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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폭염에 무방비 노출된 노동자·취약층

지난 주말에도 폭염과 열돔 현상으로 기온이 90도를 오르내렸다. 최근 수 주간 이어진 폭염은 개인들의 일상생활과 전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개인들은 급증한 냉방비와 온열 질환 및 냉방병 등을 호소한다.   열돔 현상에 일부 지역은 종일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전기료가 평소의 1.5~2배 이상 나오는 가정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으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일반 가정에게 유틸리티 비용 급증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극빈층에게는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10가구 중 1곳은 에어컨조차 없다. 에어컨을 구입하고 설치하는데 수천에서 수만 달러가 필요하다. 저소득층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폭염은 극빈층의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불볕더위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폭염으로 경제 활동은 급격하게 위축되고 생산성 역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무더위로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은 물론 회사를 관두는 근로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 운전자와 창고 근로자가 최근 파업에 돌입한 이유가 무더위 근무환경 개선이다. 캔자스주의 육가공 업체의 경우, 올해 그만 둔 인력이 평소보다 10% 많았는데 사직 이유는 폭염으로 알려졌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여러 연구 보고서를 인용 폭염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짚었다. 신문에 따르면, 2021년 더위 노출로 인해 농업,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부문에서 25억 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손실됐다. 이로 인한 비용은 2050년까지 연간 500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폭염으로 세계 GDP(국내총생산)가  2100년까지 최대 17.6% 축소될 수 있다고 봤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의 폭염에 대한 대책은 매우 부족하다.     정부의 기후재난 취약층에 대한 대책은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과 쿨링센터로 집약된다.   문제는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금전적 지원은 적격 계층의 84%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보조금을 연구하는 미셸 그래프는 저소득층 적격 인구의 단 16%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기후재난 취약계층을 위해서 쿨링센터를 열고 있지만 일부 지역은 숫자도 부족하다. 더욱이 저소득층이나 몸이 불편한 주민은 센터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더 많은 적격 저소득층이 냉방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하며 교통편 제공으로 쿨링센터 접근성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쿨링센터를 지역 공공기관, 교회, 극장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노동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규정은 아직도 없는 상태다.   2년 전 바이든 정부는 연방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관련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까지 어떤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 뒤에는 기업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기업들은 휴식, 물, 그늘, 에어컨 설치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연방 정부 규정 도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가주를 포함한 일부 주가 더위와 관련한 노동자 보호 제도를 시행 중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기업이 의무 규정 도입을 반대해도 결국 폭염 관련 근무 여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엘니뇨로 인해 올해보다 더 덥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엘니뇨 현상은 적도 부근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을 일컫는다. 엘니뇨로  해수면의 온도가 섭씨 0.5도 올라가면 지구 온도는 0.2도 상승하기 때문이다.올해보다 더 더울 내년을 대비하기 위해서 정부는 법규정 마련과 취약계층 지원 제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하고 기업들도 근로자 보호책을 세워야 할 때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 칼럼 무방비 노동자 기후재난 취약층 저소득층 에너지 근무여건 개선

