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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대통령 집무실 이름

조선왕조의 각종 현판에선 건물의 용도와 건립 의미, 나아가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덕수궁이 경운궁이던 시절 남쪽 정문에는 ‘인화문(仁化門)’ 현판이 걸렸다. ‘어진 마음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다. 광화문(光化門), 돈화문(敦化門), 홍화문(弘化門) 등 궁궐 바깥 정문 이름에는 ‘화(化)’자가 들어간다. 백성을 유교적 가치로 널리 교화하려는 의미가 담겼다.   왕의 글씨인 어필을 새긴 현판은 더 귀하게 여겼다. 철종이 쓴 ‘염자보민(念玆保民)’은 ‘백성을 보호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의미다. 창덕궁 정자 취운정엔 ‘진실로 중도를 지키라’는 뜻의 ‘윤집궐중(允執厥中)’이란 어필 현판이 걸렸다. 경희궁 경현당 북쪽엔 ‘양덕당(養德堂)’이란 어필 현판이 있었다. 성군이 되려면 덕을 길러야 한다고 왕이 왕세자를 가르친 것이다.   제아무리 왕이라도 맘대로 정치를 하지는 못했다. 신하에게 권한을 나눠주고 의견을 모아 합의해 결정했다.     조선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의 삼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근무하던 곳의 이름은 ‘정본당(政本堂)’이었다. 신하의 역할이 곧 ‘정치의 근본’임을 상징한다. 홍문관에는 ‘옥당(玉堂)’ 현판이 걸렸다.     왕과 학문을 논하고 자문을 맡았던 이들이 근무하는 곳을 ‘옥과 같이 귀중한 집’이라 부른 것이다.     앞서 거론한 현판은 모두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이상을 걸다-궁중현판’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름 후보작이 5개로 추려졌다.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 등이다. ‘국민의집’은 국민이 대통령실의 주인, ‘국민청사’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聽), 생각한다(思)는 의미다. ‘민음청사’는 국민의 소리를 듣는 관청, ‘바른누리’는 공정한 세상이란 뜻이다. 집무실 도로명에서 딴 ‘이태원로22’엔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통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고 노태우 대통령은 “나는 보통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바꿔 말하면 이전 대통령까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소통을 강조하는 이름이 더 권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지금은 왕조시대도, 군부독재 끝물도 아니다. 집무실 이름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겠다. 이경희 / 한국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장J네트워크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집무실 집무실 이름 노태우 대통령

