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인간의 숨결, 온기 4
인간의 고유한 힘, 진정한 힘은 개별성, 개체성, 고유성에서 나오는데 이성은 일반적 원리 속에 인간을 묶어놓아 그 생명력을 질식시킨다.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이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이념이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승리를 안겨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적 이념의 족쇄에 인간을 다시 가둘 뿐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예리한 지적인가. 소름이 돋는다.‘밀양’이라는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수상해 화제를 모았었다. 영화 내용은 한 교사가 어린이를 살해한 후 결국 감옥에 간다. 살해범은 교도소에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얼굴도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신에 의지하기도 하며 오랜 시간을 고통에 시달린다. 자신이 그만 그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 감옥에 있는 살인범을 용서하고자 만나러 간다. 거기서 그녀는 자신은 그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아왔는데 이 살해범은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다며 밝게 웃는다. 누가 그를 용서했단 말인가. 세상의 그 어느 인간답지 못한 파렴치한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는 기독교적 사랑에 회의를 하게 만든다.
이런 세상의 부조리에 인간은 흔들리게 되고 위기를 맞는다. 인간의 존엄은 도전받고 이성은 부정당한다. 이성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 간다. 이성이 가져다준 과학과 산업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하면서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핵심적 차이점이 이성이라는 생각이 설득력을 잃어간다. 오히려 쾌락과 고통의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려는 과학적 시도가 설득력을 높여가고 있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동물적 본능을 설명하는 쾌락주의적 공리주의가 확산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정의한 ‘종의 기원’은 모든 생물 종은 자기 종을 번식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환경에 잘 적응해 생물학적 특성들이 변화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퇴화해 멸망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엥겔스는 자유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의 심각한 후유증을 개탄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을 가진 유산계급만이 시장을 독점하고 삶이 더욱 비참해졌음을 지적하고 실제로 부정의 한 사회구조 속에서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했음을 주장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제도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자신을 꾸려나가는 통제권을 갖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자들을 해방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보장하는 개혁 또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삶이란 차가운 이성에 의해 포착되는 논리적 구조나 일반적 법칙에 있지 않고 개별적 환경에서 자신의 욕구와 부단히 부딪히며 자신을 실현해 가는 생명력이 삶의 본질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 후 나치즘과 파시즘의 국가주의적 전체주의가 이성과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고 폭압적 권위주의로 나갔지만, 전 세계를 냉전으로 몰아넣고 사회주의는 얼마 가지 못한 채 20세기 후반에 붕괴하였다. 그 후 하이데거, 니체, 사르트르, 카뮈 등의 실존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은 개인의 개별성, 고유성, 주체성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새 주류를 이룬다.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자율적으로 타인도 나와 같은 희로애락의 정서를 갖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공존의 사회를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인간다움이 갖춰진다.
온라인이 기본 생활권이 되고 AI가 선택을 대신해 주는 삶의 장래가 밝지만은 않다. 나의 선택들이 모여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작가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답을 찾는 오랜 여행을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덕택에 우리는 편하게 인류의 역사, 철학을 이 책 한 권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깊이 삭히고 싶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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