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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대 가슴에 반딧불을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 두리번거리면 길을 잃는다. 긴가 민가 할 때는 처음 필이 꽂힌 데로 가면 된다. 사는 것이 힘들고 부대껴도 눈 부릅뜨고 찾아 나서면 어둠 속에서 길이 보인다. 수 천 개 수 만 개로 구비구비 돌아 종착역이 보이는 철로 옆에 서면 한 송이 코스모스가 가는 목을 흔든다. 인생이란 열차에 무임승차 했으니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선택이다.     얼마 만인가! 반딧불 꽁지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던 시간들이. 새집 지어 이사 온지 삼 년째 뒷마당에서 반딧불이 샤갈의 연인처럼 허공에 붕붕 떠 다닌다. 너무 반가워서 옛동무 만난 듯 개똥벌레인 딱정벌레의 꽁무니를 쫓아 다닌다.   보일락말락 개미만큼 작은 검정색 몸뚱아리가 깜박거리며 꽃망울처럼 오렌지 빛을 내뿜는다. 꼬리에 불을 달고 어둔 길을 잘도 날아 다닌다. 손바닥 내밀면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날아간다. 반딧불은 어둠 속에서 빛(光)으로 말(言)을 주고 받는다. 가끔씩 회전목마처럼 엉겨 붙을 때는 사랑의 말들을 속삭일까?   유년의 작은 꽃불로 반짝이던 반딧불은 도시로 이사 오고 자취를 감췄다. 미국 온 뒤 집 짓고 마당에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지만 반딧불은 유년의 강을 따라 기억의 바다에서 사라졌다. 떠나간 것들은 마른 풀잎의 추억으로 흩어진다.   30촉짜리 희미한 전구를 대들보에 매달기 전에는 해가 저물면 옥이 언니와 살평상에 누워 별이 뜨기를 기다렸다. 사립문을 지키는 수양버들이 황토빛 마당에 먹물을 풀고 더위에 지친 누렁이가 꼬리 접고 스르르 눈을 감으면 반딧불은 배 밑에 숨겨둔 색 주머니를 풀고 영롱한 빛을 내뿜는다.   ‘손강은 겨울이면 눈빛으로 책을 읽고, 여름이면 차윤은 명주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넣어 책을 비추어 공부했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 고사를 알 리 없는 삼만이 아재는 “우리 희야 글 공부 해야지”라며 빈 유리병에 반딧불을 가득 담았다.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생물인 반딧불은 빛의 세기, 깜박거리는 속도, 꺼졌다 켜지는 시간 차들을 다르게 해서 끼리끼리 서로를 알아본다.   그 동안 왜 땅만 쳐다보고 살았을까? 코발트빛 하늘과 구름을 바라본 적 없다. 미친 듯이 화랑을 경영하고 창작예술센터를 운영했다. 대형 기획전 준비로 발뒤꿈치가 갈라지고 흡입식 식사와 스트레스로 한 달에 한 번씩 급체로 시달렸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하시며 어머니는 늘 걱정하셨다.   빛이 너무 밝으면 하늘의 별을 못 본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 알지 못한다.   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작은 연못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집을 지었다. 바람의 흔적 따라 지은 집을 ‘유배지’라 부른다. 세상 인연과 먼지 떨쳐버리고 하고 싶은 일하며 산다. 비대면 온라인 비즈니스는 팔랑개비처럼 잘 돌아간다.   구상했던 작품 쓰고 하늘과 땅, 바람이 맞닿은 곳에 붓을 잡고 다시 둥지를 튼다. 밤이면 청승맞게 꺼억 꺼억 우는 개구리와 물오리들도 새벽 잠이 깬 아기 사슴이 코스모스 만발한 길을 산책할 쯤 조용해진다.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와 푸성귀가 다투어 풍성하고 과일나무는 외롭지 않게 종류별로 짝수를 심었다.   흙과 자연은 배신 때리지 않는다. 머리 숙이고 친해지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그대 향한 나의 손짓이 개똥벌레 꽁지에 매달린 작은 빛이라 해도,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대 품 속에 사랑이 움트기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반딧불 가슴 발광생물인 반딧불 반딧불 꽁지 개똥벌레인 딱정벌레

