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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모내기의 추억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한국 어린이들의 모내기 체험 영상을 봤다. 그들은 고운 색깔의 옷에, 허벅지까지 오는 빨간 장화를 신고 모내기를 했다. 나는 그들이 신고 있는 긴 장화에 눈길이 가면서 옛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날 무렵 초등학교 3~4학년 때 모내기를 다녔던 곳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논에 이르면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저벅저벅 걸어 논에 들어갔다. 어른들이 양쪽에 서서 밧줄로 라인을 만들면 우리는 그 앞에 일렬로 나란히 섰다. 그리고 왼손에 모종을 잡고 오른손으로 조금씩 떼어 무논에 꾹꾹 꽂아 넣었다.   누군가 “좋았어”라고 외치면 한 발씩 뒤로 물러섰고 줄도 옮겨졌다. 이런 방식으로 모내기는 계속 진행됐다. 이렇게 무논은 파랗고 아름다운 푸른 농원으로 변했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도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은 거머리가 다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질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거머리는 징그럽다. ‘그때 우리에게도 장화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그때 모내기 현장이 그리워진다. 모내기를 자주 했던 까닭인지 지금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되풀이하면 연습이 된다. 우리 생활에서도 옷 만들기, 책 읽기 그리고  글 쓰기 등도 마찬가지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사랑도 계속 연습을 한 후에 실행에 옮긴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모든 것을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 부단히 연습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 모내기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한 후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영순·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모내기 추억 신고 모내기 모내기 체험 그때 모내기

2024-06-11

[사진의 기억] 모내기

지난주에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오면서 차창 밖으로 모내기를 앞둔 논마다 물이 찰랑거리는 풍경을 보았다. 예전에도 봄과 여름이 맞물리는 이 무렵이면 농촌에서는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느라 분주했었다. 바지를 둘둘 말아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모를 심는데 유난히 거머리가 많은 논에선 발끝부터 무릎까지 더 빈틈없이 중무장하곤 했다. 한번 살갗에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맹렬하게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오죽하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는 표현이 생겼을까.   그러나 모내기 철에 찰거머리보다 더 무서운 게 가뭄이다. 긴 가뭄으로 논이 쩍쩍 갈라지는 바람에 모를 심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웃 간에 서로 물꼬를 대려는 싸움이 빈번했다. 1년 농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일이라서 사이좋던 이웃이라도 얼굴 붉히며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간밤에 비가 흡족하게 쏟아지면 다음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농부의 마음을 농부가 알기에 서로 어제 일을 탓하지 않았다. 지금은 기계가 대신해주지만 70년대 농사는 거의 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모내기가 한창일 때는 교실에 빈자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를 심는 동안 아이들은 잔심부름을 맡았다. 논에 새참을 내가는 일이나 막걸리 심부름은 아이들 몫이었다. 물론 아이들도 싫지 않았다. 슬슬 날씨가 더워지는 참에 교실에 앉아 졸음을 참는 것보다 훨씬 즐거웠고 더구나 새참을 얻어먹는 재미에 신이 나서 논두렁을 뛰어다녔다.   이제 막 점심을 배불리 먹고 논에 들어갈 시간, 마음이 다급한 농부의 아내가 먼저 들어가 모를 배분하는 중이고 논두렁에 선 남편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며 오늘 해치울 일을 가늠해보고 있다. 진흙투성이인 농부의 종아리 사이로 어느새 여름이 밀려오고 있다. 김녕만 / 사진가사진의 기억 모내기 진흙투성이인 농부 농부가 알기 무릎 위로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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