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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문맹과 문해력 그리고 정치

문맹(文盲)이라는 말에는 차별의 감정이 들어있습니다. 글을 못 읽으면 맹인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문맹은 퇴치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말에서는 글을 못 읽으면 까막눈이라고 표현하는데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보고 있지만 못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문맹입니다. 그렇게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문해력(文解力)이라는 단어에도 차별이 느껴집니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해력은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고, 문해력이 낮은 사람은 부족한 사람 취급을 당합니다. 문해력이 언론에 등장하는 것도 대개는 이런 평가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청소년은 어른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 못 한다고 합니다. 문해력의 문제를 올바로 보려면 소통의 문제를 보아야 하는 겁니다.   문맹을 퇴치하자거나 문해력을 높이자는 문제는 정치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면 글의 문제는 정치의 방향과 관련이 됩니다. 예전의 문자는 지배층의 독점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글을 아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한자가 어려운 것은 독점의 강화로도 보입니다. 모국어가 아닌 라틴어나 한자가 주요 소통의 수단이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인만 공유하는 문자 체계를 원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 문자 운동은 언제나 혁명적입니다. 기존의 정치체계를 깨뜨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배층의 문자를 민중의 문자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높이 기리는 것은 문자 생활의 대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한자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문자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특히 우리말에 맞는 문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죠.     한자의 문제는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한국에서도 고민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한자 사용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한자 없이 쯔놈이라는 문자 체계를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알파벳을 변형시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어의 병음 표기도 알파벳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아예 알파벳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타자기라는 문명 앞에서 한글은 매우 고민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용어이지만 2벌식, 3벌식이란 말은 이런 고민을 보여줍니다. 한글이나 한자는 컴퓨터 시대에 와서 다시 더 살아나게 됩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쉬운 글자와 쉬운 말 쓰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래도 사회주의 사상이 인민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에서 간체자를 사용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한자를 쓰지 않고, 쉬운 말로 바꾸는 ‘말다듬기 운동’을 실시하는 것도 정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글에서도 자연스럽게 한자 사용이 줄어들고 있는데, 모르는 사이에 영어 사용은 폭넓게 들어와 있습니다. 신문이나 책을 보면 한자는 없는데 알파벳은 엄청 많습니다. 저는 한자도 알파벳도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다고 봅니다.   문해력을 높이자고 이야기하면서 청소년, 청년의 언어에 관심이 없는 것은 모순입니다. 일방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맹이 꼭 나쁜 것도 아닙니다. 문맹 중 많은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못 배운 게 아닙니다. 필요가 적어서 안 배운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종종 글 읽기가 필요한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글보다는 말로 소통하는 세상이 어떨까요? 우리는 지나치게 글에 의존하면서 사람 사이의 정을 잃고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문맹이나 문해력은 내가 원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가 주입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문맹도 문해력도 어쩌면 정치의 영역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문맹 정치 한자 사용 문자 체계 문자 운동

2024-05-27

[열린 광장] 컴퓨터 문맹의 가장자리

깜짝 놀랐다. 컴퓨터 스크린에 윈도 경고문이 떴다. ‘당신의 비정상적 행위를 적발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야 합니다’. 내가 비정상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컴퓨터 전문가인 조카에게 물어보았다. 이 경고문은 일종의 바이러스이며, 전화하면 제거 비용을 요구하는 사기라고 한다. 무시해도 좋다고 해서 한숨을 돌렸다.   나는 컴퓨터를 잘하지도 못하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한글이나 영문으로 글을 쓰고, 이메일로 문서를 교환하고, 은행 계좌를 관리한다. 문제는 장애물 경기처럼 항상 걸림돌이 나타난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한 단락이 지워진다. 마우스 조작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USB를 사용해 아래층의 컴퓨터 문서를 위층의 컴퓨터로 옮기는데 항상 애먹는다. 며칠 전 누가 문서를 스캔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그런데 스캔이 되지 않는다. 불난 집 주인이 소방차를 부르듯 조카를 불렀다. 조카가 와서 불을 꺼주었다.   패스워드는 항상 나를 괴롭힌다. 이메일 주소와 패스워드를 입력해도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 패스워드가 맞지 않으니 다시 해보라고 한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또 조카를 부른다. 그가 와서 새로운 패스워드를 만들어 로그인해준다.   인쇄기가 가끔 말썽을 부리며 인쇄를 중단한다. 어디가 아프다거나 불편한 곳이 있어 일하지 못하겠다고 설명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사람이나 컴퓨터, 또는 인쇄기도 오랫동안 일하면 피로하여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     컴퓨터가 말썽을 부리면 이놈을 쓰레기통에 넣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떼어놓고 싶어도 떼어놓지 못하는 애인처럼,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다. 글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 계좌 관리, 특히 전기, 전화, 수도 등 각종 광과금을 온라인으로 지불한다. 금액을 입력하고 두 번 클릭하면 지급된다. 전에는 일일이 수표를 써서 봉투에 넣고, 수신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구글 선생’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본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물으면 잘 가르쳐준다. 현관문 자물쇠 교체 방법을 물으면 영상으로 설명해준다. 사람에게 그렇게 질문을 자주 하면 짜증을 낼 것이다.  유튜브로 용산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8·15 경축행사를 관람했다. 그리고 임동찬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면서, 컴퓨터 문맹의 가장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나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열린 광장 가장자리 컴퓨터 컴퓨터 문맹 컴퓨터 문서 컴퓨터 스크린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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