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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산불 대재앙 한 달, 그 후…기약없는 복구 (상) 기다리라는 말만, 이젠 생계도 막막

집과 함께 생활터전도 잃어
알타데나 지역 상대적 소외
보험사에서도 조사만 반복

이기선·유정자 씨 부부가 지난 6일 이튼 산불로 흔적만 남은 집을 참담한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다. 유 씨는 산불 발생 일주일 후 재만 남은 집을 보고는 기절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는 지금은 담담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김상진 기자

이기선·유정자 씨 부부가 지난 6일 이튼 산불로 흔적만 남은 집을 참담한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다. 유 씨는 산불 발생 일주일 후 재만 남은 집을 보고는 기절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는 지금은 담담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김상진 기자

화마가 휩쓸고 간 지 한 달째다. 피해 지역 곳곳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이튼 산불이 발생했던 LA 동북부의 알타데나는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행정 구역상 패서디나 시 관할이라 전폭적인 지원이 있는 타 피해 지역에 비해 지원이나 복구 작업은 요원하다. 본지는 지난 5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상흔이 가득한 그곳을 찾아갔다. 그을음이 잔뜩 묻은 건물, 닫혀 있는 가게들이 아직도 많다.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가려는 지역 한인 업주들은 매출 급락에 한숨만 쉬고 있다. 잿더미와 각종 잔해물에 묻혀버린 일상은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절망과 체념이 뒤섞인 한숨 이면에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있다.
 
알타데나 = 김경준·강한길 기자
 
5일 오후 12시 30분, 노스 페어 오크스 애비뉴와 이스트 칼라베라스 스트리트 교차로다. 부슬비가 인적이 드문 거리를 적시고 있다. 잿빛 하늘은 그을음 가득한 거리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스산함이 밀려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소실된 건물들 주변으로 각종 잔해물이 거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폐허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화마를 피해 간 ‘페어옥스 버거(Fair Oaks Burger)’는 한인 이기선(81) 씨와 유정자(75) 씨 부부가 운영하던 가게다. 부부는 가게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살았다. 물론 이제는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산불로 집이 전소돼 현재 글렌데일에 사는 아들 집에 머물고 있다.
 
가게가 안 탄 건 불행 중 다행일까. 아내 유 씨는 이곳을 “삶의 흔적이 담긴 곳”이라며 “왜 이 가게만 불에 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게만큼은 화마를 피해 갔지만, 웃을 수는 없다. 고객들의 발걸음과 버거 냄새가 가득해야 할 이곳엔 대신 탄내만 가득해서다.
 
유 씨 부부는 38년간(1987년 개업) 이 가게를 운영해왔다. 고객들은 자식과 같다. 산불 피해로 그들이 겪은 아픔은 곧 이들의 슬픔이다.
 
유 씨는 “꼬마였던 손님이 어른이 돼서도 찾아와 우리를 마미(엄마), 파피(아빠)라고 부를 정도”라며 “주민들과 함께해 온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영업 재개 시기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당국도 별다른 안내가 없다.
 
남편 이 씨는 “한 달이 다 되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물도 독성 물질이 포함됐다고 해서 사용하지 말라고 하더라”며 “언제부터 영업을 다시 할 수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알타데나는 이들에겐 제2의 고향이다. 복구 작업이 더뎌 다시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씨는 “이 넓은 지역이 다 타버렸는데 복구가 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보험사의 연락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포피 클리너스' 전영상(오른쪽) 대표가 잿더미가 된 세탁소 앞에서 지인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5일 '포피 클리너스' 전영상(오른쪽) 대표가 잿더미가 된 세탁소 앞에서 지인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7일 오후 알타데나데이어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오정국(왼쪽)씨가 산불 이후 고객들의 발걸음이 뜸하다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7일 오후 알타데나데이어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오정국(왼쪽)씨가 산불 이후 고객들의 발걸음이 뜸하다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5일 오후 내셔널태권도센터(관장 이군정)의 오지환 관장이 도장 앞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가정을 걱정하면서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5일 오후 내셔널태권도센터(관장 이군정)의 오지환 관장이 도장 앞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가정을 걱정하면서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전기 끊기고 물 오염…언제쯤 고객들 만날까

