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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몸값 사람값, 그림값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들 살면 분별하기 어렵다. 대충 살면 모든 것이 대충 끝난다. 모양이 같다고 속까지 같지 않다. ‘사람’이라고 모두 ‘인간 구실’ 하며 살지 않는다. 사람값을 하고 살아야 인간 대접을 받는다.     인간에게는 목숨을 지탱하는 신체와 마음이 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반성하고 자각할 줄 아는 특성을 지닌다. 인간은 삶과 죽음을 고뇌하며 고독을 의식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질이며, 심신결합체이고, 독립적이며 사회적이고, 각자 다른 개성과 특성을 지닌 개별적 존재다.   예술의 기원은 놀이와 주술이다. 예술활동은 인간 내면의 생명에너지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본능적 욕구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활동은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하는 유희본능을 유발시켜 모든 문화예술의 창조적 기능으로 발전한다. 인간은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인 자연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나 도구를 사용해 주술적인 염원을 표현한다.     화랑을 경영하면서 구매자가 제일 많이 묻는 질문은 “이 작품 그리는데 얼마나 걸렸나요?”다. “며칠 만에 완성하기도 하고 수 년씩 걸리기도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고객이 화가의 노동 시간과 작품 가격을 저울질 한다는 것을 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1512, 벽화, 바디칸 시스티니 성당)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누운 자세로 4년 만에 완성한 거대한 천장화다.     ‘동굴 속의 성모(1483-1486, 판넬에 유채, 루브르 미술관)’는 밀라노 법정에서 그림값 소송이 벌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베네치아 금화 100두카토를 원했지만 구매자가 25두카토만 주겠다고 해서 논쟁 끝에 50두카토로 판결 난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값은 재료비와 인건비의 합산으로 결정됐다. 당시에는 재료비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깊은 파란색을 내는 울트라마린(ultramarine) 안료는 금값보다 더 비쌌다. 당시 최고 기술자의 연봉이 대략 50두카토, 현재 가격으로 1억원 정도였으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이 작품이 미술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거래된다면 역대 최고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미술경매 시장에서 최고 거래 가격은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상 ‘걷는 사람 1(L’Homme Qui Marche )’으로 소더비 경매에서 약 1197억원에 낙찰됐다. 예나 지금이나 평생 치열하게 작업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직업군이 예술 분야다. 르누아르는 생활고를 겪고 비평가들의 조롱을 받았지만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는 말을 남긴다.     아파트는 평수로 따지고 몸값은 재물과 권세, 명예를 합산해서 매긴다. 몸값이 높다고 사람값이 올라가지 않는다. 사람값은 무게로 달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것, 사람 사는 것 별 거 아니다. 그림을 사랑하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역사와 흔적을 찿아나서는 길이다. 보이는 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대로 가슴에 새기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사는 게 힘들면 알타미라 동굴 속 들소를 보라. 1만년 동안 동굴 속에 갇혀있어도 생동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는가.     사람값은 스스로 매긴다. 인생이란 일기장에 그 값을 지불한다. 세상 누구도 ‘값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나의 모습을 생의 화폭에 담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람값 그림값 그림값 소송 알타미라 동굴 주술적인 염원

2023-01-24

[문화 산책] 그림값과 이름값

 미술에 관한 기사가 신문의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실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유명한 작품의 도난 사건, 가짜그림(위작) 소동, 조수를 써도 되느냐 아니냐… 그런 따위의 기사가 흥미 위주로 가끔 실리는 정도다. 가장 많이 실리는 것은 역시 그림값에 관한 기사다. 아무개 화백의 작품이 경매에서 얼마에 팔려,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식의 기사다.     그런 기사를 읽는 보통사람들의 반응은 그림값이 왜 그렇게 비싸냐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헝겊에다 물감 칠한 건데 뭐가 그리 비싼 거냐? 그림값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   간단히 말해서 비싼 그림값의 정체는 시장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미술 이외의 모든 예술작품은 많이 팔거나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구조로 유통된다. 베스셀러, 천만관객 영화, 밀리언셀러 음반, 조회수 몇 억… 같은 식이다.   이에 비해 미술은 단 한 점을 놓고 많은 사람이 서로 사려고 몰려들기 때문에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판화나 사진처럼 복제가 가능한 분야는 제외) 투자나 투기 세력이 끼어들면 가격이 수직상승하고, 일단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는다. (미술시장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도널드 톰슨 저 ‘은밀한 갤러리’라는 책을 권한다. ‘경제학자이자 미술품 컬렉터가 밝히는 현대미술의 은밀한 세계’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은 현대미술을 움직이는 작가와 경매, 갤러리의 실체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그림값의 형성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지만 상당 부분 작가의 이름값에 좌우된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는 기준 같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으므로 작가의 지명도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은 형편없는 졸작이라도 비싼 값에 팔린다. 유명 작가의 위작 소동이 일어나고, 이름 난 인기 연예인의 그림이 비싸게 거래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이름값은 이런저런 형태로 작용한다.   얼마 전 미국 미술계에 한 사람의 화가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화제를 모았다. 단 한 번도 전시회를 가진 일이 없고, 평생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그야말로 ‘생짜’ 신인인데, 데뷔 전시회에서 회화 대작은 50만 달러, 드로잉 한 장에 7만5000달러를 호가하는 대단한 대접을 누렸다.   이 ‘천재 신인(?)’의 이름은 헌터 바이든(51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는 그 유명한 ‘골치덩어리’ 아드님이시다.   그의 파격적인 그림값이 작품성이나 예술적 가치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 작품값의 대부분은 ‘현직’ 대통령의 이름값이라는 건 누가 봐도 뻔히 보인다. 그러니 미국 정계와 화단이 온통 시끄러웠다.   한국에서도 그림이 정치에 악용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제법 일어난다. 미술작품이 비자금 마련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뇌물로 상납되기도 하고,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과거에 기획했던 전시회에 후원자가 너무 몰렸다고 시비가 되고, 대통령 아들이 작품 창작 지원금을 많이 받았다고 구설에 오르는 식이다. 모르긴 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화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작품을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값, 영향력 등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감상하는 길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내가 보기에 좋고,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라는 배짱을 가지고 그림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역설적인 명답 하나 소개한다.     “내 돈 주고 사고 싶은 작품이 내게는 가장 좋은 작품이다.”     그것 참 더럽게 역설적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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