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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가 속삭인다 “행복은 디테일에 있다니까”

일본의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WimWenders)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70여년간 아카데미상에 참여해온 일본이 외국인 감독의 작품을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 ‘서브머전스’ 발표 이후 벤더스의 6년 만의 장편 복귀작으로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그의 생애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다.     ‘퍼펙트 데이즈’는 ‘악마는 디테일에 강하다’라는 말의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영화이다. 관객은 단절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의 디테일’을 찾아가는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함께 경험한다. 가족을 보고 싶어하는 그리움, 가여운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슬픈 사연에 접하면서 도심 한구석에 숨겨진 세심한 인간애에 감동을 받게 된다.     중년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깔끔하게 정리된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그는 매일 동일한 의식에 지배되는 외톨이다. ‘도쿄 화장실’이라고 적힌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시부야의 공중화장실들을 청소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그는 집과 직장을 오가며 카세트테이프로 록음악을 듣고 틈틈이 나무들을 사진 찍으며 문고판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든다. 그러나 이처럼 매일 반복되는 그의 평범한 일상은 하루하루가 특별하고 귀중하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히라야마의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을 관찰하는 데 긴 시간이 할애된다. 사소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그러나 그가 고수하는 ‘습관’들이 히라야마의 진정한 즐거움일까.       소원해진 여동생의 딸 니코의 깜짝 방문으로 조카와 함께 지내는 며칠간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가장 커다란 ‘사건’이다. 히라야마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흘러나오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지속적이고 조용히 세계와 교감을 나눈다. 미소와 눈물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그의 얼굴에서 즐거움과 고통, 희망과 두려움을 본다. 한 중년 남자의 일상과 개인사의 단면을 통해 가슴에 전해지는 뭉클한 감동은 보석처럼 빛나는 야쿠쇼의 연기 때문이다. 연민에 젖어 있는 그의 무언의 연기에서 우리는 결국 히랴야마의 고독과 맞닥뜨린다.     침착하고 고요한, 달콤하고 슬픈 삶의 후회가 얽혀 있는 이야기. 항상 같으면서도 다른 중년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며 잊혀진 존재의 고독한 영혼이 그 어디에선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디테일 행복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가운데 히라야마 화장실 청소부

2024-02-09

[마음 읽기] 설계를 잘하려면

‘설계’는 건축과 금융 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다. 치수를 정확히 재 도면을 설계하고,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연금을 설계하는 식이다. 건축은 내게 너무 먼 전문 영역이라 제쳐두고, 재테크는 일반인이라도 늘 염두에 두는 일이니 후자의 설계를 생각해보면 보통 투입해야 할 돈의 양과 기간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시점에 얼마의 돈이라는 이미지는 내 피부에 밀착되는 느낌이 없고, 먼 일 같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 설계는 지적 흥분을 동반한 것이어야 할테니 이런 식으로 설계를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를 비슷한 뉘앙스의 ‘기획’이란 말로 바꿔보자. 기획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고, 자기 분야에서 세밀하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승패와 재미 둘 다를 결정한다.   기획할 때 사람들이 많이 범하는 오류는 일반화다. 책 편집자들은 저자를 발굴하면서 예비 필자에게 맞는 기획서를 작성한다. 어느 날 한 편집자가 ‘30대, 여성, 해외 거주’라는 기획서를 들고 왔다. MZ 세대의 작가, 번역가, 편집자들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일하는 추세라 세 키워드의 조합은 흥미로워 보였다. 이때 다른 편집자가 “‘퇴사하겠습니다’류의 에세이는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나요?”라는 피드백을 했다. 이 기획이 ‘퇴사’라는 용어로 압축되자 마법은 현실로 쪼그라들었고, 서사는 사라졌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해 어떤 이는 “그냥 12·12 쿠데타가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전개돼”라고 축약했는데, 이게 주변 사람들의 영화 볼 의욕을 떨어뜨린 것과 비슷하다. 기획의 핵심은 착상에 있지 않다. 연말마다 트렌드 책을 읽어 거기서 짚어주는 내용을 머릿속에 입력해도 자기만의 트렌디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기획자가 버려야 할 것은 어떤 사안을 한 단어로 요약해버리는 습관이다.   기획은 요약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세밀함이 그것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참조 사례로 소설가의 기획을 들여다보자. 글은 구조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는 뼈대이니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가끔 문체를 장식물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문체는 결코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며 나무 골조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보코프는 “문체란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자신의 버릇, 속임수, 특징을 모두 문체에 녹이며, 거기에 묘사나 이미지가 덧붙여져 작품은 전진한다. 즉 문체는 엔진과 같다.   이를테면 중국 소설가 츠쯔젠은 뛰어난 색채 감각을 노랫말 같은 문체로 구사하고, 그게 중국 북방의 자연을 형상화해 독자의 가슴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청포도 두 알 같은 눈두덩이” “누런 가을처럼 늙어 있는 날들” “오래된 낙엽처럼 얼굴 위를 기어다니는 검버섯”은 그가 작품 속 등장인물의 생애를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츠쯔젠의 이런 작품을 “동화처럼 순수하다”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가 써온 100편의 단편소설은 색이 바래진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설계할 때 먼저 숫자를 버려보자. 내가 아는 이십대의 헤어디자이너는 부지런해서 퇴근 후에도 남아 밤 늦게까지 커트 연습을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독서로 하루를 연다. 하지만 책에 빠져들까봐 타이머를 켜고 딱 30분만 읽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해놓으면 평범함의 진창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신의 클리셰를 없애려면 실용적인 시간 쓰기에서 벗어나는 게 첫 번째로 할 일이다.   그렇다면 기획을 하는 데도 시간을 에둘러 가는 길, 즉 우회로가 적용될 수 있을까? 내가 잘 아는 출판 분야를 예로 들면, 기획할 때 조급하면 저자를 놓칠 수 있다. 수많은 편집자가 신문, 블로그, 유튜브의 콘텐트를 보고 그 창작자에게 책을 펴내자고 제안한다. 제안받은 사람은 시간을 끌지 않고 결정하기에 서두름이 관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판에 박힌 제안서는 많은 작가와 다시 만날 기회를 놓치게도 만든다. “작가님을 평소 존경했고, 그간 펴낸 작품을 빠짐없이 읽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갈고닦은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 예컨대 작가 조지 손더스처럼 단편을 사랑한다면, 그 감정을 직접적 표현으로 발설하기보다 대상 작가의 설계물을 하나하나 뜯어 분해한 뒤 그것을 역설계해보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섬세한 붓질을 가하고, 달빛의 그림자도 드리우면서 작가의 건축물 옆으로 다가가는 신작로를 내는 것이다.   설계는 고유의 구조, 리듬, 색채 등을 띠어야 한다. 이것들은 세상의 수많은 것을 재료 삼아 만들어지기에 현실과의 접촉도 중요하지만, 한편 혼자만의 기량 연마도 중요하다. 나의 붓질이 거칠면 그 캔버스의 인물들은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혹은 작가의 붓질 아래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설계 디테일 모두 문체 시간 쓰기 구조 리듬

