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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긴 여정의 간이역 ‘대학’

 한인들을 비슷한 또래를 만나면 학번을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학번은 입학연도로 이를 알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Class of’에 졸업연도를 붙여 ‘Class of 2022’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이 ‘Class of’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졸업에 적용된다.   한국에서 대학 입학이 12년 학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이며 앞으로 펼쳐질 사회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라면, 미국인들의 이정표는 고등학교 졸업일 것이다. 매그닛 같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고등학교까지는 집 근처의 학교를 다니지만, 대학은 전국 각지로 진학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친구들과는 이별을 하게 된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의 대학 진학률은 4%였고, 70년대 말에는 14%, 그리고 오늘날에도 50%에 미치지 못하다. 반면, 2020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2.5%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좋았던 시절(good old days)’에는 학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대학에 진학했었다. 대부분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 직업을 얻고 가정을 꾸렸다. 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였다. 70년대 대학 진학률 상승에는 월남전 당시 징병을 피하기 위한 수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데려와 우리와 함께 사는 조카딸이 가을에 대학에 간다. 가고는 싶지만 성적이 안 되는 학교에는 아예 원서를 넣지 않았고, 주립대학 몇 군데는 만약을 생각해 ‘보험’으로 지원했다. 보험으로 지원한 학교에서는 벌써 합격통지가 왔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고, 사회적 성공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며, 생이 끝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들 자녀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대학은 입학보다는 전공이나 졸업, 더 나아가 졸업 후 대학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커리어로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둘째 아들은 친구들이 많이 진학하던 집 근처 캘스테이트노스리지(CUSN)로 가기를 원했는데, 내 욕심에 UC샌타바버러에 보냈다. 결국 중간에 돌아와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경찰이 되어 아들 딸 낳고 잘 산다.   딸아이는 대학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대입을 포기했다. 둘째 때 혼이 난 터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 후, 2년제 대학을 들락날락하더니 어느 날 CSUN에 편입을 한다고 했다. 2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는 내친김에 UC샌디에이고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철들면 다 제 앞가림하고 살 길을 찾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산 60을 돌아보아도 누가 가르쳐 주어 배운 것은 별로 없다. 결국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봐야 깨달음이 온다.   과거보다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인들은 대학 입학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다. 대학 입학 통지가 오기 시작하는 2~3월이 되면 대학 진학이 자주 화두로 등장한다. 지나친 관심이나 자랑은 상대방에게는 부담이나 상처가 될 수 있다.   대학은 긴 여정의 간이역일 뿐 결코 종착역은 아니다. ‘Class of 2022’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고동운 / 전 공무원열린 광장 간이역 여정 대학 진학률 uc샌디에이고 대학원 대학 입학

2022-02-27

[열린 광장] 긴 여정의 간이역 ‘대학’

