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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그들의 목소리 귀 담아 들을 필요있다

지난 월요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로 Memorial Day와 함께 미국이 가장 귀하게 지키는 연방공휴일이다. 이날 아무 생각없이 아침 일찍 근처 Costco를 찾았던 나같은 사람은 비싼 개스비만 낭비했을 정도로 쇼핑몰은 썰렁했고 도로들은 모처럼 한산했다.   사실 미국이 ‘4th of July’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과는 거리가 멀다.   파리에서 영국과 협상을 통해 독립을 공식승인받은 파리조약(Treaty of Paris) 체결일은 1783년 9월 3일이고 효력을 발휘한 날은 1784년 5월 12일이니 오히려 이날들이 독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겠다.   흔히 미국 독립하면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북미 13개 식민주 중 조지아를 제외한 12개주 대표 56명이 1774년 9월 5일 필라델피아에서 모인 제1차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를 거론한다. 그러나 57일간 이어진 1차 회의의 결론은 영국왕실에 강압법의 반대와 식민지의 권리를 어느정도 인정해달라는 읍소문을 전달하자는 정도라 독립전쟁이라 이름붙이기는 민망하다.   그후 1776년 7월 2일 조지아 포함 13개주 대표가 독립을 선언하는 ‘리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 그나마 실제적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후 조항 및 문구수정 작업을 거쳐 7월 4일 독립을 선포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날은 미합중국 독립선언문을 공포한 날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광복절도 마찬가지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왕 히로히토가 미국이 투하한 두 발의 원자탄 세례를 받고 ‘앗 뜨거! 이게 무슨 날벼락?’ 하며 라디오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지 한국이 광복한 날은 아니다. 그후 9월 2일, 일본 외무상이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이어 9월 9일 미군이 한국에 상륙, 일본의 지배권을 인도받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권은 미군정이 갖게 된다.   그런 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명실상부한 진정한 광복이 그 땅 가운데 찾아온 것이다.   미국의 공휴일은 우리의 경우와 많이 다르다. 청교도의 화합과 협력 공생의 경우를 제외하면, 250년 역사 대부분이 치고, 점령하고 빼앗은 폭압이나 전쟁에 기반하여 생성된 날을 축하 기념하는 경우가 많다.  개척 초기 원주민을 수없이 학살해 땅을 차지했고 그것을 지키고 넓히고, 더 얻기 위해 끊임없이 영국, 프랑스, 스페인 및 멕시코 등과 싸웠다. 한때는 남·북군으로 나뉘어 싸워야했고 지금은 인종차별과 진영갈등이 극심한 속에 중국과 매일 싸우고 있다.     그래서 나온 운동이 공휴일 개명운동이다. 이 운동은 폭력으로 얼룩진 아픈 과거사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함으로써 또다른 갈등을 조장하고 반대편의 아픈 상처에 소금까지 끼얹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데에 방점이 있다.   한 나라의 독립운동은 ‘필요악’ 같은 선하고 의로운 싸움이라 그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선조들의 나라사랑을 기림하자는 것으로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단일 민족국가인 우리와 ‘멜팅팟’ 국가인 미국은 다르다. 폭력이나 무력 전쟁을 연상시켜 ‘팟’을 금가게 하는 표현 대신 화합과 상생, 사랑같은 말로 바꿈으로 ‘팟’의 동요를 막고 함께 기뻐하자는 그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면 어떨까 싶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목소리 단일 민족국가인 independence day memorial day

2022-07-08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Memorial Day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미국 현충일(Memorial Day)이다. 1866년 5월 5일 뉴욕 주에서 비슷한 행사를 열었던 것이 계기가 돼 1868년 5월 30일 남북전쟁의 희생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서 지정됐다. 전사한 미군 장병의 묘지에 헌화한다는 의미에서 데코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라고 불렀었다. 1882년 Memorial Day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차 대전 이후 전쟁에서 사망한 모든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날로 바뀌었다고 한다. 1968년 연방 공휴일로 격상되어 50개 모든 주에서 휴일로 쉴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법적으로 대체 휴일 제도가 도입되면서 1971년부터는 5월 30일에서 현재의 마지막 주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메모리얼 데이에는 미국 각지에서 기념 행사가 열리는데, 이 중에는 기념 퍼레이드도 열린다. 시카고는 한국에서 군복무를 하였던 시카고 재향군인회가 매년 참석하는데, 오전 10시경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서부터 출발하는 퍼레이드의 선두그룹에 나선다. 한인들의 농악과 태권도는 미국인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의 “한국전 참전 재향군인회”와 연이어 같이 행진을 하여 더욱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출신의 한국전 참전 재향군인회의 활동은 11월 ‘미국 재향군인회의 날’을 맞이 하면 시장이 축사를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날은 도심에서만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도시에서는 도로에 온통 작은 성조기와 하얀 십자가를 끝간 데 없이 꽂아 놓는다. 십자가에는 그 지역 출신으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10년 전, 우연히 재향군인회 홍보 이사가 되어 거리에서 사진 촬영과 유투브 동영상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하였다. 자연히 한국의 6월 6일 현충일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카고 재향 군인회는 한국 재향 군인회의 지원과 관심이 많아 지역 사회에서의 활동이 대단하다. 내가 당시 홍보이사가 된 계기는 고려대학교 ROTC 1기로 대장으로 퇴역한 박세환 장군이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마침 한국의 재향 군인회장이 되어 시카고에 왔을 때였다. 당시 ROTC 2기로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김진규씨가 시카고 재향군인회장이 됐는데 과거 내가 한국 ROTC 신문에 기고한 것을 빌미로 부탁을 받았다. 두 분은 한국과 시카고에서 같이 연임을 하여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많은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미국에서의 퍼레이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승전 기년일’처럼 대단한 군사 퍼레이드는 안 한다. 주로 각 주에서 민간인 주도로 진행하며 주 방위군이 보조하는 정도다. 연휴가 끼어 축제의 의미도 있다. 한국처럼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계절이 여름 철로 들어가고 각급 학교가 6월에 끝나 많은 시민들이 고향을 찾거나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메모리얼 데이는 메이저리그 시즌이 한창 때여서 각 구단은 선수단 유니폼 상의와 모자에 디지털 전투복 무늬를 첨가한 밀리터리 유니폼을 제작해서 입고 나온다.     퍼레이드에 참석했을 때 본부석에 앉아 있는 머리가 하얀 재향 군인 노부부의 이야기를 뒤에서 우연히 듣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이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 돌아 오지 않았으면 오늘 이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편지를 정기적으로 보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편지가 제대로 오지 못 했는지 나중에 알았다. 당신이 참전한 한국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 나는 그분들이 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후 크게 인화, 고급 액자에 넣어 보내주는 것으로 답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memorial day 시카고 재향군인회장 재향군인회 홍보 memorial day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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