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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전쟁

이미 시작된 전쟁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과연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앞선 과오를 뒤돌아 성찰하고 뼈아프게 반성한다면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지만, 반성하지 않는다면 지난 모든 과오가 그대로 되살아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 반성 없는 역사의 반복을 염려한 나머지 온몸으로 징계와 성찰의 붓을 든 인물이 서애 류성룡이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을 발탁해 최전방의 요직을 맡기는가 하면 전쟁이 터지자 영의정과 도체찰사로서 동양3국의 국제전을 잘 이끌어 조선에 승리를 안긴 난세의 정치인이었다. 〈징비록(懲毖錄)〉은 그가 겪은 임진왜란의 기록서이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 국정이 가장 어렵던 5년간 영의정을 지냈다. 이순신이 전선에서 싸운 최고의 장수였다면, 류성룡은 전시 국정을 운영한 최고의 리더였다. 류성룡은 비록 파직됐지만, 전쟁의 뼈아픈 기억을 교훈 삼기 위해 집필을 시작했다. 1598년 관직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 하회로 돌아간 류성룡은 전란 중에 겪은 성패의 자취를 곰곰이 반성하고 고찰해, 뒷날의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징비록〉을 썼다. '징비'(懲毖)’란 무엇인가. 지나간 날들을 징계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간다는 뜻이다. 〈징비록〉은 400여 년 전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오늘도 살아 있는 역사로서 읽히는 우리 기록문화의 보물 같은 자산이다. 1592년(선조 25년)~1598년까지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하고 당시 최고위층에 있으면서 전쟁의 실상을 겪은 저자가 후일에 있을지도 모를 더 큰 우환을 경계하고자 집필한 책, 〈징비록〉은 현재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징비록)〉은 가슴을 찌른다. ‘쓰러지는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는 서애 유성룡의 말이 통렬하다. '지난 잘못을 징계해 미래의 환란을 경계함'이 징비(懲毖)다. 선조가 명나라로 내부(內附·귀순)하려 하자 유성룡이 필사적으로 막았다. 민심 수습과 산업 장려, 명과의 교섭, 군비 강화도 서애의 몫이었다. 명·왜의 조선 분할 획책을 온몸으로 저지한 것도 서애였다. 유성룡은 '징비록' 맨 앞에 그 100여 년 전 외교·국방 전문가인 신숙주의 유언을 인용했다. 세종대왕의 명으로 1443년 27세에 일본을 다녀온 신숙주는 〈해동제국기〉로 일본을 분석한다. 나라의 길을 묻는 성종에게 신숙주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징비록〉을 능가할 임진왜란 기록물은 없다. 영의정과 도체찰사로서 국정과 군무(軍務)를 총괄한 서애는 난의 근본을 밝힌다. 국가 리더십 붕괴가 부른 총체적 위기와 비정한 국제정치를 낱낱이 해부한다. 〈징비록〉은 1633년 처음 출간된 후 1695년 일본에서도 간행됐고 중국에서도 읽혔다. 〈징비록〉에는 실제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이겼던 기록보다는 패했던 기록의 내용이 더 상세하게 적혀 있다. 누가 잘못해서, 무엇이 부족해서 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충정이었다.   17세기 초반 간행된 〈징비록〉이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면서 빛을 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류성룡이 보인 솔직한 고백과 통렬한 자기반성 때문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의 서문에서 “나같이 불초한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중대한 책임을 맡아 위태로운 시국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몸을 낮춘다. 그러면서 자신을 비롯한 조선 지도층의 과오와 무능을 사실대로 서술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보다 더 예민하게 〈징비록〉을 주목한 것은 일본이었다. 〈징비록〉은 1695년 일본에서 간행된다. 초판 〈징비록〉의 서문에서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은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나약하여 빨리 패하고 기왓장과 흙이 무너지듯 한 것은 평소 가르치지 않고 방어의 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전쟁을 잊은 것이다.” 날카롭고 뼈아픈 지적이다.     최근 국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있다. 중국 문제 전문가 이철 박사의 〈이미 시작된 전쟁〉.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온다. 