2022-06-07

[김창준] 30년 만에 간 한국 천지개벽, 눈물이 흘렀다

    2009년 어느 날 한국 신문 1면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췌한 모습이 나와서 충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친동생 재오 씨와 재산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였다. 노 대통령이 소뇌 위축증과 투병 중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소뇌 위축증은 소뇌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소병이다. 운동신경 장애와 함께 손과 발, 안구, 언어 장애에 어지럼증세까지 가져온다고 한다. 심하면 보행이 어렵고 시력 또는 청력을 잃을 수 있다.       슬픔이 밀려왔다. 그분 사진을 보는데 한국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분의 얼굴이라고 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나와 면담했을 때 모습과 너무 달랐다. 순간 인생무상을 느꼈다. 미납한 추징금 340억원을 내기 위해 친동생과 조카, 조카의 장인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는데 마음고생을 하는 게 그분 얼굴에서 묻어 나왔다.       노태우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1992년 2월이었다. 노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에 초청받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 중 처음으로 미국 도시 시장이 된 것을 치하한다는 취지에서 초청했다는 설명이었다. 그 덕에 3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1961년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부패가 굉장히 심한 나라였다. 문교부 시험부터 출국 수속까지, 뇌물을 줘야 일이 풀렸다.       이러한 부정부패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김포 공항을 떠날 때 두 번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역만리 미국에 와서 일주일도 채 되기 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30년 만에 서울 하늘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설렜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밟아보는 조국 땅인가.     상공에서의 서울 모습은 내가 떠났을 때와 딴판이었다. 고층건물이 빽빽했다.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깜짝 놀랐다. 기자가 대거 몰려와 나를 향해 연이어 질문했다. 꽃다발도 받았다. “30년 만에 고국에 온 기분이 어떠냐?” “시장 된 기분이 어떠냐?”     “너무 감격스럽다”고 답변했더니 “어찌 그리 한국말을 잘하느냐”고 기자들이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생활하고 20대에 미국에 간 백그라운드를 모르고 왔나. 속으로 웃었다.       한국 정부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내가 알던 여의도와 너무 달랐다. 차창 밖을 보면서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느꼈다. 내가 떠날 당시 여의도는 미군 기지였고 허허벌판이었다. 마포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갔었다. 30년 사이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이제 서대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광화문과 옛 국회의사당, 시청, 덕수궁 담을 보니 어린 시절 친구들 생각이 났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웅장하고 화려해 보이던 국회의사당이 이제는 초라해 보였다. “이제 저곳은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입니다.” 기사가 설명했다. 서울 시청은 3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단지 색깔이 공기 오염으로 누렇게 변해 있었다.     숙소인 롯데호텔에 도착했다. 옛날 반도호텔 자리였다. 곳곳을 대리석으로 장식해 으리으리했다. 호텔 라운지에 폭포를 갖춘 호사스러움이 대단했다.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 들어갔다. 드디어 노태우 대통령을 만났다. 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나를 환영했다. 인상이 대단히 좋으신 분이었다. 그를 직접 아는 분들이라면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날 밤 ‘강남’이라는 곳에 갔다. 세련된 모습에 놀랐다.   지금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히트하면서 전 세계에서 강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내가 떠났을 당시엔 강남이라는 곳이 없었다. 질서 있게 늘어선 멋진 건물들부터 거리에 다니는 키 큰 젊은 여성들이 마치 내게 ‘한국이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아?’하고 알려주는 듯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잘사는 나라가 된 한국을 보면서 북한 생각이 절로 났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북한 사람들은 영양실조로 키도 작고 못사는데….’     나 자신에게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나’를 계속 되풀이했다. 전쟁의 잿더미 폐허는 완전히 사라지고 화려한 거리가 가득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긍지도 이때 처음 생겼다. 내가 떠났을 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이제 한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해 12월 초. 나는 이번에 연방하원 의원 당선인 자격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초청을 다시 받았다. 그래서 한국 하면 나는 노태우 대통령이 절로 떠오른다. 그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 일처럼 기뻐하던 모습 떠올라  노 전 대통령 별세 소회   내가 다이아몬드바 시장으로서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된 1992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나를 초청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선 직후였기에 당시 한국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이때 만났던 노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의 연방의회 진출이 한국인 전체 영광이며 미주 한인 사회도 사기가 크게 높아졌을 것이라는 인사로 당선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온화하셨습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악수하며 마치 자기 일인 듯 기뻐했습니다. 어제 서거 소식을 접했을 때 당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원용석 기자김창준 천지개벽 한국 한국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한국 정부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21-10-27

[J-Topic] "노태우 전 대통령 침 놓은 사람은 구당 여제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폐에서 발견된 길이 7㎝짜리 한방 침을 놓은 사람은 '뜸사랑' 회장인 구당 김남수(96.사진)옹의 여제자 가운데 한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의계와 노 전 대통령 가족은 10일 SBS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한 여성으로부터 침 치료를 받았으며 이 여성의 실명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김옹이 아끼는 제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밝혔다. '뜸사랑' 회원은 3000~3500명으로 이들은 월 200만원가량의 교육비를 내며 침뜸 기술을 배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모임 회장인 김옹은 암으로 사망한 영화배우 장진영씨에게 뜸을 놓은 사실이 알려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는 회원들을 상대로 노 전 대통령을 치료했던 한의사를 찾는 자체조사를 진행했으나 노 전 대통령에게 침을 놓은 회원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자체 조사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한의협은 노 전 대통령에게 침을 잘못 놓은 사람은 무면허 한의사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김옹의 여제자가 침을 놓은 사실이 알려지자 한의사들은 "누명을 벗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한의협 한진우 홍보이사는 "이번 주 안에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불법의료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에도 조사권 발동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뜸사랑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 같은 거물에게 김옹이 아닌 제자가 침을 놓았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여성 제자가 놓았더라도 수천 명의 여제자 중에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201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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