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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8학년들의 반란

포토맥강은 애팔래치아산맥에서 발원하여 워싱턴 DC를 돌아 대서양 연안의 체서피크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665km의 강이다. 강 주변에 분위기 있는 카페나 작은 레스토랑이 많고 무엇보다 봄에는 벚꽃이 장관이다. 벚나무들은 강기슭에 허리를 꺾어 닿을 듯 말 듯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웠는데 그중에서도 뭉게구름처럼 피는 분홍색 겹벚나무는 4월 DC의 맑은 파란 색 하늘과 어울려 한 번 보고 오면 오래도록 눈앞에 아른거린다.     워싱턴 DC의 여러 언론 매체에서는 4월 초순 경부터 ‘올해의 벚꽂 만개일’을 예상해 발표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3월 늦게 시작해서 5월 말까지 벚꽃은 늘 그곳에 무리 지어 피어 있고 매해 절정기는 4월 중순 무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굳이 그 복잡한 만개 일에 맞추어 그곳을 방문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지니아 북쪽 소도시에 자리 잡은 딸의 신혼집을 늘 그 무렵에 찾았고 일정에 딸 가족과의 그날의 포토맥강 방문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으니 만개 일의 그 소란에 나도 매해 일조하는 셈이었다.   그해도 4월이 되기를 기다려 DC로 향했다. 딸은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덜레스 공항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 살 된 데이비드는 달려와 안겼고 두 살 된 앨리스는 유모차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나를 주시했다. 할머니라면 가까운 메릴랜드 집으로 자주 찾아뵈는 그랜마가 있는데 또 하나의 할머니라니. 나와 데이비드의 뜨거운 재회를 앨리스는 미동도 하지 않고 보고 있었고 내가 유모차로 다가가자 마지못해 상체를 조금 기울여 주었다.     첫 손주들이었던 두 아이를 사돈 내외는 많이 아꼈다. 주말마다 아들 내외를 집으로 불러 시간을 함께 보냈다. 데이비드가 세발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지칠 줄 모르고 타는 아이가 다칠세라 바깥사돈은 거의 두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 곁을 따라다녔다. 스윗하고 매사에 빠른 편인 데이비드에 비해 앨리스는 말도 조금 늦되고 상황을 늘 말없이 관찰하는 편이었다. 딸은 이 점이 마음에 쓰여 내게 걱정하곤 했는데 나는 차분한 앨리스가 오히려 사물에 대한 파악이 빠를 것이라 짐작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딸네 집으로 전화를 걸자 앨리스가 수화기를 들었다. 앨리스가 그랜마라고 하자 딸은 무심코 “어느 그랜마?” 했는데 놀랍게도 앨리스는 “The one you love”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받을 때 제 엄마가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하며 공손하게 응대하는 메릴랜드 할머니와  ‘하이, 맘’ 하며 심상하게 대답하는 캘리포니아 할머니. 그 두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차이를 예리한 앨리스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아득해 보이기만 하던 8학년 고지에 올라섰다. 얼떨결에 세월에 떠밀려 온 지점이어서 별다른 감회는 없었는데 여태 고분고분하던 몸이 반란을 시작했다. 먼저 오랜 비바람에 시달린 창틀이 흔들렸다. 백내장 수술과 안검하수 수술을 받았다. 긴 세월 버텨 온 치아도 어긋나기 시작해서 매달 치과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딸이 동행했다. 아직 운전도 가능하고 백인 의료인들과의 의사소통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딸이 곁에 있으면 그들은 좀 더 친절했고 조금 더 세세하게 내 증세에 관해 설명해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내 병원 진료일은 딸의 스케줄에 맞춰 정해지기 시작했고 딸은 시간을 내어 나와 병원을 오가는 날이 늘어 갔다.   이 무렵 딸의 가정에는 또 하나의 반란 세력이 움트고 있었다. 8학년이 된 앨리스의 변화였다. 그토록 스윗하던 앨리스가 학교에 다녀오면 제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프리스쿨 때부터 가깝게 지내 온 친구들과 헤어지고 캘리포니아에서의 새로운 학교생활에도 무난히 적응했었는데 이즈음 부모의 모든 질문엔 퉁명스럽게 ‘노’로 일관했고 어디든 부모와 동행하기를 거절했다. 딸은 더 가까이 다가가며 대화를 시도했는데 앨리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온  가족이 살얼음 위를 걷듯 앨리스의 기분을 살피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위는 통통한 딸의 볼을 한 번 만져보기 위해 미리 허락을 받고 어렵사리 딸의 볼에 간신히 손을 대보는 형편이었다.     저녁마다 딸의 긴 하소연이 계속되었다. 그토록 감겨 오던 앨리스가 허그도 뽀뽀도 모두 거부하자 딸은 크게 상심했다. 이 일은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딸에게는 그리 위로가 되지 않았다. 딸의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질량불변의 법칙’을 꺼내들었다. 프랑스의 과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질량불변의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Mass)’은 ‘닫힌 계의 질량은 상태 변화와 관계없이 같은 값을 유지한다’는 이론이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일생 GR의 총량은 일정해서 조금 일찍 시작하면 일찍 끝나고 어렸을 때 별일 없이 지나가면 다 커서 반드시 정해진 양 만큼 그리고 더 고약하게 반항하게끔 되어있다는 ‘GR 총량 불변의 법칙’이다.   팔순 엄마의 병원 뒷바라지와 아이의 반항기가 겹쳐 딸은 힘들게 갱년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손녀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닫히는 문 너머로 새롭게 열리고 있는 또 하나의 여성의 문. 노을 속으로 하나의 방이 스러지고 있을 때 하늘은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방을 열고 있었다.   박유니스 / 수필가수필 반란 캘리포니아 할머니 메릴랜드 할머니 반란 세력

