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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 세월의 꽃반지 끼고

살아온 모습 그대로 살기로 하다. 사랑하며 살기로 한다. 조금 허물어져도 나를 아끼며 다독거리기로 한다. 온갖 좋은 것 다 챙겨 먹고 죽자고 운동해도 죽을 사람은 죽는다. 태어난 날은 알 수 있지만 죽는 날은 아무도 모른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는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국고와 인력을 낭비했는데 남아있는 진시황릉의 유물과 규모를 가늠하면 진시황의 집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말년에 미신에 빠져 국고를 탕진하고 수은을 불로불사 약인 줄 알고 먹어 생명을 단축하는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된다.   모든 사무를 직접 결제했는데 매일 처리한 공문이 죽간으로 120근가량이었다니 일중독 스트레스가 심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재패한 천하를 둘러보기 위해 다섯 차례나 전국 곳곳을 순시했는데 다섯번째 순행 도중 50세의 나이로 객사한다.   황제의 죽음을 숨기려고 시신이 있는 수레 옆에 절인 생선을 운반하며 시체 썩는 냄새가 들키지 않게 했다. 평안하게 제 명에 죽는 것도 축복이다.   요즘 혼란한 시국을 보며 민초로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높은 자리에 있지 않으니 아래로 추락할 일 없고, 탐욕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니 빼앗길 일 없고, 권력을 탐하지 않았으니 수갑 찰 걱정도 없다. 남길 유산이 넉넉하지 않지만 자식들이 우애있게 지내며 의리 상할 염려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늙고 누구든 죽는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건강한 사람 늘 골골대는 사람,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한평생 살아온 생의 도표를 그려보면 그게 그거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둥근 달처럼 복스럽던 얼굴도 주름이 패이고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도 가을 오후처럼 스산해졌다. 백옥 같이 곱던 손도 힘줄이 드러난다. 거울 보다가 한심해서 “눈밑에 쳐진 주름 수술받을까” 딸에게 슬쩍 물었더니 “그냥 우아하게 늙어요”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 우아하게 나이 먹기 위해서, 어떤 건강식을 먹고, 운동은 뭘 하고, 어떤 옷으로 치장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다가 빨리 늙을 판국이다. 생긴대로 살다가 생긴대로 늙어 죽기도 힘든 세상이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중략)/ 생각난다 그 바닷가/ 그대와 둘이서 쌓았던 모래성/ 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은희 ‘꽃반지 끼고’ 중에서   젊음의 꽃밭에서 그대를 만난 시간은 축복이였다, 청춘의 날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불로초의 꽃말이다. 세월의 흔적 지우며 그대가 준 민들레 꽃반지는 시들지 않고 영원히 가슴 속에 피고 진다   나이는 필수, 행복은 선택이다. 늙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선택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나이 들면 스스로 자기 얼굴을 만든다. 나이 먹어도 밝은 얼굴 선한 인상으로 호감을 주면 ‘늙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이에 매달려서 웅크리며 초조해하지 않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모습 그대로 멋지고 우아하게 살 작정을 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꽃반지 민들레 꽃반지 자기 얼굴 일중독 스트레스

2025-01-21

흩어졌던 민들레들, 뿌리찾고 활짝

샌디에이고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계 입양인들을 위한 문화체험 행사가 지난달 27일 발보아 파크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발보아 파크 내 한국의 집 (HOK) 소속 청소년 외교관들(YA)이 직접 기획한 이 행사는 한국계 입양인들을 초청해 한국에 대해 알리고 문화체험의 자리를 제공해 뿌리의식을 고양하려는 목적에서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40명의 한국계 입양인들은 YA 학생들이 운영한 부스에서 연날리기, 배씨 댕기, 태극기, 복 주머니 매듭 팔찌, 김밥 등 우리 민족의 민속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또 YA 학생들이 연주한 애국가와 홀로 아리랑, K팝 댄스 공연을 관람했고 한국 무용가인 캐롤 정씨의 부채춤 공연을 감상한 후 K팝 댄스와 부채춤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지며 한국문화에 흠뻑 빠져든 하루를 보냈다.   황정주 HOK 회장은 "YA 청소년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예산까지 직접 마련한 이 행사는 입양인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어린 시절 멀리 흩어져 새로운 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단델리온(민들레) 데이'라고 명명됐다"며 "최근에는 한국계 입양인들이 자신의 모국에 대해 배우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 행사를 통해 입양인들이 자신의 뿌리의식을 고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YA의 회장을 맡고 있는 브라이언 리 군은 이날 행사를 시작하며 "입양인 가족과 함께 한국 문화를 배우고 공유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에 많은 입양인 가족들이 참석해 주셔서 뿌듯하다"고 말하고 "또 지난 10개월간 이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 함께 노력을 기울였던 YA 봉사자들과 부모님께도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인 입양인 협회 샌디에이고 지부 조디 올슨 차기 회장은 "처음 단델리온 데이 행사에 대해 전해들었을 때 정말 반갑고 고마웠다. 이 행사를 위해 꾸준히 지부 모임에 참석해 회원들과 친목을 쌓아가는 등 정성껏 준비해 준 YA 회장단들과 HOK 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향후 서로 많은 교류가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협회의 보드 멤버인 마이클 반 부흐트 씨는 "그동안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회원들에게 뜻깊은 행사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행사는 청소년들이 앞장서서 한국의 문화 유산을 보여주고 공유해주니 더욱 인상적"이라며 "두 문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서로 배우는 것이 많다. 이런 자리가 자주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정원 기자민들레 뿌리 입양인 가족들 한국계 입양인들 문화체험 행사

