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말 같은 말 좀 하고 삽시다
그 말을 하기까지의 생각, 기다림, 눈길, 몸짓 등이 어우러져 나오는 것이 말 한마디인데, 다 듣고는 ‘don’t worry, I know’라는 짧은 대답으로 끝이 나면 오히려 마음은 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이들과 통화를 하고 나서 어떤 때는 “이놈들아! 너희가 내 말을 듣기는 했겠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물 한잔 들고 창가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았다 한들, 내 마음은 알 도리가 없겠지요.
나는 너희들과 ‘말 다운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세상은 휴대폰 하나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더구나 편리한 문자 메시지 전달 수단의 등장으로 말의 필요성은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체온을 느끼는 만남의 기회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려움을 당한 친지나 이웃에게 몇 줄 위로의 글을 날려 보내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탓인지 상대방이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화란 한번 시작하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첫 시작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유튜브’라는 동영상 플랫폼은 무슨 이야기와 사건이 진실인지 분간을 못 하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가 주는 유익한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좋은 내용이 폭포수처럼 너무 많이 쏟아지는 탓에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인공지능(AI)의 등장입니다. AI로 만든 아이들 얼굴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주며 “우리 아이들 아닌 우리 아이들”이라고 한다니 세상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얻고 사는지?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해답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도 목사님도 가만히 보면 모든 것에 해답을 주지 못하고 피하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종종 혼자서 또는 둘이서 조용한 공원을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옷깃을 열고 다가왔습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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