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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고전문학과 풍성한 삶

고전문학은 우리 삶에 있어서 지식과 지혜의 갈증을 없애주는 샘터 역할을 한다. 우리 삶 속에 고이는 맑은 샘물을 꾸준히 떠서 마셔야 더 맑은 샘물이 계속 흘러나와 샘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렇지않고 샘물이 고여 있으면 결국엔 신선한 맛을 잃게 될 뿐 아니라 그 샘에는 맑고 시원한 샘물이 더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전문학은 역동적인 삶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자극해 주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전문학 속의 삶과 우리의 삶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기에 우리가 고전문학을 읽을 때에 상상으로 미지의 세계를 맛볼 수 있으며, 우리가 자아를 창조하도록 만든다.     마음이 맑으면 책을 읽고 옛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교양과 지식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나타나게 되고 또한 그의 내면적 충실과 정신적 생활의 심도가 그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사람의 얼굴은 서른까지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얼굴이지만 서른이 넘으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간다고 한다. 독서량에 따른 내면적 충실과 정신적 생활의 심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고전문학을 꾸준히 읽는 사람일수록 삶의 내용이 풍성하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발표되었다.     어느 날 링컨 대통령에게 선거 참모가 한 사람을 추천했다. 링컨 대통령은 그 사람을 만나보고 곧바로 퇴짜를 놓았다. 선거 참모는 링컨 대통령에게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고 물었다. 링컨 대통령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 사람의 얼굴 때문이오.” “얼굴 때문이라뇨, 그 사람의 얼굴이 어때서요?” “그게 얼굴이오? 전혀 얼굴이 돼 있지 않아요.” “얼굴이야 그 사람 책임이 아니잖습니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어디 그 얼굴이 성서라도 한 구절 읽어 본 얼굴 같소?” 이 일화는 사람이 무엇을 읽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사느냐에 따라 그의 지식과 교양의 정도가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미국대학의 이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훌륭한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훌륭한 민주시민의 자질과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미국대학은 교양과정으로 고전문학을 많이 읽도록 권장한다. 한 예로 1929년 시카고대학교의 로버트 허친스 총장은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 읽기 프로젝트인 ‘시카고 플랜’을 실행함으로써 시카고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끌어 올렸다.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대학 출신자들이 많으면서 독서의 불모지인 나라는 없다고 한다. 책을 읽는 풍토와 독서를 생활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사회 모든 면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오래전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학교 2학년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 말고는 교양 독서를 전혀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는 읽은 적이 없으면서도 그의 4대 비극의 제목만은 달달 외웠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환경 속에서 과연 건전한 민주시민과 훌륭한 리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신문과 텔레비전 그리고 유튜브 등은 우리에게 상식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못한다. 특히 유튜브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면 피상적인 상식에 만족하면서 문제의식 없이 표피적인 과제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독서가 없는 사회는 밑동이 약한 나무와 같으며, 고전을 외면하는 사회는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그러기에 젊은 층과 지성인들에게는 고전문학을 통한 체계적인 지식과 학문적 성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열린 광장 고전문학 링컨 대통령 오래전 서울대학교 교양 독서

2022-10-25

[문화 산책] 고전의 위대한 힘

아주 낯익은 사람과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뿔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척 멋쩍고 미안하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도 그런 경우가 있다. 매우 귀에 익은 음악인데 곡명이 가물가물, 작곡가가 누구인지도 아물아물하다. 작곡가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 나에게 전문가의 조언은 큰 위로가 된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감상하면 됩니다. 음악은 지식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 정말 반가운 말씀이다.   음악에는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라는 구분이 있다. 물론 문학에도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또는 상업문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미술에서도 순수미술과 생활미술 또는 실용미술은 여러 모로 다르다. 무용도 발레나 현대무용처럼 감상을 위한 것도 있고, 사교춤처럼 직접 즐기며 추는 춤이 있다.   이런 구분은 예술의 사회적 위치나 기능, 작가의 마음가짐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 작품의 쓰임새나 모양에 관한 것이다. 이런 구분을 고급 문화, 저급 문화의 구별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저, 존재 이유나 소비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고전(古典)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다각적으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우리말로는 고전이라고 한다.   지금은 고전의 시대가 아니다. 석학 이어령 선생의 진단이 맞다. 쓸쓸하다. “책이 페이스북을 못 이기고, 철학이 블로그를 못 이기고, 클래식 음악이 트로트를 못 이기는 시대잖아!”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가벼워져 갈수록 고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고전의 위대한 힘을 믿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 위대함이 없어진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사전의 설명을 빌리면 이렇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다. 고전은 절대로 ‘낡은 것'이 아니라 ‘옛것이되 오늘의 것'으로서, 더 나아가 미래에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의 총칭이다.   고전은 시냇물이 아니라 바다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잃어도 그것을 토대로 재건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보고(寶庫)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예술 분야에 고전이 있다. 고전문학, 고전음악, 고전연극, 고전영화, 고전 오페라 등등 오늘날에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명작들이 참 많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긴 시간 투자해 두꺼운 책을 읽고, 교향곡 전곡을 지그시 감상하고, 옛날 그림을 보겠다고 멀리 미술관을 찾는 인간은 ‘희귀동물'이 되었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뒤지는 노력 필요 없이, 컴퓨터나 손전화기 누르면 온갖 정보가 좌르르 쏟아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아예 책을 읽지 않고, 긴 글은 읽지 않기 때문에 짤막한 토막글만 남은 세상이다. 검색은 잘 하는데 사색은 하지 않고, 의미는 외면하고 재미만 찾는다.   그런 세상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만들고 누리고 있는 문화 예술 작품이 얼마나 미래의 고전으로 남을까를 조금은 고민하자는 말이다. 문화 예술을 쓰고 버리는 소비재가 아니다.   긴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정신적 문화적 소산, 즉 고전이 자라날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후대를 위한 우리의 의무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고전 고전문학 고전음악 고전영화 고전 문화 예술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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