저자는‘중국의 대만 침공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는 중국은  대만을 치기 전에 주한 미군을 묶어두기 위해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을 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난 3월 19일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전의 도발과 달리 최초로 한국 전역과 일본 일부에 핵 타격을 염두에 둔 시험 발사이었기에 우리나라에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2월 4일 미국 본토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이 격추됐다. “내 직감으로는 2025년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미 공군 기동사령부 마이클 미니헌 장군의 말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과 북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 예기치 못한 물리적 충돌이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 공격을 결정하는 순간, 북한의 남한 공격이 시작된다.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에는 수백 발의 방사포와 미사일의 강철비가 쏟아지고, 한국이 응전하면 북한은 수도권 전 지역으로 미사일 공격을 확대할 것이다. 이때 중국은 대만 침공을 시작한다. 응전을 위해 미국은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대만으로 보내고 결국 대만 내륙에서 시가전이 벌어진다. 미국의 요청으로 일본, 캐나다, 호주, 영국, NATO가 참전을 선언하면 중국은 러시아에 참전을 요청한다. 이 상황이 우리가 목도하게 될 양안 전쟁에서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 시나리오다. 중국은 대만 침공과 동시에 한반도에 제2전선을 만들어 태평양 미군을 한반도와 대만으로 양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이 아니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것은 동서 양면에서 두 전선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군에도 양면 전선은 힘겹다. 더구나 중국엔 한반도 제2전선을 대신 만들어줄 북한이 있다. 북한이 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것은 한국의 대중국 정책에 따라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군사 작전상 필요에 따른 것이다. ‘설마’의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도 우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중국이 우리를 대만 전쟁에 끌고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지역 중 수년 내에 전쟁이 또 발발하는 곳이 있다면 대만일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가능성이 낮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만약 중국이 국가 운명을 걸고 대만을 침공하는 대도박을 감행한다면 대만과 동시에 중국 미사일이 떨어질 나라가 둘 있다. 한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에 모두 미 공군기지가 있다. 중국 입장에선 한일 기지에서 출격하는 미 전투기들이 대만에 상륙하는 중국 해군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한미 동맹이 없어지지 않는 한 중국의 한반도 제2전선 시도는 막을 수 없다. 한국 입장에서 우리 땅에 대만 불똥이 떨어지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중국이 대만 침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순간 그 불길은 한국에 옮겨붙는다. ‘중국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 말라’는 것은 국제사회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지만 잠재적 피해국인 한국민에겐 절실한 요구다. 대만해협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민주당이 마치 윤 대통령 언급 내용 자체가 잘못된 듯이 공격하는 것은 대만 문제의 필연적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어차피 남의 땅에 불 지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그에게 잘 보이면 불을 안 지를 것’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하다기보다는 어리석다. 민주당은 북핵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입장을 취해왔다. 류성룡이 감당한 현실은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잡아먹어 길가에 사람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진” 현장이었다. 성리학 이념에 대한 맹종이 망친 나라를 현실주의 시무(時務) 리더십이 살렸다. 〈징비록〉은 통치자가 선악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현실을 외면하면 국가에 환란이 닥친다고 외친다. 외교 안보와 경제를 이념과 도덕근본주의가 망친다고 고발한다.     한국수뇌부의 대만해협 발언에 대해 중국 당국은 즉각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당국은 부용치훼(不容置喙)라는, 거의 욕설에 가까운 용어를 썼다. 부용치훼는 직역하면 ‘말참견을 허용치 않는다’는 것이지만 이 용어가 극히 드물게 쓰이는 이유는 그 참뜻이 ‘주둥아리 닥치고 있으라’는 막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중국의 오만함과 한국 무시를 언제까지 참고 있을 것인가. 