2023-08-08

[살며 생각하며] 수황정의 비극

명나라는 말기에 이르면서 환관들의 발호와 부정부패로 사방에서 도적떼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원숭환(袁崇煥)은 명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다. 원숭환은 사르후 전투 이후 명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던 누르하치를 영원성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의 공격마저 막아내는 등 무너져 가던 명나라를 지탱하고 있었다.    원숭환은 후금의 홍타이지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었다. 홍타이지는 1629년 10월, 영원성과 산해관을 우회하여 베이징으로 침입했다. 원숭환의 허를 찌르고 곧바로 황성을 노린 기습작전이었다. 황성 포위 소식에 경악한 원숭환은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달려와 베이징 부근에서 악전고투 끝에 후금군을 격퇴했다.   그러나 원숭환에게 반감을 품은 환관들이 황제에게 무고했다. 대학사 온체인은 “원숭환이 홍타이지와 내통하여 후금군을 끌어들였다”며 목을 치라고 상주했다. 평소 의심이 많고 대국을 볼 줄 올랐던 숭정제는 결국 홍타이지가 꾸민 반간계(反間計)를 덥석 물고 만다. 홍타이지는 황성에서 물러나면서 환관 두 명을 사로잡았는데 “원숭환이 베이징을 탈취하기로 후금과 밀약했다”는 소문을 흘린 뒤 이들을 풀어준다.    돌아온 환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숭정제는 대노했다. 원숭환은 베이징의 저잣거리에서 책형(磔刑)을 당했다. 기둥에 묶어 놓고 온몸의 살점을 발라내는 잔혹한 처형이었다. 〈명사(明史)〉의 사관은 이 대목에서 “숭정제는 스스로 장성을 허물어 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적었다.     숭정 17년(1644)은 중국 역사상 중요한 해였다. 3월 15일 숭정제의 집무실에 이자성으로부터 통첩이 날아들었다. “18일에 유주(幽州)에 이를 것임.” 유주란 베이징을 뜻하는 말이다. 이자성이 3일 후에 베이징을 유린하겠다는 협박장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일밖에 없었다. 이자성의 반란군은 예정보다 빠른 3월 17일 베이징성 밑에 도착했다. 베이징성은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15만 명의 군사가 있었으나 그나마 노약자‧ 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성벽 곳곳에 배치할 병력도 모자라는 실정이었다. 반란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숭정제에게 가장 신임받던 조화순이 창의문을 열어젖히고 반란군을 맞아들였다. 밖에는 이자성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자성에게 항복한 환관 두훈이 조화순을 설득하여 성문을 열게 한 것이다. 반란군은 노도처럼 성 안으로 몰려들었다. 성 안으로 들어간 이자성의 반란군은 다른 성문을 열어젖히고 반란군을 맞아들였다. 반란군은 외성에서 내성을 무찌르고 다시 자금성에 육박했다. 반란군은 노도처럼 성 안으로 몰려들었다.    명 왕조의 운명은 이제 풍전등화와 같았다. 반란군이 성내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숭정제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환관 왕승은을 데리고 자금성을 나와 만수산에 올라가 멀리서 베이징 시내를 살펴보았다. 베이징 내성의 9개 문밖 여러 곳에서 반란군들의 횃불이 붉게 타올랐고 우렁찬 환호 소리가 베이징 하늘 아래 메아리쳤다. 숭정제는 혼잣말로 뇌까렸다. “베이징이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숭정제는 중대결심을 했다. 자금성으로 돌아간 숭정제는 술을 가져오라 하여 한 잔, 두 잔… 연거푸 마셔댔다. 그는 이미 죽을 각오를 했으나 명나라의 황통이 끊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황태자와 영왕 정왕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해 평민 차림으로 변장시켜 각각 그들의 외가인 주 씨와 전 씨 집에 피난시켰다.    세 황자들은 모두 나이가 어렸다. 이들 네 부자는 헤어질 때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세 아들을 궁 밖으로 피난시킨 숭정제는 황후와 후비들에게 자결하도록 명했다. 황후 주 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후비 가운데서도 자결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숭정제는 할 일이 남아있었다. 황자들은 피난시켰으나 황녀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그대로 살려두면 반란군에게 욕을 당할 염려가 있었다. 장평공주는 15세의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녀는 수령궁에 있었다.     숭정제는 칼을 빼 든 채 수령궁으로 들어갔다. “너는 무슨 죄로 짐의 딸로 태어나 꽃다운 나이에 이 같은 비운을 맞게 되었단 말이냐!” 탄식하면서 장평공주의 왼팔을 칼로 내리쳤다. 그리고 겨우 여섯 살 난 소인공주가 있는 소인전으로 들어가 딸을 칼로 찔렀다.    어린 소인공주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으나 장평공주는 상처를 입고 유혈이 낭자한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시녀들이 그녀를 부추겨 도망할 것을 권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부황께서 내게 죽음을 내리셨으니 내 어찌 감히 살기를 바라겠느냐. 또 도적들이 들어오면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니 나는 숨을 곳이 없느니라.” 시녀들이 억지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악몽 같은 18일이 지나고 19일 아침이 되자 숭정제는 친히 경종을 울려 중신들을 불렀으나 중신들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이제는 측근들로부터도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숭정제는 왕승은을 데리고 다시 만수산으로 올라갔다. 만수산에는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수황정(壽皇亭)이 있었다. 숭정제는 이곳을 죽음의 장소로 택했다.    숭정제는 소복 차림에 왼발은 맨발, 오른발에는 붉은 신을 신었다. 관은 벗겨졌고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죽어 있었다. 그의 흰 옷깃에는 다음과 같은 유조가 씌어 있었다. “짐은 죽어 지하에 돌아간들 선제를 뵐 면목이 없다. 그래서 머리털로 얼굴을 가리고 죽는다. 도적들은 짐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도 좋고 문관들을 모두 죽여도 좋지만, 다만 능침만은 허물지 말라. 백성들 한 사람이라도 상하지 말라.”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세운 수황정에서 34세의 젊은 나이인 숭정제가 자결했다는 것은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이 비극의 수황정. 황제 곁에서 순사한 것은 오직 왕승은 한 사람뿐이었다. 명나라는 16대 277년 만에 역사의 막을 내렸다. 숭정제의 최후는 처절했다. 하지만 그가 망국과 죽음을 앞두고 보였던 비장한 태도를 평소 정치를 할 때 발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특히 신료들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숭정제의 최후를 기록한 〈명사〉 사관의 평가는 흥미롭다. “황제는 재위 17년 동안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고심하면서 국사에 힘쓰고 정치에 마음을 다했다. 조정에 나아가 크게 탄식하며 비상한 인재를 얻고 싶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인재를 쓰지 못해 정사는 더욱 망가졌다. 이에 다시 간사한 환관들을 신임하여 요직에 배치함으로써 행동과 조치가 마땅함을 잃고 어그러졌다. 복이 다하고 운이 옮겨가 몸이 화변(禍變)에 휘말렸으니 어찌 시운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흥망은 제대로 된 지도자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죽어나는 것은 백성이다. 숭정제의 비극적인 최후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두 전직(前職)이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뜨면서 문 대통령 전임자는 감옥 속 두 전임자만 남았다.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12명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내각책임제 속 대통령과 ‘징검다리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모두 불행했다. 살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본인과 자식들·형·동생·처남·동서까지 감옥에 갔다.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에도 없는 대통령 역사다.    이번에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감옥에 가지 않을 후보’가 누군가를 제1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대통령을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정직성을 꼽는다. 정직성은 단순히 거짓이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          비극 베이징성은 무방비 대통령 전임자 베이징 내성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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