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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국문화원, 김환기 특별전

김환기(1913-1974) 작가가 50대 들어 순수추상미술의 꽃을 피웠던 뉴욕에서의 작품을 톺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뉴욕한국문화원은 맨해튼 코리아타운 신청사(122 E. 32스트리트) 이전 기념 전시로 김 작가의 특별전 ‘환기 인 뉴욕(Whanki in New York.포스터)’을 서울 환기미술관과 협업해 다음달 2일부터 오는 6월 13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글로벌기업 LG전자가 헤드라인 파트너로, 네일뷰티기업 대싱디바가 공식후원사로 나선다.   이는 김 작가가 지난 1974년 7월 뉴욕서 타계한지 5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김 작가는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서 명예상을 받은 후 50세가 되어서야 뉴욕에 정착했다.   통상적으로 김 작가의 뉴욕 활동 시기는 완성도 높은 점화 등으로 절정을 이뤘다고 평한다. ▶일본 유학 도쿄시대(1933~1937) ▶한국서 두각을 드러낸 서울시대(1937~1956) ▶파리시대(1956~1959)에 이은 뉴욕시대(1963~1974)는 김 작가의 점화 시리즈 등이 본격 집대성된 시기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을 받는데, 서양추상미술과 한국 정서를 결합한 점화시리즈가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별전엔 이 시기를 보낸 김 작가가 남긴 ▶사진 ▶일기 ▶종이 작품 ▶편지 등을 중점적으로 구성했다. 이밖에도 ▶김 작가의 뉴욕 지인 소장품 ▶LG전자의 작품 재해석 디지털 전시물 5점이 공개된다.   김천수 문화원장은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인 김환기 화백은 그의 전성기와 생애 마지막을 뉴욕에서 보내며 이른바 전면점화라 불리는 추상미술의 정점을 이곳에서 완성했다”며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 개관 기념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김환기 사후 50년만에 뉴욕에서 개최되는 가장 크고 공신력 있는 전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김환기의 예술정신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원 갤러리 운영시간은 화~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객을 만난다.   문의는 전화(212-759-9550, #Ext.204)로 하면 된다. 강민혜 기자 [email protected] 뉴욕한국문화원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 김환기 화백 김환기 사후

2024-04-2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조성진 그리고 김환기, 베토벤, 모네

오랜만에 Chicago downtown Michigan 거리에 왔다. 젊은 시절 이 거리를 걸으며 미래를 꿈꾸었던 곳. 크리스마스트리에 전등이 켜지고 캐럴이 은은히 들려왔었다. 거리를 걷다 말고 마천루 빌딩 숲에서 불 켜진, 혹은 꺼져있는 창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나랴.’ 김환기 화백의 점들로 찍힌 그림이 오버래핑 되던 시간이었다. 그의 뉴욕 유학시절, 점 하나에 찍힌 그리움, 점 하나의 사랑, 이별, 아픔, 견딤의 삶들이 절로 이해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거리를 다시 걷고 있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하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회에 왔다. 빈 곳을 찾아볼 수 없이 좌석이 차고 무대 위에는 악기의 음을 튜닝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upper level balcony left side F21 좌석에 앉아있다. 시카고 심포니의 ‘Musica Celestis’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 곡은 String만을 위한 특별한 곡이다. 그러기에 여느 오케스트라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숨소리마저 멈춘 높고 큰 공간 속에 바람이 불어오듯 부드럽고도 아픈 서막이 열리고 있다. 황량한 광야를 걷고 있는 사람의 등 뒤를 밀고 가는 바람. 격렬한 바람에 밀려 한참을 밀려가다 멈춰 선다. 물결 같은 잔잔한 울림이라고 해야 할까? 멀리 먼동이 트듯 천상의 음률이 들려오는 듯하다. 터지는 박수소리에 멈추었던 호흡을 길게 내쉬어본다.   무대 앞부분이 내려가고 길이가 긴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앞자리 바이올린 1주자가 일어나 전체 튜닝을 한음으로 짧게 한다. 홀을 가득 채우는 박수소리와 함께 조성진이 무대로 오른다. 허리 굽혀 인사한 후 이내 자리에 앉는다. 지휘자 Gemma New의 손끝을 타고 베토벤의 피아노 콘서트 No.3 연주가 시작된다.     연이어 조성진의 물 흐르듯 감미로운 연주가 이어진다. 현악과 관악이 주고받으며 펼쳐지는 연주를 끌고 가는 피아노의 음률은 마치 구슬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때론 바위 같은 묵직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눈을 감는다. 넓은 연회장이 펼쳐지고 미끄러지듯 남녀 한 쌍의 춤사위가 나비처럼 나른다. 건반을 누르는 상체의 힘으로 몸이 잠시 허공에 들린다. 지휘자의 어우르는 손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손과, 7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멤버의 각각의 손들이 만들어낸 소리. 심장 박동이 마구 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을 때였다. 작곡가가 청력을 잃었다면 그의 생명은 이미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한 단조로 작곡된 피아노 콘서트 No. 3는 청력 상실이라는 좌절을 딛고 자신만의 심오한 작품 세계로 몰입하게 된 결과 탄생하게 되었다.     인상주의, 빛의 화가 모네는 말년에 거의 사물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약해졌었다. 모네의 정원엔 연못이 있었고 수란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모네는 그 시기에 250여 연작의 수란을 그렸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The Water-Lily Pond는 거의 실명 상태에서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베토벤의 청각 상실과 모네의 거의 볼 수 없던 시각으로 희대의 작곡과 명작이 탄생된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이긴 뼈를 깍는 창작 활동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의 Standing Ovation 끝에 앵콜송, Moonlight가 연주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열광하는 팬들은 그가 떠난 무대를 향해 오랫동안 박수로 그를 열광했다.     2시간에 걸친 공연은 막을 내렸다. 공연장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 김환기, 조성진, 베토벤 그리고 모네. 미시간 거리에는 잔잔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조성진 김환기 피아니스트 조성진 피아노 연주회 당시 베토벤