2024-06-18

[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노을·은하수·반딧불…침묵의 향연

미국 서부 애리조나와 유타 경계에는 앤틸롭캐년, 호슈 벤드, 레인보우 브릿지, 파리아캐년, 벅스킨 걸치, 더 웨이브, 화이트 포켓 등 수많은 비경이 숨어 있다.   이곳은 컬러풀 하면서도 은은한 샌드스톤 지형들로 유명하다. 호수나 강물이 흘러가면서 깊은 계곡을 만들어놓고 좁은 슬롯 계곡을 빚어 놓았는데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을 실제로 경험하고 카메라에 담노라면 감회가 색다르다.   사진이나 동영상에 관심이 있다면 이 많은 풍경들 중에서도 알스트롬 포인트(Alstrom Point)를 놓칠 수 없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 무대이기도 했던 알스트롬 포인트는 1968년 영화 '혹성 탈출'에서 주인공 찰튼 헤스튼과 동료들이 그들의 우주선이 도착한 장소가 지구인지 다른 행성인지 몰라 헤맸던 장면을 연출할 만큼 경이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알스트롬 포인트는 콜로라도강에 글렌캐년 댐(Glen Canyon Dam)이 건설되면서 샌드스톤 계곡 사이로 호숫물이 차오르면서 형성되었다.   많은 방문자가 이곳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경험한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햇살을 받으며 협곡 전체가 붉은빛을 발하는 신비한 경관은 숨막히는 감동 그 자체이다.   알스트롬 포인트로 들어가는 비포장 도로는 잘 닦여져 있고 안내판도 설치가 되어 있다. 무엇보다 구글 지도에 표시가 되므로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마지막 1마일 정도가 일반 차량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험로여서 바닥이 높은 4륜 구동 차량이 필요하다. 만약 일반 자동차로 들어간다면 1마일 전에 주차를 하고 하이킹을 해서 다녀 오면 된다.   알스트롬 포인트에서 하룻밤을 묵는 캠핑은 특별한 경험이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끓여먹고 커피나 차를 들면서 계곡을 바라보는 기분은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다.   캠핑을 하면서 노을을 즐기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아래편 호수에 정박한 보트에서 반딧불처럼 비치는 빛을 보노라면 정말 외계의 행성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 캠핑은 퍼밋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런 시설이 없으므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즐긴다. 주변은 조용하고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나 동물은 없다. 장작을 싣고 들어와 캠프파이어를 하는 그룹도 보인다. 평화로운 밤하늘을 보면서 태고적부터 아득하게 전해오는 침묵의 향연을 듣는 것 같다.   LA에서 유타주 캐납(Kanab)을 통해서 오면 알스트롬 포인트까지는 약 9시간 운전거리이다. 아침에 출발하면 알스트롬 포인트에 저녁 노을이 질 시각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계절에 따라 변수가 있으므로 해지는 시각을 미리 점검하는 게 좋다.   이곳은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시 북쪽으로 약 18마일 거리인 빅 워터(Big Water) 마을에서 비포장 도로를 23마일 운전해 들어가서 만나게 된다.   알스트롬 포인트 방문에는 바닥이 높은 차량이 꼭 필요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여분의 옷과 음식물을 준비하는 게 좋다. 또한 길이 유실되거나 닫힌 경우에 대비해 빅 워터 방문자 센터에 현지 도로 상태를 미리 알아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절대 하지말아야 할 것은 밤중에 이곳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다. 아무런 인위적인 빛이나 건물이 없는 지역이어서 어두운 밤길에 이곳을 운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다른 행성에 온 기분을 맛보고 태고적 신비를 경험하는 알스트롬 포인트는 잊지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미국 서부 유타와 애리조나 관광의 허브인 캐납과 페이지에 많은 숙박 시설이 있으며 빅 워터에도 모텔이 있다. 단지 휴가 시즌이나 연휴에는 매우 비싼데 그나마도 예약을 해야만 한다.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반딧불 은하수 저녁 노을 애리조나주 페이지 샌드스톤 계곡

2023-08-31

[아름다운 우리말] 번개와 반디

하늘에는 몇 마리의 ‘개’가 있냐는 넌센스 퀴즈가 있습니다. 하늘에 무슨 개가 있을까 하겠지만 어휘 속에 ‘개’라는 말이 들어가는 말이 있습니다. 답은 세 개입니다. 바로 무지개, 안개, 번개입니다. 생각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개가 많네요. 여기서 개는 물론 접미사입니다. 따라서 ‘무지, 안, 번’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어원을 밝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원연구가 참 어렵죠.   그래도 그중에서 번개는 특징이 분명해서 수수께끼를 풀기에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번개는 우레가 치기 전에 섬뜩한 빛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따라서 번개는 빛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풀어서 말하자면 번개는 빛인 것입니다. 번개의 번이 빛이라는 증거는 의태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의태어는 원래 갖고 있는 의미와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 의태어 ‘번쩍’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빛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번개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구름과 구름, 구름과 대지 사이에서 공중 전기의 방전이 일어나 번쩍이는 불꽃’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도 ‘번쩍’이 보이네요. 번개는 번쩍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두 말 사이에는 ‘번’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순식간에 빛이 났다가 사라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번의 ‘어’는 큰 느낌입니다. 강렬하고 두려운 느낌도 있습니다. 번개에서 우리는 빛에 해당하는 말, 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디는 번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반디는 ‘반딧불잇과의 딱정벌레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설명하자면 반딧불이가 그대로 반디인 셈입니다. 반딧불이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불’이라는 말이 없어도 이미 반디에는 빛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불은 나중에 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디 그 자체가 빛 벌레인 셈입니다.   반디가 번개와 관련이 있다는 실마리는 다시 번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번쩍과 닮은 말이 바로 ‘반짝’이기 때문입니다. 번쩍번쩍과반짝반짝이라는 말이 짝을 이룹니다. 우리말 의태어는 모음을 바꾸어서 세밀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반짝 역시 빛의 모습입니다. 즉 반짝의 반도 빛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반짝은 번쩍에 비해서 가벼운 느낌입니다. 모음 ‘아’가 가볍고 맑고 밝은 느낌을 나타냅니다. 반짝에서는 빛의 밝기가 밝다는 의미가 아니라 따뜻하고 가벼운 느낌이라는 의미입니다. 반짝과 반디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쩍과 번개가 어울리듯이 말입니다.     우리말 번개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빛입니다. 무섭기도 하지만 엄청난 힘과 에너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빠른 속도를 표현하기도 하지요. 번개처럼 빠르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반면에 반디는 여름철 풀밭을 날아다니며 반짝이는 빛입니다. 낭만적이네요. 풀숲에서 반디를 발견하고 너무나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네요. 옛날에는 반딧불에 책을 읽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달빛과 반딧불에 책을 읽으려는 마음만은 귀하게 느껴집니다. 책의 글씨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으니 혹시 읽는 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빛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비읍’으로 시작하는 말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번개와 반디, 번쩍과 반짝, 빛과 볕 등이 있습니다. 빛과 볕도 같은 어원으로 보입니다. 다만 볕에는 온도가 느껴지지요. 빛은 우리말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모습과 느낌으로 살아있습니다. 번개와 반디의 거리만큼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개 반디 우리말 번개 우리말 의태어 달빛과 반딧불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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