나온 세월은 좁아진 혈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매해 읽어온 책들의 방향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남은 생이 30년이라면 나 같은 독자는 30칸 정도의 책꽂이를 간신히 채울 것이다. 30칸이면 작은 방 벽면 하나 차지하는 책장밖에 안 되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분야별 효율성과 효용성보다 자신을 직시하게 하는 방식으로 매년 책꽂이를 채우다 보면 비로소 나란 사람을 알게 된다. 그 얄팍함은 나를 전시하는 증거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거의 작위성과 짜임새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 자신을 느슨하게 만드는 면도 있는데, 그것은 나름의 열매라 할 수 있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정리법 연도별 분야별 분류로 독자 사이 역사적 세부

2023-07-02

‘겉만 매니저’ 오버타임 착취 만연

한인 업소를 포함해 오버타임 지급을 회피할 목적으로 직원을 허위로 분류하는 꼼수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 따르면, 자격이 되지 않는 직원을 매니저로 승격시키거나 구인 과정에서 매니저의 업무나 권한은 없는 허울뿐인 ‘매니저’를 채용해서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오버타임을 착취하고 있다.     리앤드오 로펌 대표인 이승호 변호사는 “식당 등에서 오버타임 면제직인 매니저 직급으로 일했지만, 실제 업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면제직에 해당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오버타임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버타임 면제 조건은 ▶전문직 라이선스가 있는 경우 ▶창의적 직책 ▶행정직 중간 간부 이상이다. 단, 가주의 경우 행정직 중간 간부는 반드시 최저 임금의 2배 이상을 받아야 하며, 직원 고용, 해고, 승진과 같은 독단적 경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식당 매니저라면 가주 최저임금인 시간당 15.5달러의 2배인 31달러에 해당하는 최소 연봉 5만5000달러를 받아야 오버타임 면제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할 수 있다. 만일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매니저로서 주 60시간을 일했다면 추가 20시간을 시간당 46.5달러(31달러X1.5배)로 계산해 주당 930달러의 지급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또 “식당 매니저라도 캐시어로 업무의 반 이상을 한다면 매니저로 볼 수 없다”며 “이런 경우 고정 임금 외에 일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오버타임과 기타 모든 베네핏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앤드라이큰스 로펌의 정찬용 변호사는 “현재 노동법 소송 중 오버타임 관련 건수가 가장 많다”며 “고용주가 매니저의 권한을 주지 않으며 오버타임 등의 임금을 착취했다면 원래 지불해야 하는 금액의 최소 2~3배에 달하는 페널티가 부과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허위 직원 분류는 비한인 비즈니스 업계에도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CBS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19년 노동청은 허위 직원 분류로 임금 착취를 당한 직원에게 2억2600만 달러를 환수해 돌려줬지만, 고용주들은 환수금의 약 18배인 40억6800만 달러에 달하는 임금 착취로 이득을 취했다.   하버드 경영대와 댈러스스 텍사스 주립대의 공동 조사 보고서에서도 고용주들이 직원들의 직급을 가짜로 분류해서 오버타임 비용을 연 40억 달러 절약하고 있었다. 반면, 직원들은 허위 분류로 13%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허위 직급 분류에 따른 임금 착취 소송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스타벅스, UPS 등이 현재 다수의 ‘임금 착취’ 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양재영 기자 [email protected]매니저 분류로 식당 매니저 오버타임 면제직인 허위 분류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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