2024-02-12

[아트&디자인] 달을 사랑한 화가 김환기, 그를 다시 알게 된 100일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만 될 것 같소.”   전시장에서 이 문장을 보고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이 작가가 누구인지 짐작되시는지요. 네, 맞습니다. 김환기(1913~1974)입니다. 1956년 파리로 간 그가 이듬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다”며 쓴 것입니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5월 18일 개막한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가 10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10일 막 내렸습니다. 회화와 드로잉, 신문지 작업과 스케치북 등 약 120여 점을 망라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미술관에서 이런 규모로 열린 김환기 전시가 거의 40년 만이었습니다. 197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주기 전시, 1985년 10주기 전시가 열린 적 있는데요, 이번이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전시의 감동은 규모 그 자체보다 내용의 깊이에서 왔습니다. 정제된 구성으로 배치된 그림과 글은 그의 화폭에서 달과 달항아리가 점으로 변화해가는 여정을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다시 ‘항아리 귀신’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김환기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달과 항아리를 그렸는지 궁금하시죠. 그는 달항아리의 빛과 형태에서 한국적 추상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화폭에 이를 실현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형과 늘 얘기했지만 코르뷔제(르코르뷔지에,1887~1965) 건축이나 정원에다 우리 이조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 1953년 김중업(1922~1988) 건축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대 건축의 선구자’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과 백자를 함께 언급한 대목도 눈에 띕니다. 시대를 초월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꿰뚫어 본 예술가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참 신기하죠. 전시를 보면 볼수록, 그리고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수록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좋은 미술관 전시일수록 작가를 새로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김환기의 그림 한 점 가격이 2019년 132억원을 기록했다는 것은 너무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오십 넘은 나이에 낯선 땅 뉴욕에서 하루는 절망하고, 또 하루는 자신감 얻기를 반복하며 작업을 지속해 온 그의 삶을 차분히 조명했습니다. 전시를 위해 작품을 대여해준 개인 소장가가 40명에 달하니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모로 한국 미술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전시입니다.   삼성문화재단에 따르면 이번 전시를 본 관람객은 15만 명에 이릅니다. 2021년 ‘야금(冶金): 위대한 지혜’ 전을 본 관람객 수의 3배입니다. 이 전시를 놓쳐 너무 아쉽다면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열리는 ‘환기, 점점화(點點畵) 1970-74’(12월 3일까지) 나들이는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도 김환기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이은주 / 한국 문화선임기자아트&디자인 김환기 사랑 김환기 전시 하늘 김환기 항아리 귀신

