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껴안고
물론 구입대금은 내 크레딧 카드로 긁었다. 그리곤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운동을 시킨다. 지들 어릴 때 숙제 조사하듯 매일 체크를 해대니 안하고는 못배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자식이다. 범보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자식하고 맺은 약속이다.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해야 돼요. 엄마 일찍 죽으면 나 슬퍼해.” 아들의 이 한마디에 40년 동안 ‘운동 안 하고도 스트레스 안 받기 작전’으로 버티던 내 지조(?)가 와르르 무너졌다. 성가시게 보채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하게 저려온다.
몸으로 떼우는 모든 것에 나는 젬병이다. 특히 운동에는 취미도 관심도 없다. 미식 축구 게임조차 잘 이해를 못하니 무식 정도가 아니라 푼수에 속한다.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산 골프채는 레슨만 두 번 받고 차고에서 휴식 중이다. 그래도 주눅 안들고 “난 운동 싫어서 안한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오히려 큰소리치며 산다. 포기각서 쓰면 맨날 마음만 먹고 실천 못해 안달하는 사람보단 정신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모를 때는 몰랐는데 해보니 진짜 운동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저 혼자 놀아도 즐겁고 봐주는 사람 없어도 신나는 게 운동이다.
신나면 재미있다. 신은 열정을 유발시킨다. 열정이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생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면 자신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 열정이 생긴다. 마음은 콩밭에 있는데 보리밭에 가면 물에 물탄 듯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열정은 겉으로 들어난 것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 떠벌리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열정이라 할 수 없다. 떠벌리기는 겉으로 뿜어내는 거품이기 때문에 잘 사그러든다.
드러나지 않지만 차분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작은 물방울로 바윗돌을 뚫는다. 열정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영혼을 붙태우는 화염이고 생을 끌고가는 수레바퀴다. 찬물을 끼얹으면 의기소침해지고 풀이 죽어 마음에 병이 생긴다. 열정은 드릴 속의 배터리와 같다. 열정은 드릴처럼 삶에 구멍을 뚫어 신선한 바람이 불게 한다. 드릴을 사용할 때는 배터리 점검도 중요하지만 용도에 맞는 드릴척(drillbit)을 잘 골라야 된다.
분별 없는 열정은 에너지만 소진시킬 뿐 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된다. 열정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타협해서 무너지면 열정이 아니라 오기였을 뿐이다. 오기는 벽에 부딫치면 부서지지만 열정은 벽을 넘고 산을 넘어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인생이라는 동력선을 이끌게 한다.
왠지 의기소침하고 사는 게 시시하고 삶에 열정이 없다고요? 마음의 상자를 열어보고 제일 하고 싶은 것부터 순서대로 줄을 세우세요. 눈을 감고 한 손으로 맥을 짚고 다른 한 손을 심장에 얹어보세요. 살아있다는 이 작은 충만함으로도 당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활화산처럼 불태울 열정이 다시금 용솟음치고 있지 않나요? (Q7editions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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