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틴 볼디 실종 정진택씨 58시간 생존기…눈구덩이 파고 체온 유지 이틀 버텨
“강풍에 눈보라가 계속 몰아치는데 마운틴 볼디 정상 인근 능선에서 길을 잃었어요. 바람이 불고 도저히 내려갈 방법이 없더라고요. ‘이대로 내려가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만 들었죠. 오후 4시쯤 아직 해가 있을 때 밤을 지새울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두 나무가 달라붙은 줄기 아래쪽) 눈을 판 뒤 백팩을 깔고 누웠어요. 온기를 유지하려고 웅크린 채 밤새 한잠도 못 잤죠.” 지난 22일 오전 6시 30분 마운틴 볼디 정상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 58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정진택(75)씨. 지난 29일 동상 치료 후 병원에서 퇴원한 정씨는 겨울 단독산행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는 마운틴 볼디 능선에서 길을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체온유지에 노력해 구조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씨가 지인과 나눈 대화 녹음을 바탕으로 아찔했던 상황을 되짚어봤다. 고령의 정씨는 산악마라톤을 즐길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실종 당일도 정씨는 샌안토니오 폭포 등산로 입구에서 차경석 전 북미산악회 회장 및 지인 1명과 헤어졌다. 세 사람은 오후 1시쯤 마운틴 볼디 스키장 리프트 정상에서 만나기로 했다. 단독산행에 나섰던 정씨는 자신이 길을 잃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운틴 볼디의 겨울은 설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날씨는 강풍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바람이 한 번 불면 쌓인 눈이 흩날려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정씨는 “(정상에 오른 뒤) 내려오는 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며 “길을 알 수가 없어 일단 해가 떠 있을 때 안전한 장소에 몸을 피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실종 당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정씨는 더 막막한 상황에 부닥쳤다. 그는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단 1분도 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길을 찾으려 움직였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그치고 산비탈을 내려오다가 장갑과 등산 스틱 한 개도 잃어버렸다. 해가 또 지려고 해 다시 밤을 지새울 눈구덩이를 팠다”고 말했다. 다행히 산행에 나설 당시 정씨는 에너지바 등이 담긴 백팩, 방한복 등을 잘 갖췄다고 한다. 덕분에 실종 58시간 동안 탈진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정씨의 긍정적 마음가짐은 마운틴 볼디의 강추위 밤을 이겨낼 원동력이 됐다. 그는 “두 번째 밤을 새우면서 불안한 마음은 0.01%도 들지 않았다. 내가 이러다 죽는다든지, 불안하다든지, 원망스럽지도 않았고 편안했다. 일부러 시계를 안 보기도 했다. 그러다 잠이 들어 깨보니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실종 사흘째, 강풍이 잦아들자 정씨는 산봉우리에서 아래쪽 도로를 찾았다고 한다. 등산 스틱 하나에 의지한 채 멀리 보이는 도로를 향해 눈길을 한 발 한 발 내려왔다고 한다. “(24일)오후 2시쯤 산에서 내려오는 데 저 멀리서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도와달라고 소리 질렀지만, 인사하는 줄 알았는지 손만 흔들어주더니 가버렸어요. 조금 더 지나니 또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셰리프국에 연락했고, 1시간 뒤쯤 구조대를 만나 등산로 입구까지 내려올 수 있었어요.” 한편 구조된 정씨 병문안을 한 차 전 회장은 “그는 30일 등산로 입구를 다시 찾아가 볼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전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마운틴 노익장 실종 사흘째 한인 노익장 실종 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