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끝없이 고치고 손보고 다듬고
글쓰기에서 추고 또는 퇴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쓰기에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다. 다듬고 고치고 손볼수록 작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문호, 대작가들의 명작, 명문장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는 군더더기나 수식어 없는 간결하고 힘찬 문체(文體)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53년엔 퓰리처상을, 이듬해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87차례 원고를 뜯어고쳤다고 한다. 2만6571개 단어로 된 짧은 소설을 무려 87차례나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명작은 그렇게 태어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고치기에 공을 많이 들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초고는 생각나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써놓고, 그것을 뜯어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거듭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퇴고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10차례 이상 뜯어고치는 것은 기본이고, 깎아내고 다듬고 넣고 빼는 작업은 셀 수 없이 많이 한다고 한다. 이어서 출판사 편집자와의 교정작업이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된다. 독자들의 반응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데. 특히 첫 독자인 부인이 읽고 지적한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고친다고 한다. 글이란 다듬을수록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이든 반드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 노력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가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작가는 이미 책으로 나와 있는 작품을 끈질기게 수정하기도 한다.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이 그런 작품이다. 평생에 걸쳐 여러 번 고치고 다듬어 교정판을 발간했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처럼 퇴고와 수정을 전혀 안 하는 작가들도 있는데, 이는 매우 특이한 경우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빼고는 장편과 단편 대부분을 퇴고를 안 하고 말 그대로 펜이 가는 대로 썼다고 전한다. 도박과 낭비벽이 심해서 다작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퇴고를 할 여유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유 있게 퇴고를 하고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던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을 굉장히 부러워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지독히 한탄했다고 한다. 만약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여유를 가지고 마음에 들 때까지 글을 고치고 다듬었다면, 엄청난 명작이 나왔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고치기 다듬기는 작가의 필수 작업이다. 허구헌날 원고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날치기로 써대야 하는 생계형 글쟁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즐거운 고통이다. 그래서 퇴고를 산통(産痛)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다익선, 많이 할수록 좋다. 이런 고통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좋은 작품이 나오고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책은 드디어 나왔는데, 댄 브라운의 책은 언제나 나오려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소설가 레이먼드 명작 명문장도 퇴고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