시정부 없어 재정 취약
복구작업 더 지지부진 
 
페어옥스 버거에서 1마일가량 떨어진 레이크 애비뉴 선상에는 전영상(70) 대표가 15년간 운영해온 ‘포피 클리너스(Poppy Cleaners)’가 있다. 이곳에 세탁소가 있었는지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잿더미와 잔해만 가득했다. 전 대표는 한평생 한우물만 팠다.전 대표는 “스물일곱 살이던 1983년부터 세탁업에 종사해왔다”며 “다우니에서 첫 세탁소를 시작해 곳곳에서 영업을 하다가 알타데나까지 왔다”고 말했다.
 
세탁소를 다시 세우려면 최소 100만 달러가 필요하다. 세탁 장비를 마련하는 데만 30만~60만 달러다. 하지만, 전 대표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최대 50만 달러다. 나머지는 대출로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보험사는 계속 서류만 요구하고 현장 조사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험사로부터) 트집이나 안 잡히면 다행”이라며 “우리 가게뿐 아니라 주변 건물들도 다 소실됐는데 과연 복구 작업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알타데나는 행정 구역상 LA카운티 관할 지역에 있다. 자체 시정부가 없어 인근의 패서디나 시가 이곳을 지원하고 있다. 규모가 큰 LA시가 지원하는 팰리세이즈 지역에 비해 각종 지원이 부족하다.
 
전 대표는 “이곳 주민들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팰리세이즈 산불 지역만 다녀갔다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라며 “사실 도움이 절실한 곳은 돈이 많은 팰리세이즈보다 재정 기반이 약한 알타데나”라고 지적했다.
 
알타데나에서는 셸터조차 제대로 개설되지 않았다. 지난 6일 LA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는 결국 패서디나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셸터와 관련, 운영을 일주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패서디나시 리사 더데리안 홍보 담당은 “지난주 기준으로 컨벤션 센터에는 거처를 구하지 못한 220여 명의 주민들이 아직도 머물고 있다”며 “대부분 알타데나 지역의 주민들”이라고 밝혔다.
 
화마에서 살아남았어도 주민들의 발길이 끊기다 보니 자영업자들도 크나큰 타격을 입고 있다.
 
편의점인 ‘알타데나 데이어리(Alta-Dena Dairy)’에서 일하는 오정국 씨는 “산불 이후 문을 닫아야 하는 수준으로 매출이 반 토막 이상 났다”며 “지금은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알타데나 주민들은 지지부진한 복구 작업으로 인해 현재 당국에 계속 호소하고 있다. 패서디나 나우는 알타데나 지역 주택위원회 모임이 무려 6시간 이상 진행됐다고 7일 보도했다. 건물주나 당국이 산불로 인한 잔해물을 아직도 정리하지 않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요구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이 매체는 “수십 명이 이날 모임에 참석했고 청소 비용 견적으로만 6만 달러를 받은 사례도 있었는데 이는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라며 “알타데나 지역의 복구와 지원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지역의 내셔널태권도센터(관장 이군정)도 기합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텅 비어 있다. 이곳에는 매일 여섯 개 클래스가 운영됐다. 매번 20~30명의 학생이 태권도를 배웠다.
 
오지환(45) 사범은 “산불 피해 이후 이제는 10명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것”이라며 “환불 요청이 이어졌는데 도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기다리기로 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는 수강료조차 받지 않는다.
 
그는 "지역사회가 다시 일어서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이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산불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단, 알타데나에 다시 볕이 들 것이라는 믿음까지 태워버리지는 못했다.

알타데나 = 김경준·강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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