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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보라색 동그라미 태극기

집안 환경 탓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 그리는 엄마 옆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붓을 잡아 휘두른 것이다.   두 살 남짓 무렵 아이들의 그림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아무런 꾸밈도 거침도 생각도 없는 그림…. 첫 아이의 그림은 엄마 개인전 때, 한구석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전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그 무렵, 어느 날 문득 태극기가 눈에 띄기에 아이에게 주며 이걸 그려보라고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극기가 무엇인지, 거기에 어떤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지 알 리 없고, 나도 그냥 호기심에 그려보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린 태극기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가운데 보라색 동그라미가 크고 당차게 자리 잡고 있고, 그 네 주위를 시커먼 작대기가 감싸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라색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자유분방하게 뒤섞이며 만들어낸 색깔이었다.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이것은 통일의 모습 아닌가! 붉은색과 푸른색이 온전히 하나가 된!”   오랜 옛날의 그 장면이 불쑥 떠오른 것은 아마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부서져, 사분오열 서로 원수가 되어 핏발 선 싸움박질에 여념 없는 위험한 현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생각과 이념이 자연스럽게 부딪치고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다. 내 생각만 옳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한 자는 적이요 원수라는 식의 아집은 독이다.   혹시라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싸움이 일어나고 대립이 심각해질 때, 중재에 나서라고 존재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 화합의 예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정치가들이 앞장서서 국민 갈라치기를 선동하는 망국적 판국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니 죽여없애야 한다. 이건 도무지 사람의 논리가 아니다. 정치는 격투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대중가수의 한마디 발언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지경이다. 자초지종을 간추리면 이렇다. 물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가수 나훈아가 자신의 은퇴공연에서 말했다. “그만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하려고 했는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다. (왼쪽 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발끈했고, 나훈아도 물러서지 않고 거친 말로 맞받아쳤다.     “나보고 뭐라고 하는 저것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라. 어디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XX들을 하고 있느냐. 안 그래도 작은 땅에 선거할 때 보면 한쪽은 벌겋고, 한쪽은 퍼렇고 미친 짓을 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보 경향의 가수, 배우 등 연예인들이 ‘어른과 노인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로 비난하고 나섰다고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다. 세상일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갈라칠 수 있는가? 부질없다. 그저 한 가지만 묻고 싶다. 보수와 진보는 원수지간이고, 좌와 우는 정말 그렇게 다른 적인가? 간절한 마음으로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   멀리 바다 건너에서 그런 참담한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그린 태극기의 보라색 동그라미를 떠올리니 처량하고 서글프기 한이 없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동그라미 보라색 보라색 동그라미 한가운데 보라색 거침도 생각

2025-01-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손을 잡는다는 것은

비 오는 호숫가를 걷다 호수에 빗방울이 만드는 무수한 동그라미를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동그라미는 점점 퍼져 서로 겹치고, 만나고, 서로의 손을 잡고 또 잡고, 호수는 온통 동그라미의 축제였다. 하늘이 열리고 호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늘의 구름을 제 몸 가득히 담아 내다가 흥겨운 하늘이 내린 비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한폭의 움직이는 추상화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는 이곳에 행복한 일들이 마구 생겨나는 것이다. 세상에 덜렁 나 혼자라면 살아감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빗방울이 멈추고 호수는 다시 노을을 그리고 있다. 붉어지다가 푸른 보라를 찍은 큰 붓을 호수 깊은 곳에 뿌리며 노을을 담아내고 있다. 고요가 내려앉은 한 밤엔 번쩍이는 별빛을 사랑하고, 아침이슬을 머금은 새벽엔 안개처럼 깨어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적게 생각하고 너무 많이 계산한다. 어떤 경우에는 생각도 없이 주판알만 튕길 때가 적지 않다. 당신의 필요에 나의 사랑을, 때론 나의 필요에 당신의 관심과 배려가 손 잡아질 때 오병이어의 기적은 꽃피우게 된다. 서로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산다? 이 땅에 태어나 유년의 시기를 거쳐 오랜 기간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던가. 만일 그 어려웠던 시기에 당신의 따뜻한 손잡음이 없었더라면,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 그대의 편안한 어깨동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손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잘 자라준 뒤란의 데이지가 종일 내린 비바람에 고개를 숙였다. 세워주려고 노력해 봤지만 불가능이었다. 포기하고 뒤 돌아서는 마음은 참 불편했었다. 다음 날 아침 허리를 곧게 핀 꽃대를 바라보다 한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손이 그곳에 있었다. (시인, 화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 신호철     하늘 열리고 호수 가득 / 투득 투득 빗방울 떨어진다 / 작고 큰 동그라미 서로에게 / 단단히 손 잡으라 한다 / 이내 호수는 하늘이 되고 / 하늘은 호수가 된다 // 세상에 덜렁 나 혼자라면 / 살아감의 의미가 무엇일까? / 손을 잡는다는 것은 / 서로의 마음을 읽는 것이어서 /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것이다 / 지나 왔던 모든 순간이,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 이마에 땀을 훔치며 허리를 펴는 것이다 / 어둠을 지나 환한 미소를 피우는 것이다 / 지난 밤 비바람에 쓰러진 꽃대를 일으키시는 / 당신의 손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 / 흔들리지도 마 /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지 / 너와 나 잡은 손 위에 / 당신의 손이 포개질 때 까지 / 손을 잡는다는 것은 / 미움이 사랑이 되는 것이다 / 서로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 호수와 하늘이 하나 되듯 / 너와 내가 하나 되듯 / 함께 걷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 내가 너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 하나의 아픔이 두개의 행복으로 /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 꿈꿀 수 없었던 미래가 현실로 / 오병이어의 기적이 / 너와 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손 /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삼겹줄이 되는 것이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동그라미 서로 투득 투득 시인 화가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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