2023-09-13

[이 아침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 〈저녁에〉   얼마 전 문인협회 이사였던 고 변재무 시인의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말을 예의 또 되뇌었다. 대학 4년 내내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이 말은 그 이후로 누가 내 곁을 떠날 때마다 저절로 입속에서 나오는 말이 되어버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한국 아방가르드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화가의 작품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이 제목은 친구인 김광섭 시인이 편지로 보내준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그가 뉴욕에서 가난하게 살던 1970년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잘못된 부고 소식을 듣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에 바로 이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리움으로 가득한 이 그림은 그해 서울로 보내져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짙은 푸른색의 작은 점들이 화면 전체에 가득 찍힌 이 추상화는 우주의 공간을 느끼게 한다고 하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해외에 살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만가지 생각을 다 점으로 찍었다고 한다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빗소리를 들으며 점을 찍고 친구가 보고 싶을 때도 점을 찍고 아내 김향안(이때는 떨어져 살았음)이 보고 싶을 때도 점을 찍으며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김향안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로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바로 첫 남편이었던 시인 이상의 “같이 죽을까”라는 이상한 사랑 고백을 받고 그 길로 짐을 싸 들고 나와 결혼한 당찬 여자였다. 비록 4개월 만에 이상의 죽음으로 결혼생활이 끝났지만 둘은 애정으로 뭉친 멋진 부부였다. 이후 일본 시인의 소개로 아이가 셋이나 달린 무명의 김환기 화가와 다시 결혼하였다.     이상과 결혼 당시에는 변동림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그녀는 김환기 화가와 결혼한 후 김향안으로 개명했으며 남편을 일류 화가로 만든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그녀는 화랑주인인 모딜리아니의 초상화 ‘부채를 든 여인’의 모델이었던 튜나와 가까이 지내면서 김환기의 파리 첫 개인전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두 천재와 결혼하고 두 남편을 모두 유명한 작가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김환기 작가는 뉴욕에서 61세로 정작 김광섭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후에는 김광섭 시인 역시 오랜 투병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마감했다. 문학과 미술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을까.  정국희 / 시인이 아침에 김광섭 시인 김환기 화가 정작 김광섭

2023-06-23

[문화 산책] 탄생 110주년에 재조명된 예술가

한국 서양화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백철극(간노미) 화백의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하는 회고전이 LA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번 회고전에는 백 화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나기’와 ‘비’ 연작, ‘예수 얼굴’ 연작을 비롯해서, 1940년도 일본미술가협회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상하이 거리’ 등 24여점의 유화작품과 다양한 드로잉 작품, 생전에 남긴 편지와 사진 등의 자료가 폭넓게 전시되어, 작가의 작품세계와 삶을 다시 살펴보고 평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이 회고전은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을 시사한다. 우선은,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은 백간노미 화백의 작품세계와 미술사에서의 위치에 대한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잊혀진 작가를 재평가하고 조명하는 의미있는 작업을 문화원 같은 공공기관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씀이 지금도 진리로 통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유족이나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갈무리하고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예술작품은 영원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백철극(간노미) 화백은 1912년 평안북도 박천 태생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1934년 일본 도쿄 니혼대학 미술과에 입학하여, 같은 과 동창이며 친구인 김환기 화백과 함께 공부했고, 한국 초창기 서양화 1세대의 한 사람으로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남관 등의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백 화백의 작품들에는 ‘간노미(Gannomi)’라는 서명이 적혀 있는데, 이는 평안도 사투리로 금방 낳은 어린애를 뜻하는 말로, 어머니가 사투리로 정감 있게 불렀던 것을 잊지 못해 평생 즐겨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유학 이후 백간노미 화백은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했고, 세계무대를 목표로 캐나다 몬트리올, 파리, 뉴욕, LA 등지로 옮겨 다니며 활발하게 자기 세계를 펼쳤고, 많은 상을 받으며, 관심을 모았다.   1970년 뉴욕 개인전을 시작으로 뉴욕과 파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며,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한국적 정서의 개성적인 추상화로 주목 받았다.     말년에는 LA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펼치다가 2007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서양화 1세대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정작 대중이 백 화백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최근 들어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LA아트페어 등을 통해 유작들이 소개되는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LA한국문화원의 회고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화원의 가장 큰 임무는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주류사회에 널리 알리는 일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지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잊혀진 예술가를 발굴해서 재평가하는 작업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한국 문화는 풍성해지고, 한국문화의 세계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웬만한 대가들은 지자체와 협업으로 개인 미술관을 마련하는 것이 보통이고, 살아 생전에 개인 미술관을 개관하는 작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문화 세계화의 첨단기지인 해외의 한인사회는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 남가주 미술계에도 재조명하고 새롭게 평가해야 할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우식, 임규삼, 김순련, 황하진, 한국화가 이명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한 판화가 배융, 서예가 소지 강창원, 하농 김순욱 등…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따스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 산책 재조명 예술가 이번 la한국문화원 한국문화 세계화 김환기 화백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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