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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에서 록…영원한 반항아 '밥 딜런' 음악 여정

2005년 컨트리 음악의 반항아 쟈니 캐쉬의 전기 영화 ‘워크 더 라인(Walk the Line)’을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     이번에는 대중음악의 영원한 반항아 밥 딜런의 전기 영화를 만들었다.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은 딜런의 인생 전반을 다루지는 않는다.     1960년대 초 뉴욕의 음악 현장에 나타나 포크 뮤직의 간판스타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는 딜런의 데뷔 초기, 그의 음악적 발자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포크 음악의 메카 그리니치 빌리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음악가들의 교류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재현하는 이 영화에는 조안 바에즈, 피트 시거, 쟈니 캐쉬, 우디 거스리 등 딜런에게 영향을 준 포크 음악의 선구자들이 등장한다. 포크가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는 이른바 ‘미국 포크 음악 부흥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1951년 미네소타로부터 밥 딜런(티모시 샬라메)이라는 19세 청년이 기타 하나를 메고 뉴욕에 도착한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포크 싱어송라이터 우디 거스리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방문, 자신을 밥 딜런이라 소개하고 그 앞에서 거스리의 노래를 부른다. ‘밥 딜런 신화’의 시작이다.   이후 딜런은 그리나치 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포크록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공연과 축제의 주최자들과 끊임없이 마찰하고 음악계의 틀에 박힌 시스템에 도전한다. 그 대표적인 이벤트가 악명 높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이다.   포크록의 간판스타 딜런은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기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포크가 록이 되는 순간이다. 이에 분노한 팬들은 딜런에 대한 배신감으로 야유와 쓰레기 세례를 퍼붓는다. 당시 전기 기타는 포크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포크 뮤직의 ‘유다’가 된 딜런과 그의 혁명성을 상징하는, 세계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이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청중들에게 딜런은 유대인들에게 던진 예수의 메시지를 연상시키는 ‘Positively 4th Street’라는 곡으로 응대한다.   60년대의 미국,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딜런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않는다. 그 자신 변화를 주도한다. 아무 의미 없이 전통만을 고집하는 포크 음악의 수구성을 맹렬히 비판한다. 그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특정 범주에 가두어 두려는 주변 환경에 냉소적으로 저항한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다. 딜런의 반항은 사회적 저항이 되고 젊은이들 사이에 반전 운동으로 확대된다. 그의 노래에 담긴 반항아적 메시지는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영화는 청년기의 딜런에게 강한 영향을 준 포크 음악의 선구자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전운동을 주도했고, 하원에서의 답변 거부로 유죄판결을 받은 시거는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 삼촌 같은 따뜻함, 그리고 관대함으로 딜런이 스타로 도약하는데 큰 몫을 한다.     의회를 나서며 우디 거스리의 노래 ‘This Land is Your Land’를 즉흥 연주하는 시거의 모습에 대중은 환호한다. 캐릭터 배우 에드워드 노튼은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니될 것이 확실시된다.   영화에는 두 여인이 딜런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잔소리꾼’으로 묘사되는 실비, 그리고 조안 바에즈. 실비는 허구적 인물이지만 딜런과 동지적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수즈 로토라(2011년 타계)를 모델로 했다.     작가, 음악가, 운동가였던 로토라는 딜런이 1963년 발표한 ‘The Freewheeling Bob Dylan’의 앨범 커버에 딜런과 팔짱을 끼고 활짝 웃으며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여인이다. ‘Girl from the North Country’라는 곡의 “Once Was a True Love of Mine”이라는 가사는 바로 로토라를 지칭한 것이다.   딜런은 실비와 연인 관계에 있으면서 조안 바에즈(모니카 바바로)를 만난다. 딜런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이미 스타의 위치에 있던 바에즈는 딜런을 만나는 순간 그의 천재성에 압도된다. 두 사람은 곧 바로 사랑에 빠진다. 천사의 맑은 목소리로 영혼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바에즈는 퀘이커의 비폭력과 적극적 행동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다. 자주 맨발로 무대에 선 바에즈의 빛나는 정신은 비교적 신인인 바바로의 연기로 빛을 더한다.   바에즈와 딜런이 듀엣으로 부르는 장면들은 당연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포크 퀸과 포크 킹의 듀엣,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둘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순간이고, 그들의 울려 퍼지는 노래는 객석을 메운 관객들의 가슴에 사랑을 불어 넣는다. 듀엣의 노래를 듣는 실비조차도 두 사람의 사랑을 느끼고 조용히 무대를 떠난다.   딜런과 바에즈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두 영혼은 서로의 정신과 음악에 영향을 주며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다. 바에즈는 2023년 다큐멘터리 ‘I Am a Noise’에서 딜런이 그녀에게 정신적 영향을 주었음을 고백한다. 바에즈가 1975년 발표한 노래 ‘Diamonds and Rust’는 10년 전의 연인 딜런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올해 가장 빛나는 연기자 중 한 명인 티모시 샬라메는 밥 딜런 역을 소화하기 위해 5년간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배웠다. 그리고 노래와 대사에서 딜런의 목소리와 억양을 마스터했다. 샬라메는 딜런의 조용하고 오만한 본성을 노래로 표현한다. 노래에 자신을 쏟아 붓는 듯한 열정, 기존 사회에 대한 분노와 냉소가 딜런의 페르소나 샬라메의 노래 연기에 살아 있다. 밥 딜런과 티모시 샬라메가 동시에 청중과 관객의 박수를 받는 순간, 올해의 오스카는 당연 그의 차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샬라메가 왜 28세의 젊은 나이에 이 시대 최고의 배우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가 만약 청중의 야유를 견뎌내지 못했다면, 그의 기인적 본성, 반항아적 기질이 음악계의 타성과 타협했다면 …. 영화에 펼쳐진 60년 전 딜런의 과거에서 그의 미래를 본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스터리한 반항아다.   김정 영화평론가반항아 포크 포크 음악 간판스타 딜런 세계 대중음악사

