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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수첩] 무연고자와 라면 한 봉지

무연고자 박철언(64)씨의 삶은 늘 쓸쓸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지난 7일 세인트제임스교회 김요한 신부가 열어준 장례식은 조촐해도 온정이 가득했다. 〈본지 12월21일자 A-1면〉   노숙자, 무연고자와 같은 소외 계층은 우리 주변에 늘 있다. 중요한 건 박씨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또다시 생겨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취재가 끝나고 셸터를 운영 중인 김 신부에게 물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듣는가 했는데,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라면이랑 생필품이 필요하죠. 아, 담배도….”   김 신부는 “이 사람들 돌보는 건 사실 별것 없다”며 “일반인이 가진 ‘의지’라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데리고 살면서 사고 안 치고 잘 먹고 잘 자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인타운에서 셸터 사역을 펼친 지 15년 째다. 지금까지 약 300명 정도의 노숙자가 김 신부의 셸터를 거쳐 갔다.   그 중 살아보겠다고 의지를 갖고 취직까지 한 사례는 30명이 채 안 된다. 갱생 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나머지는 뚜렷한 목적 없이 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이들이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다른 이들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셸터에서의 삶이 답답해서 다시 거리로 뛰쳐나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신부는 돈 얘기를 꺼내는 것도 싫어했다. 오히려 재정 지원을 받는 게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돈을 받게 되면 도움을 주는 이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그보다 음식이나 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LA시의 노숙자 정책도 슬쩍 꼬집었다.   김 신부는 “노숙자 문제라는 건 돈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어쩌면 셸터가 이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현실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부와 달리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굳이 돕겠다면 셸터에 와서 여기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나 좀 해주고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들은 가족도 없지 않나. 사람 간에 어떤 인정을 느끼게 되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무연고자에게 필요한건 거창한 지원이 아니다. 라면 한 봉지, 대화 몇 마디면 충분할 수 있다. 제2의 박철언씨가 나와선 안 된다. 장열 기자취재 수첩 무연고자 봉지 노숙자 무연고자 무연고자 박철언 봉지 대화

2023-12-22

쓸쓸한 죽음…영정 사진은 주민등록증

마지막 가는 길에 영정 사진도 없었다. 무연고자 박철언(64)씨에게 살아생전 번듯한 사진 한 장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세인트제임스교회 김요한 신부(68)는 지난 7일 그를 위해 조촐한 장례식을 열어줬다. 평소 찍어둔 사진 한 장이 없어 한국 주민등록증을 영정 사진으로 대신했다. 조문객도 없다. 작은 민증 속 박씨는 액자의 휑한 여백 탓에 더욱 쓸쓸하게 비쳤다.   박씨는 지난 4일 LA한인타운 갤러리아 마켓 4층 주차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투신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LA카운티검시소에 따르면 박씨의 사인은 둔상에 의한 다발성 외상이다.     박씨에겐 가족이 없었다. 경찰은 박씨가 평소 머물렀던 곳에 연락했다. 김 신부가 운영 중인 21가 인근 한인타운내 셸터(2251 W 21st St)다. 김 신부는 “반신불수로 고생했었는데 그날 아침에 일찍 셸터를 나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그래도 셸터에 온 후 메디칼 혜택도 받고 삶이 좀 풀리는가 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가 셸터에서 생활한 지는 2년째다. 지난 2021년이었다. LA국제공항 인근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박씨는 병원 치료 후 LA총영사관에 인계됐다. 이후 총영사관 측에서 박씨를 김 신부에게 위탁하면서 셸터와 연이 닿았다.   셸터로 들어온 후 박씨는 그래도 살고자 했다. 김 신부의 도움으로 간병인 혜택도 신청했다. 극빈층이라 정부로부터 월 1000달러 남짓 생활비도 받았다. 그래도 굴곡진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김 신부는 “몸이 불편해서인지 셸터 내에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았다”며 “찾는 이도, 가족도 없으니 말없이 혼자 술을 마시면서 외롭게 지냈었다”고 말했다.   현재 김 신부가 운영하는 셸터에는 무연고자 20명이 살고 있다. 방은 다섯 개다. 한 방에서 3~4명씩 생활 중이다. 박씨도 그들 중 하나였다. 같이 살던 이들은 내심 정이 들었다. 말없이 먼저 떠난 이를 위해 장례식에서 나름 한 상을 차렸다.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그리고 소주 한 병 등을 놓았다.   셸터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종종 있는 일이다. 김 신부는 “셸터를 운영하면서 무연고자들이 떠나는 걸 워낙 자주 보다 보니 그들을 위해 마지막에 해줄 수 있는 건 조촐한 장례식뿐”이라며 “이곳 사람들은 언제라도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정을 떼고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떠난 박씨 역시 소유물은 거의 없었다. 방을 비우는 일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셸터 사람들은 덤덤하게 그렇게 또 한 명을 떠나보냈다.   ▶셸터 도움 주실 분:(323) 244-8810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무연고자 장례식 한인 무연고자 무연고자 박철언 무연고자 20명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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