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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나를 기억하라

슬레이트 지붕 아래 선풍기는 힘겹게 돌아가고, 벽 대신 드리운 천막 사이로 퍼렇고 뻘건 빛이 일렁인다. 흙바닥이 드러난 낡은 비닐 장판 위, 숨조차 죽이며 요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반짝이는 눈동자들. 흩어진 조각같은 이 기억이 후일 한 청년이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았던 순간이 되었다.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도,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적시게도, 부끄러움으로 몸을 떨게도 한다. 그러나 기억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아브라함 헤셀이 말했듯, 기억은 진실의 조각을 다시 모아 하나의 몸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해체이다. 진실을 자르고 흩어버리는 것이다.    
 
기억은 오늘의 눈과 손으로 진실을 맞추는 일이다. 오늘의 마음이 정직하지 않다면, 우리가 복원하는 과거 또한 정직할 수 없다. 거짓은 진실을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실의 조각을 은밀히 잘라낼 뿐이다.    
 
나 자신을 아무리 멋지게 꾸미고 스스로를 괜찮다고 말해도, 여전히 자신이 만든 가면을 벗지 못하는 것은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한 과거가 없다면, 사랑하고 배우며 용서받는 오늘 또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을 잘 살라 하지만, 거짓도 욕망도, 양심의 찔림도 시간이 지나면 잘라내려 한다. 그러나 개인도 사회도 거짓과 욕심 앞에 정직할 때, 비로소 사랑과 용서가 싹튼다. 과거의 거짓과 욕망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오늘의 거짓과 욕망이 진실을 절단하는 일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 되게 하지만, 잘린 진실은 몸을 나누고 서로를 대적하게 만든다.    
 
“나 같은 죄인”을 외면한 채 “잘되는 나”를 꿈꾸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병든 자임을 인정하는 이에게 예수님은 의원이시다. 잘하려는 열정이 욕심으로 변할 때, 하나님을 위한다며 세상의 칭찬과 명성을 구하고 싶어질 때,, 내 인생을 원하는 자리에 올려놓고 싶어질 때, 천막 속 반짝이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숨죽였던 눈동자들을 떠올린다.    
 
기억을 조각내고 흩어버리고 외면하고 싶지만, 다시 맞추어 본다. 그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 힘과 뜻대로만 살아버린 줄 알았던 시간 속에 주님의 마음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기억하라” 말씀하시며, 자신을 떡과 포도주로 내어놓으신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목사 / 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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