2024-12-25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35〉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

청바지에 골초 이미지로 1950년대 젊은이의 우상  포르셰 몰다 숨진 현장엔 지금도 애틋한 추모 물결   “영원히 살 것처럼 꿈꿔라. 그리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원한 청춘 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굵고 짧게 불꽃처럼 살다 간 영화 같았던 그의 생애가 이 말 속에 다 담긴 듯싶다.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사라진 제임스 딘은 195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지독한 스피드광이기도 했던 그는 팬들의 여망을 저버리고 고작 2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할리우드의 남자 배우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는 경우는 많았지만, 제임스 딘은 이례적으로 남녀 구별 없이 두루 인기를 누렸다. 연기력도 빼어나 영화 역사 최초로 사후에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제임스 딘은 1952년도 출연한 첫 작품 ‘에덴의 동쪽’으로 무명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53년엔 ‘이유 없는 반항’과 1954년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자이언트’로 불멸의 스타가 되었다.    흰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오토바이 아니면 포르셰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제임스 딘을 흠모하지 않은 당시 젊은이들이 없었다. 지금도 오토바이와 청바지 하면 그를 떠올릴 정도로 영화계 아이콘이 되었다. 제임스 딘은 담배회사 말보로의 전속 모델이었다. 그만큼 담배를 늘 입에 물고 다녔던 골초였다.    조금만 멀리 있는 물체는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눈까지 나빴다. 물론 안경을 쓰고 다니긴 했어도 그런 눈으로 스포츠카를 몰며 스피드를 즐겼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옆을 보는 듯한 특유의 곁눈질도 시력이 나빠 생긴 버릇이었지만 나중에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외곽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불꽃 같은 한창 젊은 나이에 돈과 명예를 원 없이 거머쥐고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아깝고 원통했을까. 그가 죽고 난 뒤 그가 탔던 독일산 포르셰 550 스파이더는 불길의 상징 또는 대명사로 회자하면서 모델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   그가 숨진 현장은 캘리포니아 중가주, 포도밭 와이너리로 유명한 파소 로블스(Paso Robles)에서 46번 하이웨이 동쪽으로 27마일 지점이다. 사고는 1955년 9월 30일 오후 5시 25분경에  발생했다. 이곳은 46번과 41번 도로가 Y자 형으로 만나는 삼거리인데 46번 도로에서 달려오던 제임스 딘이 프레즈노로 가는 41번 도로로 좌회전하는 순간 46번 맞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포드 자동차와 정면충돌했다.   이 사로고 두 차량 모두 산산조각이 나며 제임스 딘은 현장에서 바로 사망했고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한쪽 다리만 부러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사고 현장 삼거리 목장 철조망에는 66년이 지난 지금도 애도하는 팬들의 애절한 슬픔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조화를 비롯해 차량 번호판, 사랑한다는 하트 모양의 태양광 전등과 촛불 등 스타는 가고 없지만, 팬들의 애석한 추모는 끊이질 않는다.   그의 데뷔작인 ‘에덴의 동쪽’의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의 생가는 사고 현장에서 125마일 북쪽에 있는 살리나스에 있다. 제임스 딘은 사망 당시 인디애나주에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캘리포니아 시골길을 왜 운전하고 지나갔을까? 필자의 추리로는 혹시 첫 번째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하늘 높은 줄 모를 인기를 얻었으니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에게 인사라도 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제임스 딘은 ‘에덴의 동쪽’에 출연할 때 소개받은 피어 안젤리라는 이탈리아 배우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부모의 결사반대로 둘의 결혼은 이뤄지지 못하고 피어 안젤리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나 그녀 역시 30대의 젊은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단명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가 죽으면서까지 마지막 한 말이 “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는 이 세상에서 제임스 딘 하나뿐이었다”고 하니 맺지 못한 사랑은 이렇게 애절하다.     이 세상 모든 남정네들이여. 당신은 피어 안젤리 같은 여인을 단 한 사람이라도 두어 봤는가?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   # 여행메모 제임스 딘 사망 현장 교차로는 현재 제임스 딘 추모 교차로(James Dean Memorial Junction)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주소는 19215 CA-46, Shandon, CA 93461. 사고 후 그의 유해는 고향 인디애나 페어마운트로 옮겨져 파크묘지(Park Cemetery)에 묻혔다.         김평식 제임스 반항아 제임스 포르셰 스포츠카 하이웨이 동쪽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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