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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세상은 아름다운 꽃밭이다

산색은 벌써 가을을 머금었다. 밤나무 아래 이른 밤송이가 떨어져 뒹군다. 갈색빛 작은 밤송이를 두 손으로 잔뜩 쥐어들고 횡재했다는 표정을 짓는, 산책길에 동행한 대중들 덕에 한참을 웃었다. 아침이면 산안개 가득하고 낮에는 햇볕이 따갑다. 덕분에 나무와 곡식 열매가 익어간다. 텃밭 가꾸는 손길이 분주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입안 가득 향기를 담아주었던 채소를 뽑아낸 자리에 배추·무·상추·시금치·고수 등 가지가지의 가을 씨앗을 뿌렸다. 할 일을 마친 듯 개운하다.   여름철 학생에게는 방학이 있고, 직장인에게 휴가가 있다. 산중 절에서도 뭔가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여, 매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삐 지내고 있다. 사람들과 솔바람을 나누고, 모든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텅 빈 마당을 선물하기 위해서이다.   쉴 틈 없이 뛰어다닌 뒤에 맞이하는 나의 9월은, 그래서 할 일을 해 마친 고승의 마음마냥 자유롭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부지런히 정리하다가 문득 돌아보니, 지난여름에 만난 사람 모두가 내게 스승이었고 부처님이었다.   들어오는 생각 때문에 괴롭고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이제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시간으로 충분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연민하는 감정, 내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라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정 나는 누구인가!’ ‘이제까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왔는가?’(김○○)   온갖 갑옷 속에 갇힌 내 모습을 보았다. 저 단단한 갑옷 속에 있는 ‘본래 고요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 찾고 싶다. 다시 수많은 생각 속에서 헤매고 싶지 않다. 이제 살고 싶다. 슬픔이 계속 찾아오더라도 위로하고 그런 나를 살피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서운하다고 힘들다고만 했는데 모두 감사하다. 내가 만든 틀 속에서 생각해왔구나, 자각하며 살아야겠다.(한○○)   금강 스님께서 나를 찬찬히 바라보실 때, 스님께서 일러주신 말씀, “나의 본래 마음아, 참 곱기도 하구나! 안녕? 그때야 수줍게 숨어있던 나의 본래 마음이 인사를 합니다”가 떠올랐습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본래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지혜를 얻고 자비를 실천하며 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세상에 도움 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 것입니다.(최○○)   나의 룸메이트는 자식을 잃었다. 그녀의 아픈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룸메이트인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애도와 그 치유 과정을 공부한 내가 그녀의 아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나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수행의 여정을 지켜보며 오히려 그녀가 나를 돕고 있다는 걸 알았다. 최선을 다해 아픔을 직면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의 덜 익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삶과 생명에 대한 이해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손○○)   부처님은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보고 대하라고 가르치셨다. 화엄경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완전한 지혜와 자비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달마 대사는 “성인과 중생은 동일한 참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했고, 혜능 대사는 “그대의 본래성품은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가르쳤다. 이렇듯 눈 밝은 선각자는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의 바탕인 완전한 근본성품을 본다.   누군가가 나를 볼 때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온전한 존재로 있는 그대로 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고, 불안한 눈빛을 거두고,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눈빛을 거두고, 나의 겉껍질인 게으르고, 욕심부리고, 질투하고, 짜증을 내는 마음마저도 따뜻한 자비의 마음으로 감싸주며 “너의 본마음은 밝고, 청정하고 지혜롭다”고 확인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신라 의상 스님은 화엄경 60권을 배우고 ‘화엄일승법계도’라는 한 장의 그림에 덧붙인 210자의 ‘법성게’를 지었다. 우주만물은 서로 조화롭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무한히 돕고 있다는 법계연기설과,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며 모든 중생 이대로가 완벽한 부처라는 불이중도의 깨달음이 법성게에 담겨 있다.   법성게의 첫 구절 ‘텅 빈 우리의 마음과 우주는 원만하고 조화롭다. 그 모든 현상은 움직임 없이 본래대로 고요하다’는, 깨달음의 눈으로 본다면 개개인이 부처이고 우주 전체가 진리의 몸이라는 가르침이다.   과거에 만난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이었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부처님이며, 내일 만날 사람도 부처님이라면, 모든 만남이 얼마나 기쁘고 가슴 벅차게 기다려질까. 이런 마음으로 꾸려가는 삶의 모든 행위는 조화롭고 완전하다. 또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그대로가 큰 꽃밭(世界一花)이다. 금강 스님 / 중앙승가대 교수삶의 향기 꽃밭 가을 중생과 부처 본래 마음 금강 스님

