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천국은 있다
천국은 있다뼈의 입장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다가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
나를 놀라게 한다는 걸 알았다
모든 예상된 일은
예상치 않게 나를 흔든다
물론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뼈가 됐다는 걸
허연 『천국은 있다』
시인 유희경은 허연의 시를 ‘견딤’에 대한 시라고 말한다. “그 견딤은 시종일관 아슬하고,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 역시 견디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썼다. 인용한 시는 ‘이장’의 도입부다. 시인은 어머니의 죽음을 견뎌낸 것도 모자라, 뼈가 된 어머니를 확인하는 이장까지 견뎌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처럼 예상된 일이(누구나 죽는다), 예상치 않게 나를 흔드는 것, 그런 속수무책을 지치지 않고 견디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난겨울 날렸던 연이/ 예기치 못한 각도로/ 곤두박질쳤던 것처럼/ 이별은/ 전면적이고 모든 것인 일// 세상의 모든 설탕 덩어리들이/ 언젠가 다 물에 녹듯/ 긴 잠에서 깨어나면/ 어차피 이 세상이 아닌 것.’ 시 ‘이별의 재해석’의 일부다. 날아오른 연이 떨어지고, 설탕이 녹듯이 사랑도 파국을 향해 간다. 진실했다면 됐다고?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별한 사람들이 쓴/ 마지막 편지들을 읽는다/ 마지막이므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진실은 그저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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