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성스러운 영역
아들이 대학으로 떠난 후였으니, 결혼한 지 20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를 위해 밥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 무렵 몸이 안 좋았으니, 먹거리에 대한 아쉬움은 더 했다. 삼시 세끼 먹는 일에 무척 서툴렀고 식당 근처만 지나면 항상 배가 고팠다. 끼니때만 되면 전전긍긍하던 나는 요리반을 찾아갔다. 응접실을 다이닝룸으로 꾸민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젊은 여자들이 가득 있었다. 어린 자녀를 둘 셋씩 두었다는 엄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그중 한 여자가 물었다. “누구를 위해 요리하시나요?” 순간 말이 막혔지만, 일부러 명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요? 아 저는 절 위해서 요리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대답은 절묘했다. 어느 정도는 사실에 근거한 대답이었다. 남편은 어떤 음식인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먹거리에 불만을 가지는 쪽은 항상 나였다. 뱃속의 헛헛함은 정신적 허함과도 서로 통하는지, 나는 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다.그 무렵, 아이에게 해방이 된 내 또래의 지인들은 대부분 골프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도 당연히 그 대열에 끼었다. 레슨 받고 필드 나가고, 남들이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이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스틱을 휘두르며 공이 날아간 쪽으로 그윽한 시선을 보내며 살짝 허리를 비틀고 싶었다. 그 뒷모습이 여간 예쁘지 않았다. 어딘지 있어 보이고 생을 즐기는 느낌, 그런데 막상 레슨을 시작하니 끝도 없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고, 뭐가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오리무중을 헤매는 듯한 갑갑함이 밀려왔다. 주말엔 쫓아오는 뒷사람의 압박감을 피해서 멀리 떨어진 골프장을 찾아갔다. 자그만 공을 죽자고 뒤따르는 내 노력은 허망했지만, 나는 즐거운 척했다. 사실을 말하면 전혀 재미있지도 즐겁지도, 남들은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나는 기분이 망쳐서 돌아왔다. 지인이 친 볼에 맞아서 몇 개월 동안 목발을 짚는 일도 벌어졌다. 무리하게 스윙하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그제야 알았다. 남들을 뒤쫓다가 벼랑에서 미끄러졌음을. 나는 골프를 포기했다.
남들이 부엌을 탈출하는 시기에 나는 거꾸로 부엌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요리 같은 것은 몇 달 정도 배우다가 그만두는 것이라고, 무슨 요리를 재수, 삼수까지 하냐고 놀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하루 3번, 일주일에 20번 반복해야 하는 일이 이제는 괴롭지 않다. 부엌은 아무도 침해하지 못하는 나의 왕국이다. 여기에서 나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 한 줌도 안 되는 자그만 공을 숭배하는 대신에, 나는 모든 식재료 위에 군림한다. 물론 나는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나가서 사 먹으면 되는데 힘들게 왜 하냐고 지인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을 때는 과감한 수정을 해야 한다.
남을 따라 하지 말라는 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하라고 2000년 전에 세네카 철학자가 말했다. 세네카는 폭군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였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파는 어린 네로의 스승으로 당대 인품과 지성이 넘치는 세네카를 모셔 왔다. 네로의 사이코패스적 기질은 세네카가 스승으로 있는 8년 동안은 억눌렀지만, 네로가 자라자, 그 수위를 넘어섰다. 세네카는 스승을 사임하고 물러났다. 친어머니를 죽인 네로는 세네카에게도 자결을 명령했다. 세네카의 의연한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세네카 현인은 인간이란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 결정되며, 티끌 하나도 변하게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운명을 바꾸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유는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남들이 하는 것을 무조건 좇아서 하지 않을 때, 자신의 명징한 이성으로 사고할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현인의 철학을 나는 마음대로 부엌으로 끌어들여 본다.
오래전, 먹거리에 대한 나의 무능함에 불만이 있었다. 물리적 헛헛함은 정신적 영역으로 파고들어서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하루 세 번의 의식을 당당하게 치러 낸다. 먹거리를 깔보지 말라. 아무거나 먹지도 말라. 음식은 생명과 직결되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거리에서 풍기는 유혹적인 냄새에 휘둘리지 않는다. 식당 옆을 담담하게 지나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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