2024-01-15

“미주한인 역량 디테일로 보여주겠다”

“미주한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멋진 세계한상대회를 열겠습니다”   전 세계 한민족 경제인들의 축제 ‘세계한상대회’가 사상 처음으로 내년 10월 미국에서 열린다.   2023년 21차 세계한상대회 개최지로 오렌지카운티가 선정된 데 이어서 하기환 한남체인 회장이 대회장을 맡게 돼 의미를 더했다.   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0년에 유학 목적으로 도미한 대표적인 1세대 한상(韓商)이다. LA 한인회장,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미주 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 등 주요 단체장을 역임하며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훈포장 가운데 가장 훈격이 높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2020년에 받았다.   그런 그가 내년 10월 11∼14일 오렌지카운티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세계한상대회의 대회장으로서 미주한상들과의 끈끈한 네트워크와 협력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개최를 다짐했다.   하 회장은 “7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와 후배에게 더 큰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부와 상의 관계자들의 수차례 권유에도 (대회장직을) 사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 회장이자 대회조직위원장인 황병구회장과 노상일 오렌지카운티한인상공회의소 회장 겸 대회 본부장을 만난 후 전국 한인상공인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대회를 준비하는 그들의 일념에 강하게 공감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약속을 했으면 꼭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나의) 좌우명”이라고 강조했다. 전미 한인 상공인들의 역량을 모으고 그들이 각자 보유한 한국의 정재계는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21차 대회가 첫 해외 대회라는 이미지를 뛰어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21차 세계한상대회는 개최 장소가 오렌지카운티일 뿐 전미주한인들의 잔치라며 지엽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전국 한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손을 보태면 21차 대회가 빛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회장직을 수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LA한인상공회의소를 포함한 전국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은 물론 한국과 전세계 한인 한상들이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을 전해왔다고 한다.   하 회장은 “한인들은 어디에 있어도 하나라는 민족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며 “그들이 전한 따뜻한 말 한마디에 최소 1500명을 맞이해야 하는 초대형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는 길이 보였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의 사업 성공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하 회장은 이미 한국 정부와 대회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에게 대회 비용을 더 세분화하고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변수로 인해서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재정 문제를 파악해달라고 당부했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물론 연방 및 주와 로컬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정 지원 등에 대한 검토도 요청했다.   그는 “여러 단체장을 맡아서 수차례 큰 대회를 치른 경험과 노하우를 대회조직위원회와 공유하고 불시에 생길 수 있는 변수를 미리 일러줘 최소의 시행착오를 통해 효율적으로 대회 개최 준비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년 10월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대회조직위원회와 미주한인상공회의총연과프로젝트별 기간과 책임자를 정하고 단계별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며 “올 연말까지는 한눈에 들어오는 대회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진성철 기자미주한인 디테일 세계한상대회 개최지 노상일 오렌지카운티한인상공회의소 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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