2023-07-27

[삶의 뜨락에서] 다섯의 반란

가을 잎이 수북이 쌓이고 삭아 간다. 어수선한 뒷마당이 서늘한 계절이 되었다. 외톨박이 암탉 한 마리 어정거리다 뒤뚱이며 쫓아 온다.   털이 몹시도 빠졌다. 겨울바람이 깃털을 파헤치며 살갗을 찢을 듯 힘살이 보인다. 봄, 여름, 한 지붕 밑에 어미 없는 병아리 여섯 마리 뽀송하게 얼굴 비비며 한 몸으로 어미가 되어 여름내 매일 계란을 식탁에 올린 이쁜 짓 귀염둥이 칭찬이 자자했다. 먹고 자고 쉬엄쉬엄 땅바닥도 쪼며 흙도 뒤집어쓰며 같이 살던 여섯 형제 중 돌연 다섯의 배신? 하나의 왕따인가 위기의 상황이 왔다. 온종일 다섯 부리의 공격에, 하나의 방어는 불가항력, 먹이도, 물도, 잠자리도 허용 불가다. 이리저리 쫓기는 아픔이 오죽할까. 구석진 모퉁이에 머리를 틀어 밤과 꼼짝 않고 나 죽었소 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다. 털이 빠지고 상처투성이다. 왕따(outcast)는 집단 사회에서 이루어진다. 서로 간의 다른 점들이 있다. 그렇다. 취향과 성격의 차이에서 그리고 적극적임과 소극적임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몰아세우기 방법, 이유 불문의 무조건  왕따도 있다고 한다. 그럼 과연 이 동물의 세계에도 해당이 될까? 먹이, 잠자리 이외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들의 눈빛도, 속말도 들을 수 없고 이해도 할 수가 없으니 더 답답하고 해결책이 막연하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와 의사소통은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듣고, 보고, 말하는 전문의가 있어 의사소통의 길이 있고 해결 방법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과연 동물조련사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상대방을 충분한 이해,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데 그 속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급기야 비상대책으로 닭장 밖으로 격리했다. 아니면 출혈을 보아야 할 지경이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갇혀 있는 다섯 마리는 어떻게 할 상황이 없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왕따를 당한 한 마리 유유히 닭장 앞을 시위하며 그의 시간을 즐긴다. 먹고 마시는 것까지는 괴롭히는 자가 없으니 살판났다. 한데 잠자리는 불안정하다. 새로운 집이 없다. 마루 밑 막힌 곳에 잠자리를 폈지만,밤중의 야생동물 공격을 막을 재간이 없다. 가끔 옛집이 생각나는지 철망 앞에 가서 얼쩡거린다.     이젠 왕따가 풀렸을까 합방을 시켜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기다렸다는 듯 다섯 마리의 무차별 쪼임에 아무 대책이 없다. 다섯 마리 혼을 좀 내려고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다시 격리했다. 한 마리 행복한 바깥세상을 만끽하고 있지만 보호망이 없다. 어떻게 할까 일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숨어 밤을 지새우는 그들의 생존의 기지이다.     한 달 정도 괴로움 없는 먹이와 스트레스 없이 지냈다. 닭의 정신과 의사가 있다면 이들의 왕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해법이 없나 보다. 물론 먹이와 물은 따로 준다. 털도 많이 자랐고 살도 찌워 튼튼하게 원상복구 되었고 강한 자로 늠름해졌다. 다시 합방을 시켜보았다. 웬일인지 공격이 없다. 못살게 하지 않는다. 그럼 약자의 수모였나, 그렇다. 강자를 건들지 못하는 세계의 작은 일면을 본 듯 오랫동안 키워온 닭의 생태는 많이 알고는 있지만 정신학적 왕따의 세계가 모든 집단 사회를 이루며 사는 동물들의 세계에도 있다는 것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닭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다섯 반란 먹이 잠자리 정신학적 왕따 잠자리도 허용

20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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