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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하지만 떠날 수도 없어"…10년째 '골목 노숙' 윤애복씨

숨겨진 현실 (4·끝)
안전한 셸터에 가고 싶어도
타운서 멀리 떨어져 거부감
"떠나라" 냉정한 말 듣지만
그래도 한인들 온정에 버텨

윤애복씨는 LA한인타운 8가의 한 골목길에 10여년 동안 살고 있다. 더럽고 지저분한 골목길은 그녀의 집이다. 김상진 기자

윤애복씨는 LA한인타운 8가의 한 골목길에 10여년 동안 살고 있다. 더럽고 지저분한 골목길은 그녀의 집이다. 김상진 기자

LA 한인타운의 한글 간판들은 한인들에게 민족적 동질감을 안겨준다. 한인 노숙자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8가와 사우스 카탈리나 스트리트 인근 한 골목에는 윤애복(65) 씨가 맨바닥을 매트리스 삼아 살고 있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외진 골목이 그녀의 거처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악취가 코를 찌른다. 페트병, 폐지, 버려진 가구 등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대변 때문에 걸음을 떼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역설적이지만 이 골목은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한글신문을 읽는 것은 윤씨의 하루 일과 중 하나다. 그녀는 날짜가 지난 무가지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읽고 또 읽는다. 이 한글무가지는그녀에게 한인타운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낡고 구겨진 신문은 때로는 그녀의 식사 시간에 음식 아래 깔리는 쟁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글신문을 읽는 것은 윤씨의 하루 일과 중 하나다. 그녀는 날짜가 지난 무가지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읽고 또 읽는다. 이 한글무가지는그녀에게 한인타운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낡고 구겨진 신문은 때로는 그녀의 식사 시간에 음식 아래 깔리는 쟁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변 업주들에 따르면 윤 씨는 이곳에서 10여 년째 살고 있다. LA시의 노숙자 담당 공무원들이 윤 씨에게 셸터로 이주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캐런 배스 LA 시장이 주도하고 있는 ‘인사이드 세이프’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다.노숙자들을 셸터나 모텔 등으로 옮기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한 공무원이 윤 씨에게 “임시 거주지로 옮기겠느냐”고 물었다. 윤 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느릿한 말투로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이미 여섯 번이나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고 대답했다.
 
유창하진 않았지만 윤 씨는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를 표현했다. 이 공무원은 좀 더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느냐”고 되물었다.
 
 곧바로 한국어 통역사와 연결됐다. 공무원은 통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셸터로 입소할 의향이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윤 씨가 한국어로 “들어가겠다”고 답변하자, 그곳에 있던 다섯 명의 공무원들이 곧바로 윤 씨의 옷과 소지품 등을 두 개의 큰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모텔로 옮기기 위한 준비였다.
 
윤씨가 갑자기 자신이 옮기게 될 셸터의 위치를 물었다. 한 공무원이 “이곳에서 6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 씨가 격앙된 목소리로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음이 돌변한 윤 씨를 보며 공무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재차 모텔로 가자고 설득했지만 그럴수록 윤 씨는 더 완고하게 제안을 거부했다.
 
노숙자가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이주시킬 수 없다. 시정부 규정 때문이다. 윤 씨는 쓰레기 가득한 그 골목길에 다시 혼자 남아야 했다.
Inside safe program을 시행중인 LA시 공무원들이 윤씨를 셀터에 데려가기 위해 설득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Inside safe program을 시행중인 LA시 공무원들이 윤씨를 셀터에 데려가기 위해 설득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취재팀은 조심스럽게 “왜 모텔로 들어가지 않느냐. 6마일이 너무 멀어서 그러느냐”라고 물었다. 윤 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난 여기가 좋다. 다른 곳은 싫다”고 했다.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윤 씨가 다른 곳으로 가길 원하는 이들은 또 있다. 골목길 인근의 업주들은 윤 씨가 이곳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인 업주는 취재팀에 “윤 씨가 제발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이 업주는 “윤 씨가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니까 악취가 진동하고, 손님들도 너무 불편해한다”고 했다.  
쓰레기로 가득 찬 골목길. 누군가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장소지만, 윤씨에게는 유일한 안식처다. 그녀는 그곳에서 음식을 모아 허기를 채우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인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그녀는 하루의 고단함을 달랜다. 골목의 고요함은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김상진 기자

