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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 〈저녁에〉
 
얼마 전 문인협회 이사였던 고 변재무 시인의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말을 예의 또 되뇌었다. 대학 4년 내내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이 말은 그 이후로 누가 내 곁을 떠날 때마다 저절로 입속에서 나오는 말이 되어버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한국 아방가르드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화가의 작품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이 제목은 친구인 김광섭 시인이 편지로 보내준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그가 뉴욕에서 가난하게 살던 1970년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잘못된 부고 소식을 듣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에 바로 이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리움으로 가득한 이 그림은 그해 서울로 보내져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짙은 푸른색의 작은 점들이 화면 전체에 가득 찍힌 이 추상화는 우주의 공간을 느끼게 한다고 하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해외에 살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만가지 생각을 다 점으로 찍었다고 한다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빗소리를 들으며 점을 찍고 친구가 보고 싶을 때도 점을 찍고 아내 김향안(이때는 떨어져 살았음)이 보고 싶을 때도 점을 찍으며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김향안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로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바로 첫 남편이었던 시인 이상의 “같이 죽을까”라는 이상한 사랑 고백을 받고 그 길로 짐을 싸 들고 나와 결혼한 당찬 여자였다. 비록 4개월 만에 이상의 죽음으로 결혼생활이 끝났지만 둘은 애정으로 뭉친 멋진 부부였다. 이후 일본 시인의 소개로 아이가 셋이나 달린 무명의 김환기 화가와 다시 결혼하였다.  
 
이상과 결혼 당시에는 변동림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그녀는 김환기 화가와 결혼한 후 김향안으로 개명했으며 남편을 일류 화가로 만든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그녀는 화랑주인인 모딜리아니의 초상화 ‘부채를 든 여인’의 모델이었던 튜나와 가까이 지내면서 김환기의 파리 첫 개인전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두 천재와 결혼하고 두 남편을 모두 유명한 작가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김환기 작가는 뉴욕에서 61세로 정작 김광섭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후에는 김광섭 시인 역시 오랜 투병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마감했다. 문학과 미술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을까. 

정국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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