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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내 뜻대로 하리라

  ━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1658-1721)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 병와가곡집     ━   정치의 검은 힘     벼슬이 아무리 좋다지만 모두 벼슬만 하겠다고 나서면 농사는 누가 짓는단 말인가? 의원이 모든 병을 다 고친다면 무덤들은 왜 저리 많단 말인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참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아이야, 잔 가득  술을 부어라.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인 노가재(老稼齋) 김창업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자 문인이다. 그는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에 봉하려는 숙종에 반대하다 사사(賜死)되는 아버지를 보며 벼슬에 뜻을 접었다. 1689년에 그가 그린 스승 우암 송시열의 초상을 화공이 베낀 그림이 괴산군 화양서원에 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그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실경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12년 청 황제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형 김창집을 따라 북경을 방문했는데, 왕복 다섯 달의 대장정을 ‘노가재 연행일기(燕行日記)’로 남겼다. 일생을 출사하지 않고 은거해 전원생활을 하며 살던 그는 경종 즉위 초 왕세제(王世弟) 연잉군(후에 영조) 모함 사건에 형 창집이 연루돼 유배되자 울분을 참지 못해 병사하였다. 아무리 피해 있어도 끝내 그를 따라와서 죽음으로 몰아간 정치의 검은 힘. 형 창집은 유배지 해도(海島)에서 죽었다. 높은 벼슬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노가재 연행일기 모두 벼슬 괴산군 화양서원

2023-04-13

[시조가 있는 아침] 벼슬이 귀하다 한들 -신정하(1681∼1716)

벼슬이 귀하다 한들   이내 몸에 비길소냐 나귀를 바삐 몰아    고향으로 돌아오니  어디서 급한 비 한줄기에   출진(出塵) 행장(行裝) 씻기고   -병와가곡집   벼슬길은 벼랑길이다   그렇다. 아무리 벼슬이 귀하다 한들 내 몸에 비길 수 있겠는가? 서둘러 환로(宦路)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내린 소나기 한줄기에 내 행장의 먼지가 다 씻기는구나.   신정하는 숙종 때의 문신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신완이며, 어머니는 황해도 관찰사 조원기의 딸이다. 1715년, 조선의 언론기관에 해당하는 사간원의 간관(諫官)을 할 때 소론의 영수 윤증에 대한 소송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윤증의 제자였기에 신정하도 윤증을 옹호하다가 파직당했다. 그는 한 편 시조를 남기고 낙향했으나 병을 얻어 이내 숨졌다.   사관은 이렇게 썼다. “그는 평소에 뜻이 고요하고 소박하며 문장에 능하여 명망이 자자했는데, 한 번의 상소가 임금의 뜻을 거슬러 파직 당하고 배척 당하여 얼마 안 되어 죽으니 모두 매우 아까워했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벼슬길은 위험한 벼랑길과 같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행한 일이 정권이 바뀌면서 탄핵 당해 몸을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불나비처럼 달려드는 것이 환로요 정가(政街)다. 신정하도 그것을 알고 바로 몸을 피했으나 마음을 다스리기는 어려웠었나 보다. 당대의 천재가 서른여섯 살에 삶을 접어야 했으니….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신정하 벼슬 영수 윤증 소나기 한줄기 황해도 관찰사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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