우리의 과거는 우리가 그렇게 대접받아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약한 나라였다. 조선의 문화는 중원에 종속됐을 때 가장 선진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사대의 극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서고 있다. 세계가 우리의 의견과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더 이상 중국 대륙에 붙어있는 ‘껌딱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나라의 기둥이 되고 법치가 생활이 되는 나라로 발돋움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의 체제에 언급하지 않는다. 중국이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지 우리의 직접적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문제다. 또 중국이 미국과 또는 다른 나라와 어떤 관계인지, 무엇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안위에 관한 것일 때, 그것이 한국의 국격과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 때 ‘할 말은 하는’, 존재감 있는 이웃으로 살기를 원할 뿐이다. 과거 세계 역사에서 약소국이 살아남는 길은 어느 한쪽의 강대국에 빌붙어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중진국으로 올라서고 있는 한국이 행세하는 길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한국을 속국시하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을 전략적 동맹으로 삼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를 알기 위함이다. “천하가 비록 편안하여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는 사마양저의 말은 우리에게 주는 준엄한 경고처럼 들린다.     김지민 기자시작 전쟁 임진왜란 기록물 한국 전역 임진왜란 정유재란

2023-05-04

[J네트워크] 죽어서 남긴 ‘디지털 가죽’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소셜미디어에 쓴 글이나 e메일, 카카오톡 기록, 음성파일 등등. 개인의 디지털 기록물도 ‘상속’ 대상일까. 최근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4월 3200만 계정을 복구하고 서비스를 재개한 싸이월드 운영사가 망자의 기록물을 유산으로 보는 수정 약관을 공개하면서다. ‘계정 주인이 사망한 경우, 유족에게 사진이나 글 등 망자의 디지털 기록물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가족관계를 입증하고 망자의 SNS 기록물에 접근하겠다고 신청한 이들이 보름 만에 2000명 넘게 몰렸다. 이참에 살펴보니, 구글·애플 등 빅테크 기업도 사용자가 생전에 지정한 사람에게 그 기록물을 제공하는 식으로 디지털 기록물을 상속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이 한국에서 상용화된 지 곧 30년(2024년)이니, 경제적·비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이 상당히 축적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온·오프라인 세계를 실시간으로 동기화하며 살고 있어 개개인이 남기는 디지털 족적은 더 깊고 넓어졌다. 개인의 위치정보나 쿠키 같은 디지털 발자국은 물론, 생체인식 정보를 수집한 IT 서비스도 많다. 준비 없이 떠난 망자의 흔적이 가죽처럼 곳곳에 남게 됐다. 그러나 이것의 처리에 관한 법령은 현재 없다. 유족에게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정부로선 상속세 부과 대상도 아니니 방치된 면이 있다.   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망자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볼 일만도 아니다. 우리가 남긴 디지털 흔적은 누군가 복제하거나 왜곡하기에 충분할 만큼 쌓였고, 인공지능(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다.   지난달 말 아마존이 내놓은 AI 음성비서 알렉사의 신규 서비스를 보니, 그런 위험이 머지않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AI가 복원해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서비스였다. 1분 분량의 음성 파일만 있으면 가능한 서비스라는데, 점점 희미해진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 반가움을 노렸을 테다. 그러나 왠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다. 이 기술이 아마존의 기대처럼 이롭게 쓰이기만 하면 좋겠으나, 디지털 범죄는 언제나 최신 기술 뒤에 바짝 붙어 있다.  망자의 동의 없이 복제된 목소리가 망자의 인격이 담긴 콘텐트와 결합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은 없을까. 그 범죄는 누구의 책임일까. 망자는 자신의 생체인식정보와 콘텐트가 이렇게 쓰이는 걸 원했을까. 그렇게 복원된 디지털 자산은 기업의 소유일까. 비경제적 디지털 자산의 상속에 대한 논의를 더 늦출 수 없는 이유가 매일 늘고 있다. 박수련 / 팩플팀 팀장J네트워크 디지털 가죽 디지털 기록물 비경제적 디지털 디지털 자산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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