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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30년 만에 간 한국 천지개벽, 눈물이 흘렀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9> 노태우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 두 번 방문
청와대 초청 시장·연방의원 당선 치하
'한국' 하면 노 전 대통령 절로 떠올라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2월 내가 다이아몬드바 시장이었을 때 나를 청와대에 초청했다. 인상이 정말 좋으신 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2월 내가 다이아몬드바 시장이었을 때 나를 청와대에 초청했다. 인상이 정말 좋으신 분이었다.

 
2009년 어느 날 한국 신문 1면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췌한 모습이 나와서 충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친동생 재오 씨와 재산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였다. 노 대통령이 소뇌 위축증과 투병 중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소뇌 위축증은 소뇌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소병이다. 운동신경 장애와 함께 손과 발, 안구, 언어 장애에 어지럼증세까지 가져온다고 한다. 심하면 보행이 어렵고 시력 또는 청력을 잃을 수 있다.    
 
슬픔이 밀려왔다. 그분 사진을 보는데 한국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분의 얼굴이라고 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나와 면담했을 때 모습과 너무 달랐다. 순간 인생무상을 느꼈다. 미납한 추징금 340억원을 내기 위해 친동생과 조카, 조카의 장인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는데 마음고생을 하는 게 그분 얼굴에서 묻어 나왔다.    
 
노태우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1992년 2월이었다. 노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에 초청받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 중 처음으로 미국 도시 시장이 된 것을 치하한다는 취지에서 초청했다는 설명이었다. 그 덕에 3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1961년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부패가 굉장히 심한 나라였다. 문교부 시험부터 출국 수속까지, 뇌물을 줘야 일이 풀렸다.    
 
이러한 부정부패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김포 공항을 떠날 때 두 번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역만리 미국에 와서 일주일도 채 되기 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30년 만에 서울 하늘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설렜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밟아보는 조국 땅인가.  
 
상공에서의 서울 모습은 내가 떠났을 때와 딴판이었다. 고층건물이 빽빽했다.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깜짝 놀랐다. 기자가 대거 몰려와 나를 향해 연이어 질문했다. 꽃다발도 받았다. “30년 만에 고국에 온 기분이 어떠냐?” “시장 된 기분이 어떠냐?”  
 
“너무 감격스럽다”고 답변했더니 “어찌 그리 한국말을 잘하느냐”고 기자들이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생활하고 20대에 미국에 간 백그라운드를 모르고 왔나. 속으로 웃었다.    
 
한국 정부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내가 알던 여의도와 너무 달랐다. 차창 밖을 보면서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느꼈다. 내가 떠날 당시 여의도는 미군 기지였고 허허벌판이었다. 마포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갔었다. 30년 사이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이제 서대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광화문과 옛 국회의사당, 시청, 덕수궁 담을 보니 어린 시절 친구들 생각이 났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웅장하고 화려해 보이던 국회의사당이 이제는 초라해 보였다. “이제 저곳은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입니다.” 기사가 설명했다. 서울 시청은 3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단지 색깔이 공기 오염으로 누렇게 변해 있었다.  
 
숙소인 롯데호텔에 도착했다. 옛날 반도호텔 자리였다. 곳곳을 대리석으로 장식해 으리으리했다. 호텔 라운지에 폭포를 갖춘 호사스러움이 대단했다.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 들어갔다. 드디어 노태우 대통령을 만났다. 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나를 환영했다. 인상이 대단히 좋으신 분이었다. 그를 직접 아는 분들이라면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날 밤 ‘강남’이라는 곳에 갔다. 세련된 모습에 놀랐다.
 
지금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히트하면서 전 세계에서 강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내가 떠났을 당시엔 강남이라는 곳이 없었다. 질서 있게 늘어선 멋진 건물들부터 거리에 다니는 키 큰 젊은 여성들이 마치 내게 ‘한국이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아?’하고 알려주는 듯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잘사는 나라가 된 한국을 보면서 북한 생각이 절로 났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북한 사람들은 영양실조로 키도 작고 못사는데….’  
 
나 자신에게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나’를 계속 되풀이했다. 전쟁의 잿더미 폐허는 완전히 사라지고 화려한 거리가 가득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긍지도 이때 처음 생겼다. 내가 떠났을 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이제 한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해 12월 초. 나는 이번에 연방하원 의원 당선인 자격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초청을 다시 받았다. 그래서 한국 하면 나는 노태우 대통령이 절로 떠오른다. 그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 일처럼 기뻐하던 모습 떠올라 
노 전 대통령 별세 소회

 
내가 다이아몬드바 시장으로서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된 1992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나를 초청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선 직후였기에 당시 한국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이때 만났던 노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의 연방의회 진출이 한국인 전체 영광이며 미주 한인 사회도 사기가 크게 높아졌을 것이라는 인사로 당선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온화하셨습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악수하며 마치 자기 일인 듯 기뻐했습니다. 어제 서거 소식을 접했을 때 당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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