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려는 로봇…드림웍스 최고의 명장면 탄생
오스카 작품상 후보군 <2> 와일드 로봇
한 폭의 그림 같은 색감으로 채워진 장면들
가슴 뭉클한 성장기, 관객을 명상에 잠기게
애니메이션 부문 넘어 작품상 후보로 거론
바이킹 족장과 드래곤의 영원한 우정과 모험을 그린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 제작진이 그대로 다시 모여 만든 ‘와일드 로봇’은 아동문학의 거장 피터 브라운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와일드 로봇’을 원작으로 한다.
아이(로봇)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진부할 수 있는 서사를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드림웍스 특유의 감동과 압도적 시각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애니 ‘와일드 로봇’은 매 장면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색감으로 채워져 있고 자연과 로봇이 만들어 내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먼 미래, 북가주로 보이는 어느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섬. 로봇들을 싣고 가던 화물선이 사나운 태풍을 만나 난파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봇 로즈(Roz, 루피타 뇽오의 목소리 연기)는 무인도 거대한 야생에 불시착한다.
인간과 가정을 위한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인간형 로봇 로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이 필요한 도움을 찾지 못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들과는 다행히 프로그래밍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로즈의 존재를 반기지 않는다.
로즈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야생의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섬의 곳곳을 살피다가 악동 여우 핑크를 만난다. 그러나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로즈는 곧 난관에 봉착한다. 로즈가 새 둥지를 밟는 바람에 알을 품고 있던 어미 기러기가 죽게 되는 불행한 사고!
기러기 알 하나가 유일하게 살아남아 차가운 금속으로 제작된 로봇 로즈의 품 안에서 부화하고 수컷 새끼 브라이트빌이 태어난다. 엄마를 죽인 로봇을 새끼 기러기가 엄마로 부르는 순간, AI 휴머노이드 로즈의 ‘마음’ 속에 미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로봇의 정체성을 버리고 점점 인간화되어 가는 로즈.
디스토피아에 버려진 AI 봇 로즈에게는 엄마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래밍이 입력되어 있지 않다. 엄마의 고뇌, 새로운 관계에 대한 대응법도 알지 못한다. 로즈와 브라이트빌은 주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척당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엄마’ 로즈는 겨울이 오기 전 남쪽으로 떠나야 하는 새끼 기러기 브라이트빌에게 먹이를 먹이고, 수영과 날갯짓을 가르치는 등 자연에서의 생존법을 가르친다. ‘아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만장일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로즈에게 엄마처럼 돌보는 모성애가 발동한다. 자신이 부숴버린 둥지에서 불행으로 시작한 그들의 운명적 관계를 숨겨둔 채.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로즈는 비상시 자율적인 판단 하에 행동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연에 우연이 겹쳐 스스로 제어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는 AI에게는 드문 능력을 습득한다. 무감각한 로봇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연 속의 로봇으로 발전해가는 로즈는 궁극적으로 엄마의 사랑과 고뇌, 가여운 존재에 대한 연민 등 인간다운 행동들을 구현해간다.
처음에는 낯선 존재를 반기지 않던 동물들도 점차 서툴지만 늘 진심을 다하는 로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보육과 교육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로즈는 공장에서의 초기화를 극복하고 임무 완수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기억과 인격을 유지하는 로봇의 ‘일탈’이 지속된다. 로즈는 점차 ‘엄마’라는 초자연적인 힘에 접근해간다.
연령대와 장르를 초월한 ‘와일드 로봇’은 가족, 모성, 우정, 생존에 대한 우화이다. 영화는 연약하기만 한 아이(로봇)와 동물 사이의 마법 같은 유대감을 온기 가득한 감동으로 풀어낸다. 친절의 중요성과 완고한 편견을 변화시키는 사랑과 연민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단순하지만 세련된 방식으로 관객을 명상에 잠기게 한다.
엄마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드로이드 로즈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2013년 ‘노예 12년(Twelve Years a Slave)’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던 루피타 뇽오다. 그녀의 목소리는 표정 없는 로봇에게 친절함을 부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엄마의 고뇌라는 감정적 맥락을 모호하게 터치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의 최대 공헌자이다.
표정 없는 로봇. 표정이 없다는 건 로봇에게 건 감정을 투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목소리로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베테랑 감독 크리스 샌더스는 처음부터 뇽오의 목소리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인간보다 더 사실적인 로봇의 모성애! ‘와일드 로봇’은 무엇보다 모성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주제다. 외딴 섬에서 동물과 교감하는 외로운 로봇에 야생과 로봇이라는 소재를 엮어 이토록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작가 피터 브라운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기러기 떼를 배경으로 로즈와 브라이트빌이 나란히 달리는 장면은 드림웍스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왜 로즈와 같은 인공 창조물에 그토록 매료되는 것일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은 동물을 의인화한다. 우리와 다른 것에서 우리 자신을 보고 싶어하고,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린 시절 인간은 누구나 엄마가 안내하는 세상으로 이끌려 가게 된다. 하지만 엄마들도 처음으로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들처럼 엄마의 역할을 배우며 엄마로 성장해야 한다. 로봇 로즈는 새끼 기러기 브라이트빌을 무사히 이주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며 자신도 엄마로서 성장한다.
혼란이 자신감으로 바뀌는 여정!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가며 진화하는 생명의 고귀한 가치와 아름다운 인생 교훈을 많이 담고 있는 ‘와일드 로봇’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탐닉할 만한 모험과 유머로 가득 차 있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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