2023-09-0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민들레 꽃 한 송이 올립니다

이렇게 떠나시는군요. ‘김동길 교수 별세’ 소식을 뉴스로 들었습니다. 멀리 타국에 살아서 조문 드리지도 못합니다. 다정한 손길로 우리 아이들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모습은 추억 속에 안개꽃으로 남습니다. 나비 넥타이 매고 선생님 뒤를 아장아장 따라다니던 막내 아들도 결혼해서 애 둘을 낳았습니다.  고국 방문 때마다 한결같이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선생님. “점심 시간 맞추어 집으로 오너라. 김옥길 기념관 바로 옆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래돼 보이는 밥상에 소찬으로 차려진 식탁은 열 사람 조금 넘게 앉을 수 있어 보였는데 몇 사람 곁들어도 조금씩 비껴 앉으면 넉넉했습니다. 선생님의 밥상은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명망 있는 분들이나 제자들, 유명인사였던 것 같습니다.     각자 자기 소개 하는데 제 차례가 되면 선생님께서 “멀리 미국에서 온 아주 훌륭한 여성이야. 배울 게 많아요”라고 제 체면을 챙겨주셔습니다. 사업 하며 아이 셋 키우는 엄마 외에는 제가 내놓을 카드는 없었지요. ‘훌륭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바르게 열심히 살아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아버지란 말을 해 보지 못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추억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습니다. 선생님을 뵐 때마다 제 아버지도 저런 분이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저는 이름난 작가도 정치인도 아니고 선생님의 제자도 아닙니다. 민들레 홀씨 같이 후 불면 날아가 버릴 스쳐가는 인연인데 선생님의 세계 속으로 저를 품어 주셨습니다. 미국 강연 오신 선생님을 컬럼버스 공항에서 제 차로 모셨고 강연 후 저희 집에서 리셉션을 했습니다. 숱하게 많은 인사들이 다녀갔지만 ‘빌 붙는 것’은 제 체질이 아니라서 인연을 맺지 않았지요. ‘한국 오면 대접하겠다’는 빈 말에 넘어갈 만큼 세상물정에 어둡지 않았습니다.     “친정도 없는데 갈 때가 어디 있느냐. 꼭 날 만나러 오너라.” 명령 같은 선생님 말씀에 애들 손잡고 댁을 찿아갔습니다. 나비 넥타이 맨 꼬마 아들은 ‘나비 넥타이 할아버지’ 식탁 메뉴에 없었던, 특별히 장만한 소시지를 즐겁게 먹었습니다.   대구에서 장편소설 찔레꽃 출간 및 어머님 칠순잔치 때는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행사 다음날 아침 강연이 있으셔서 당일날 내려 오셔 밤차로 서울로 가시게 됐습니다. 행사 때 유명한 분 모시면 일정 준비와 경비를 부담하는 게 상식입니다. “비서가 알아서 할 테니 아무 염려 말고. 여긴 자네가 누릴 땅이지. 오래 떠나가 살아서 서툴 테니까 준비는 내가 하는 게 더 쉽지”라고 하신 말씀은 뜨거운 눈물로 흘려내려 제 삶을 관통하는 영혼의 화살로 남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직언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비판 글로 테러 위험이 있다는 소식 듣고 걱정돼서 편지를 올렸습니다. “내 나이에 이불 깔고 누워 앓다가 죽는 것보다 옳은 일 위해 장수처럼 말 타고 달리다가 화살 맞아 죽는 것이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민들레는 납작 엎드려 겨울 보내고 흙 한줌만 있으면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뿌리 내립니다. 짓밟혀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납니다. 민들레 홀씨 꽃말은 이별 입니다. 이름 없는 촌부에서 가장 높은 사람까지, 흩어져 살아도 수 없는 씨앗으로 뿌리 내릴 자식들에게 꽃 향기 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히 가시옵소서.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민들레 민들레 홀씨 선생님 말씀 나비 넥타이

20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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