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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바흐의 음악 선물

독일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이 있다.  정사에 지친 왕이 조용히, 편안하게 쉬면서 자기만의 삶을 즐겼던 이 궁전의 이름은 ‘상 수시(Sans souci)’.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이곳은 왕이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노는 사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규모도 작다. 단층 짜리 건물에 방이 열 개밖에 되지 않으니 왕궁치고는 꽤 작은 편이다. 이렇게 규모는 작지만, 외관이나 내부 장식은 매우 우아하고 여성적이다. 웅장한 바로크 양식과 대비되는 우아한 로코코 양식의 건물로 프랑스 스타일을 좋아했던 왕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상 수시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왕은 바흐에게 자기가 만든 주제를 주고 이것을 가지고 3성 푸가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바흐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3성 푸가를 연주해 보였다. 그러자 왕은 같은 주제로 이번에는 6성 푸가를 만들라고 했다.  그러자 바흐는 왕이 제시한 주제로는 6성 푸가가 불가능하며, 모든 주제가 6성 푸가에 어울리는 건 아니라는 말로 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바흐는 나중에 왕이 제시한 주제를 가지고 푸가 작품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음악의 헌정’이다.   그런데 왕은 바흐가 자기에게 바친 이 곡을 생전에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작곡가로서 바흐의 능력에 질투심을 느꼈던 것일까. 플루트 연주에 능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생전에 무려 300여곡이나 작곡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음악적 평가는 꽤 박한 편이다. 스타일이 너무 ‘구닥다리’라는 것이다. 하기야 바로크 시대가 끝나가던 시절에 옛날에 유행하던 방식으로 작곡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왕이 작곡한 이 촌스러운 곡들을 듣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몹시 궁금하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바흐 음악 제바스티안 바흐 음악 선물 음악적 평가

2024-05-13

[음악으로 읽는 세상] 학살 현장의 피아노 소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는 독일군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집 안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다른 방에서는 한 독일군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J S 바흐의 ‘영국 모음곡’ 제2번의 ‘전주곡’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독일군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 밖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살육과 자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건조한 얼굴로 피아노를 친다. 이 음악에 맞추어 유대인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이들이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은 처절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무심하고 냉정하기만 하다. 서늘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독일군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황폐하게 만드는 장면이 또 있을까.   바흐의 음악은 견고한 구성과 형식미를 자랑하는 장엄한 건축물과 같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음을 구축해 나간다. 바흐의 건반음악 악보에는 셈 여림과 같은 다이내믹을 표시하는 기호가 없는데, 이는 당시 건반 악기인 하프시코드에 이런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흐의 건반 음악은 객관적이다. 그리고 이런 객관성이 후대에 무수한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주었다. 오늘날 바흐의 건반 음악은 다이내믹의 표현이 가능한 피아노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같은 곡이라도 건조하게 칠 수도 있고, 따뜻하게 칠 수도 있다.   독일군의 바흐 연주는 건조하기 그지없다. 바로크 시대 본연의 차가운 객관성을 보여준다. 일정한 음형의 연속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음악. 바로 옆에서 수많은 사람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는데, 바흐의 음악은 애절한 멜로디 하나 없이 형식과 구성의 논리로만 전개된다. 그 무심함이 처절한 비명보다 더 끔찍하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피아노 학살 피아노 소리 건반음악 악보 바흐 연주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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