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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기대어 살아야 하지

새벽이 깨어날 때면 / 꽃 한 송이 피어나듯 / 어둠의 뒤로 아침이 오네 // 힘들 때마다 우리 기억해야 하지 / 소리 없이 들길을 걸었던 일 / 바람이 우리를 마구 흔들었던 기억 / 내어준 팔의 따뜻함에 꿈꾸었던 시간 / 기억해야 하지 사는 게 쓸쓸해지면 / 마주 보며 웃음을 되찾았던 일을 // 다시 태어난다면 / 이 땅에 다시 태어난다면 // 들꽃 만개한 일몰의 언덕에서 손잡고 / 붉은 노을로 스러지는 밤하늘 가득 / 서로를 지키는 별빛이 되어야하지 / 살아있는 날 동안 눈동자같이 바라보며 / 기대어 설 서로의 든든한 등이 되어 /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롭더라도 / 새벽이 깨어나듯, 꽃 한 송이 피어나듯 / 그렇게 우리 기대어 살아야 하지 // 야윈 팔소매 걷으며 웃어줄 당신이기에       기대어 산다는 것은 서로의 등을 내어 준다는 말이다. 등을 내어 준다는 것은 나를 지탱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준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연약한 한 사람의 등이 다른 사람의 등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스스로 서서 버틸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온몸을 의지하여 맏길 수 있는 어느 한 사람을 만났다면 그는 인생을 잘 산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어 생각을 마음에 담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은 입에 있어 생각을 무심코 내뱉기도 한다. 확인 되지 않은 말 확신이 없는 말들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해서 좋았던 기억 보다 단 한 번의 서운함으로 오해하고 실망하여 멀어지기도 한다. 서운함보다 함께 한 좋은 기억을 떠올려 먼저 고마웠다고, 미안하다고, 손 내밀 수 있다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뀌어 질 것이다.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기대어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진정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언제인가 산행 중에 지쳐 있는 몸을 큰 나무 등에 기대어 본 적이 있다. 편안함과 안락함이 내 등을 통해 따뜻하게 전해 왔었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힘을 얻고 정상을 향해 걸었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땅을 딛고 살고 있다. 내 발을 지탱해주는 것은 우리가 인식 하든, 인식하지 못 하든 우리가 눈을 뜨면 걷는 이 땅이 자기의 등을 내어 준 것이다. 바람이 더위와 땀을 식혀주는 것도 바람이 자기에 등을 내어 준 것이다. 나무도 서로의 등을 기대고 의지하여 든든히 가지를 뻗는다. 뿌리는 가지에게, 가지는 뿌리에게 든든한 등이 되어준다.     자세히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서로의 등을 내어 주고 서로의 약함을 보듬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상대방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이 나의 든든한 등이 되어 주기도 한다.   슬플 때도, 외로울 때에도, 한없이 깊은 수렁 속에서도 지친 어깨를 안아주며, 눈동자같이 지켜 주자. 어둠의 뒤로 아침이 오듯이 서로의 손을 끌어 빛나는 아침을로 이끌어주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어둠은 사라지고 한송이 꽃이 피어나듯 우리의 마음 속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날 것이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는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청춘은 너무도 짧고 아름다웠다.“라고 박경리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 버리고 갈 것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서로의 등이 되어 주자.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감사하며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주자. 서로의 마음 속에 꽃 한송이 피워 보자.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동안 눈동자 시인 화가 박경리 작가

2024-12-09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알프스의 푸른 눈동자, 슬로베니아

발칸반도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슬로베니아(SLOVENIA)는 '사랑'이란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 나라 이름 자체에 'LOVE'가 들어가서인지 사랑스럽고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크로아티아,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슬로베니아의 면적은 한반도 11분의 1 정도다. 작지만 '쥴리앙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로 널리 사랑받아왔다.   슬로베니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이지만, 알프스산맥의 만년설이 흘러 만든 호수를 하나 품고 있다. 사랑과도 관련이 깊은 이 호수의 이름은 블레드다. 알프스가 믿음직스럽게 굽어보는 블레드 호수 한복판에 블레드 섬이 그림같이 떠 있다. 그런데 이 블레드 섬까지는 전통 나룻배인 플레타나만이 오갈 수 있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블레드 호수가 붐비는 것을 원치 않아 단 23척의 배만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다. 사공이 젓는 플레타나는 여행자들을 블레드 섬으로 옮겨놓는다.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관문은 99개의 돌계단. 계단을 오르면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나오는데 9~10세기경 슬라브 신화 속 지바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종교 전쟁으로 신전이 파괴되고 몇 차례의 부침을 겪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바로크 스타일의 성당이 완성됐다. 1000년도 더 된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은 '꿈의 결혼식 장소'로도 유명한데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를 안고 99개의 계단을 다 올라야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비록 결혼식은 올리지 못하더라도 성당 내부에 있는 종을 울려볼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종을 울리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사랑하면 종이 울리고, 그렇지 않으면 종이 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선뜻 나서기가 꺼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항상 듣기 좋은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험에 의하면 너무 세지 않게 종을 치면 종소리가 울린다.   또한 블레드의 상징인 블레드 성도 위용을 뽐내고 있다. 호숫가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한 모습이 마치 동화책에서 오려내 붙여놓은 듯하다. 성 한편에는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 중인 작은 박물관이 있고 그 외에도 15세기 구텐베르크 활자 인쇄 방식을 재현하는 인쇄소, 갤러리, 카페, 와인 저장고, 대장간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유러피언들은 이곳을 '알프스의 푸른 눈동자'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아름다움에 매혹된 유럽 귀족들은 1000년 전부터 휴양과 힐링을 위해 이곳을 찾았고 옛 티토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카스트로를 자랑스럽게 초대하기도 했다. 티토의 별장은 지금 '호텔 빌라 블레드'가 됐다.     슬로베니아에는 이토록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슬로베니아 알프스 눈동자 슬로베니아 성모마리아 승천 호수 한복판

2024-05-23

[문장으로 읽는 책]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여기서 나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거죠.” 그가 웃는다. “그러면 저들이 당신을 가능한 한 빠르게 치워버릴 거예요.”…나는 여기에 얼마나 더 있게 될까? 갑자기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물 밑에 갇혀 있고 수면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수면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캐서린 조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여기’란 정신병원이다. 아무 문제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를 기다렸고, 사랑스런 아이가 태어났다. 백일잔치를 앞둔 어느 날 아이를 침대에서 안아 올리려는데 아들의 눈이 “악마의 눈으로 바뀌었다”. 호흡이 짧아지고 방안의 벽이 두꺼워졌다. 미친 듯 집에서 뛰어나왔다. 누군가 쫓는 것 같아 SNS 계정을 다 지웠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출산 후 환청과 망상을 동반한 산후정신증에 시달린 기록을 책으로 옮겼다. 병원에서 한동안 작가는 자신이 출산한 사실도, 아이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출산은 축복이지만 모성이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산후우울증을 경험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산후정신증에 대한 생생한 고백이자 모성신화를 예리하게 비트는 책으로, 가디언 등이 2020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부제가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다. 그에게 한국 여성은 어떤 존재일까. “한국의 해녀는 모두 여성이다.…이들이 파도를 헤치고 깊이 잠수해 들어가면서 심청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나는 이들이 진주를 발견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눈물과 같은 진주, 바다 여왕의 선물.”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눈동자 지옥 한국 여성 모성과 광기 수면 위로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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