한인들을 비슷한 또래를 만나면 학번을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학번은 입학연도로 이를 알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Class of’에 졸업연도를 붙여 ‘Class of 2022’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이 ‘Class of’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졸업에 적용된다.   한국에서 대학 입학이 12년 학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이며 앞으로 펼쳐질 사회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라면, 미국인들의 이정표는 고등학교 졸업일 것이다. 매그닛 같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고등학교까지는 집 근처의 학교를 다니지만, 대학은 전국 각지로 진학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친구들과는 이별을 하게 된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의 대학 진학률은 4%였고, 70년대 말에는 14%, 그리고 오늘날에도 50%에 미치지 못하다. 반면, 2020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2.5%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좋았던 시절(good old days)’에는 학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대학에 진학했었다. 대부분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 직업을 얻고 가정을 꾸렸다. 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였다. 70년대 대학 진학률 상승에는 월남전 당시 징병을 피하기 위한 수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데려와 우리와 함께 사는 조카딸이 가을에 대학에 간다. 가고는 싶지만 성적이 안 되는 학교에는 아예 원서를 넣지 않았고, 주립대학 몇 군데는 만약을 생각해 ‘보험’으로 지원했다. 보험으로 지원한 학교에서는 벌써 합격통지가 왔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고, 사회적 성공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며, 생이 끝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들 자녀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대학은 입학보다는 전공이나 졸업, 더 나아가 졸업 후 대학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커리어로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둘째 아들은 친구들이 많이 진학하던 집 근처 캘스테이트노스리지(CUSN)로 가기를 원했는데, 내 욕심에 UC샌타바버러에 보냈다. 결국 중간에 돌아와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경찰이 되어 아들 딸 낳고 잘 산다.   딸아이는 대학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대입을 포기했다. 둘째 때 혼이 난 터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 후, 2년제 대학을 들락날락하더니 어느 날 CSUN에 편입을 한다고 했다. 2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는 내친김에 UC샌디에이고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철들면 다 제 앞가림하고 살 길을 찾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산 60을 돌아보아도 누가 가르쳐 주어 배운 것은 별로 없다. 결국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봐야 깨달음이 온다.   과거보다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인들은 대학 입학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다. 대학 입학 통지가 오기 시작하는 2~3월이 되면 대학 진학이 자주 화두로 등장한다. 지나친 관심이나 자랑은 상대방에게는 부담이나 상처가 될 수 있다.   대학은 긴 여정의 간이역일 뿐 결코 종착역은 아니다. ‘Class of 2022’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 광장 간이역 여정 대학 진학률 uc샌디에이고 대학원 대학 입학

2022-02-22

[이 아침에] 간이역의 추억

 11월은 간이역 같은 달이다. 가을과 겨울 그 어디쯤 엉거주춤한 계절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오기 전 여유롭고 한가한, 기억 속 추억을 꺼내보기 좋은 달이다.     간이역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소박한 건물,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벤치와 텅 빈 철길, 붉은 맨드라미와 선로 옆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흔들리는 모습이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 하나쯤은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풍경이다.   내가 기억하는 간이역은 40여년 전 신촌역이다. 이화여대에서 신촌 로터리 쪽으로 내려오면 큰길에서 한 골목 들어간 곳에 다소곳이 숨어 있다. 신촌역을 지나는 경의선은 서울역에서 문산까지 가는 기차였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백마역까지 가곤했다.     지금은 백마역 주변이 온통 카페 촌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천막을 친 몇 곳에서 막걸리나 동동주를 팔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논 한 가운데 낮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곳이 일산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백마역에 내려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천막으로 지어진 ‘화사랑’이라는 막걸리 집이 나온다. 우리는 옹기종기 둘러 앉아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며 문학을 얘기하고 어설픈 철학을 논하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은 화롯불을 놓아주었다. 화롯불에 비치는 얼굴이 막걸리 탓인지 불빛 탓인지 벌겋게 취해갔다. 서로의 목소리가 턱없이 높아질 때 어둑어둑한 길을 더듬어 나왔다.   요즈음은 백마역이 지하철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일산이 대 도시가 되었으니 이제 다시 가면 어디쯤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추억을 찾아 나섰다가 기억조차 잊어버리기 십상일 터이다.     간이역 시간은 세상과 다르게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보따리를 들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떠들썩한 소리는 사라지고 대합실 빈 의자와 빛바랜 깃발만이 펄럭인다.     어느 한적한 간이역 길게 뻗은 기찻길을 따라 걷고 싶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길을 느릿느릿 걸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엔 선로에 깔린 돌들을 발로 툭툭 차며 불안과 염려와 조바심 같은 것들을 멀리 보내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산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종착역을 향해 걷는 긴 여행길이다. 그 길을 따라 우리는 한적한 간이역을 지나가는 것이다. 스쳐 지나기도 때로 멈추기도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간이역에 내려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잊었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꺼내어 보고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면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잠시 머물러 본다. 그것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무심하고 밋밋한 11월이 가고 있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 잊고 산 것에 대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래된 추억 속 한 점, 빛나던 시절의 내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간이역 추억 간이역 시간 추억 하나쯤 백마역 주변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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