쓰레기로 가득 찬 골목길. 누군가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장소지만, 윤씨에게는 유일한 안식처다. 그녀는 그곳에서 음식을 모아 허기를 채우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인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그녀는 하루의 고단함을 달랜다. 골목의 고요함은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김상진 기자

 
윤 씨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 업주는 화가 난 듯 문을 열고 나가더니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업주는 윤 씨를 향해 “제발 여기를 떠나. 죽더라도 여기서 죽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죽어”라며 냉혹한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하지만 윤 씨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고개를 숙인 채 길바닥만 응시하고 있다. 윤 씨 앞에는 한참 전 누군가가 전해준 듯 차갑게 식은 국수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윤 씨는 가장 익숙하다고 느끼는 골목이지만 정작 이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박은경 씨는 “가끔 윤 씨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항상 이곳으로 다시 온다”며 “노숙자들은 한 번 정착한 곳을 집처럼 생각하는지, 떠나도 다시 돌아오는 것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물론 냉정 이면에는 인정도 공존한다. 일종의 연민이다. 박 씨는 “나도 솔직히 윤 씨가 너무 싫지만 그래도 몇 번 윤 씨에게 음식을 전해준 적도 있다”며 “손님 중에는 식사를 한 뒤, 음식을 따로 투고해서 윤 씨에게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윤씨가 인근의 상가에 있는 한식당 앞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음식(떡국)은 윤씨 옆을 지나던 한 한인남성이 준 돈으로 주문한 음식이다. 김상진 기자

윤씨가 인근의 상가에 있는 한식당 앞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음식(떡국)은 윤씨 옆을 지나던 한 한인남성이 준 돈으로 주문한 음식이다. 김상진 기자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중년의 한인 남성이 윤 씨에게 다가와 식사를 했는지 물었다. 온종일 굶었던 윤 씨는 따뜻한 떡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 남성은 윤 씨에게 2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건넸다. 윤 씨는 그 돈을 들고 식당 문 앞에서 서성였다. 순간 종업원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지폐를 건넸던 남성이 윤씨 대신 “떡국을 투고해달라”고 부탁하자 종업원은 그제야 주문을 받았다. 10분 정도 후 다시 문밖으로 나온 이 종업원은 “좀 넉넉하게 담았다”며 윤 씨에게 음식을 건넸다.
윤씨는 잠자리로 선택한 상가 처마 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윤씨는 잠자리로 선택한 상가 처마 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떡국을 받아 든 윤 씨는 그 자리에서 한국어 무가지를 찾아 바닥에 깔았다. 단순히 음식 받침 용도는 아니다. 음식을 먹던 그녀가 갑자기 신문에 적힌 날짜를 가리키면서 요일을 물었다. 윤 씨에게 한국어 신문은 한인타운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윤 씨는 배척 속에서도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러니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인타운 외진 골목에 숨겨진 현실이다.
 
 
 
[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12월 20일 게재된 기사를 한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윤씨가 비 오는 어느 저녁,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플라스틱 봉투를 뒤집어 쓰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녀는 비를 피해 잘 곳을 찾았던 것이다. 그녀는 인근 상가의 처마밑에 경사지지 않은 부분을 찾아 그날 잠자리로 삼았다. 김상진 기자

윤씨가 비 오는 어느 저녁,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플라스틱 봉투를 뒤집어 쓰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녀는 비를 피해 잘 곳을 찾았던 것이다. 그녀는 인근 상가의 처마밑에 경사지지 않은 부분을 찾아 그날 잠자리로 삼았다. 김상진 기자

 
 

장열·김영남·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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