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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벼슬이 귀하다 한들 -신정하(1681∼1716)

벼슬이 귀하다 한들  
이내 몸에 비길소냐
나귀를 바삐 몰아   
고향으로 돌아오니 
어디서 급한 비 한줄기에  
출진(出塵) 행장(行裝) 씻기고
 
-병와가곡집


 
벼슬길은 벼랑길이다
 
그렇다. 아무리 벼슬이 귀하다 한들 내 몸에 비길 수 있겠는가? 서둘러 환로(宦路)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내린 소나기 한줄기에 내 행장의 먼지가 다 씻기는구나.
 
신정하는 숙종 때의 문신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신완이며, 어머니는 황해도 관찰사 조원기의 딸이다. 1715년, 조선의 언론기관에 해당하는 사간원의 간관(諫官)을 할 때 소론의 영수 윤증에 대한 소송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윤증의 제자였기에 신정하도 윤증을 옹호하다가 파직당했다. 그는 한 편 시조를 남기고 낙향했으나 병을 얻어 이내 숨졌다.
 
사관은 이렇게 썼다. “그는 평소에 뜻이 고요하고 소박하며 문장에 능하여 명망이 자자했는데, 한 번의 상소가 임금의 뜻을 거슬러 파직 당하고 배척 당하여 얼마 안 되어 죽으니 모두 매우 아까워했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벼슬길은 위험한 벼랑길과 같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행한 일이 정권이 바뀌면서 탄핵 당해 몸을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불나비처럼 달려드는 것이 환로요 정가(政街)다. 신정하도 그것을 알고 바로 몸을 피했으나 마음을 다스리기는 어려웠었나 보다. 당대의 천재가 서른여섯 살에 삶을 접어야 했으니….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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