2023-09-10

[이 아침에] 시방 그곳이 바로 꽃밭이니라

우리말에 ‘꽃’으로 시작하는 말이 여럿 있다. ‘꽃향기, 꽃가루, 꽃다발’처럼 꽃과 직접 연관된 말도 있지만, ‘꽃길, 꽃동네, 꽃노을’과 같은 말에 붙는 ‘꽃’은 ‘좋고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평탄하게 걸어온 인생길을 ‘꽃길’이라고 하고, 정겹고 화목한 동네를 ‘꽃동네’, 고운 색으로 아름답게 물든 노을을 ‘꽃노을’이라고 부른다.     시인 구상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자리’ 앞에 ‘꽃’을 붙여 누구나 바라는 평안한 삶의 자리라는 뜻의 ‘꽃자리’라는 말을 만들고는 같은 제목의 시를 썼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꽃’이 앞에 붙는 말이 좋고, 아름답고, 순탄한 형편을 말한다면, ‘가시’라는 말은 어렵고, 힘들고, 험한 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야말로 향긋한 꽃내음이 복욱한 ‘꽃자리’라고 시인은 단언했다.     ‘가시방석’이 ‘꽃자리’가 될 수 있다는 시인의 상상력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비추자, 이런저런 일로 험하디험한 인생의 ‘가시밭길’도 ‘꽃길’이 되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내친김에 ‘꽃자리’라는 시의 2절을 만들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가는 길이 꽃길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밭길처럼 여기는 / 네가 가는 그 길이 / 바로 꽃길이니라’.   사람은 누구나 ‘꽃길’만 걷길 원하고, 삶의 자리는 항상 ‘꽃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미국에 오면 ‘꽃길’만 걸어 ‘꽃자리’에 이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민자의 삶은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일 때가 더 많았고, ‘꽃자리’보다는 ‘가시방석’에 앉을 때가 더 잦았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에서 시작된 ‘가시방석’이 ‘꽃자리’가 된다는 문학적 상상이 나래를 펴 ‘가시밭길’이 ‘꽃길’이 될 때쯤, 이번에는 ‘가시덤불’이 떠올랐다. ‘가시덤불’은 가시나무의 넝쿨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로, 일이나 삶에 어려움을 주는 역경을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과 가시방석에 앉은 이들이 뭉쳐 신세 한탄을 하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가시덤불로 바뀐다. 그뿐이랴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독설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가시로 돋아 가시덤불을 만든다.     ‘가시방석’이 ‘꽃자리’가 된다는 구상 시인의 시에 덧붙여 ‘가시밭길’이 ‘꽃길’이 된다는 ‘꽃자리’ 2절을 외람되게 쓴 김에 이번에는 ‘가시덤불’을 주제로 ‘꽃자리’의 3절마저 써 보았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서 있는 곳이 꽃밭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덤불처럼 여기는 / 네가 서 있는 그곳이 / 바로 꽃밭이니라’.   가시방석처럼 거칠고 낯선 땅을 꽃자리로 여기며, 이민자의 삶이라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을 꽃길인 양 달려왔다. 그렇게 괜찮은 척하던 마음이 속으로는 엉겨 붙었고, 겉으로는 얽히고설켜 가시덤불이 되었다. 그렇다고 인생을 홀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가시덤불 같은 세상이지만 서로의 꽃내음을 맡으며 살 때 ‘시방 그곳이 바로 꽃밭’이 될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꽃밭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꽃밭 꽃길 꽃동네 꽃밭 하나 구상 시인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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