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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막스 베버의 고민

우리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 그 자본주의를 가장 고민하며 성찰한 사람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인데, 정작 그는 자본주의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첫째,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요구다. 노동 계급의 투쟁이 순수하게 임금 인상만을 요구하며 전개된 역사적 사례는 드물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과 태업, 공사 중단, 시설 점거, 환경 논란, 피해 보상, 기업 유치 요구, 혐오 시설 등으로 빚어지는 사회적 갈등 비용은 국민총생산의 27%(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다. 이는 삼성(21%)과 LG(7.7%) 계열사들의 매출을 다 합친 것과 같다.   둘째, 훈련되지 않은 자유 의지의 폭주다. 자코뱅 시대의 심리를 연상하게 하는 군중은 질주, 분노, 복수심, 반일, 고함, 신분 상승의 욕구, 토지·주택에 대한 갈망으로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다. 인류 역사에서 자유가 자유를 유린한 사례는 허다했다. 그들은 정의의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분노하며 질주한다. 그들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함께 요구하지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치가 공존하는 시대는 없었다. 자유·평등·박애를 함께 이루려던 프랑스혁명은 허구였다.   셋째, 자본가의 탐욕이다. 애덤 스미스의 가장 큰 실수는 끝까지 성선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장밋빛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가가 양심과 자비심에 따라 살리라고 믿었고, 인간이 재화 앞에서 얼마나 비정한지를 예견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본 것을 그는 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선량한 예언자였지 지혜로운 선지자는 아니었다. 지금의 우리처럼 돈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는 행복하지 않다. 목표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수단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막스 베버 막스 베버 사회학자 막스 자본주의 사회

2023-11-19

[이 아침에] ‘어부바!’

1970년대 말, 보수 공사를 하던 독일의 한 수도원 지하실에서 낡은 상자 하나가 발견되었다. 수북이 쌓인 먼지가 험악한 세월을 오랫동안 견뎌왔음을 보여주는 그 상자 안에는 1만5000미터에 달하는 35mm 흑백영화 필름이 들어 있었다.   놀랍게도 그 필름에는 오래전 조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필름의 주인공은 조선에 선교사로 나갔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였다. 베버 신부는 1911년 조선을 방문해 4개월간 머물며 조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조선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가 일본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조선 사람들의 일상과 풍습, 명절과 전통 예식에 이르기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을 방문하고 와서 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 조선 사람들의 특징을 품앗이로 대표되는 공동체 문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적 가치와 조상과 부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효’ 문화라고 정리했다.   조선을 향한 그의 사랑은 10여 년 후인 1925년, 두 번째 조선 방문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독일에서 영상 촬영 장비를 가져가 조선 최초의 기획 영상을 제작했다. 그가 찍은 영상은 조선의 전통과 문화, 풍경,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11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유럽 전역에서 상영됐다.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베버 신부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부모를 유난히 공경하는 ’효‘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베버 신부는 그 질문의 답을 자신이 찍은 필름에서 찾았다. 그가 찍은 영상에 나오는 조선 아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안겨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할머니의 등을 거쳐 또 다른 어른의 품으로 옮겨갔다.     부모에 대한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업어 키우면서 베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베버 신부는 조선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과 함께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나라’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붙였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안고 업어서 키우는 민족이었다. 예전에 자주 쓰던 말인데 요즘은 듣기 힘든 ‘어부바’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엄마가 아기를 업으면서 ‘어부바!’라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매달리면서 ‘어부바!’를 외쳤다.     학교를 졸업하는 자식들은 그동안 키워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업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결혼식을 올릴 때면 신랑이 신부를 업는 것은 물론이고, 짓궂은 친구들은 신부에게 신랑을 업으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부바!’는 생명을 향한 배려이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제는 자녀 세대에게 ‘효도’를 기대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자녀 세대도 문제겠지만, 자식을 업으면서 했던 ‘어부바!’라는 말이 먼저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어부바!’ 하면서 업어보자. 등에 업힌 사람의 무게가 낯설게 느껴지는 만큼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감사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조선 방문 오래전 조선 베버 신부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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