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똥꿈
문희는 오빠 김유신의 계략으로 선덕여왕 왕실의 고위급 인사 김춘추와 여차여차하여 정을 맺는다. 나중에 태종무열왕이 되는 그와 혼인하여 7세기 중반에 왕비가 된 문희는 언니의 꿈을 매입하고 팔자를 고친 셈이다.
그룹 세션. 간밤에 똥을 만지는 꿈을 꿨다고 한 환자가 밑도 끝도 없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한다. 꿈은 속뜻과 겉뜻이 반대일 경우가 많다고 했지. 우리의 무의식은 겉과 속이 반대일 때가 많다니까. 한국의 민속신앙에서 ‘똥꿈’은 재운(財運)을 예고하는 꿈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똥꿈을 꾼 다음 날에 복권을 사는 사람이 왕왕 있다고 나는 말한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속마음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여자를 영화에서 곧잘 본다. 이것을 정신과에서 반동형성(反動形成, reaction formation)이라 한다. 꿈에서는 ‘더러움=깨끗함, 불쾌함=유쾌함’이다. 예지몽(豫知夢) 차원에서 어떤 기쁘기 짝이 없는 해프닝을 예감하며 자다가 똥꿈을 꾼다는 논리의 반동이 너끈히 성립된다.
너희들 중 푸짐한 배변(排便)이 있은 후의 흔쾌한 기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보라. 그룹 전원이 100% 일제히 손을 든다.
그것 봐라. 똥은 냄새가 참 역겹고 보기에 흉할 뿐, 속이 후련하게 뒤를 본 다음에는 기분이 무진장 좋지 않느냐. 복권에 당선돼서 이게 웬 떡이냐, 하는 기쁨과 많이 비슷하지 않겠느냐.
프로이트 또한 똥과 돈의 연관성을 다룬 적이 있다. (1900, 1905, 1908) 그는 아동 성격 발육과정의 항문기에 이루어지는 ‘배변 교육, toilet training’ 동안 아이가 똥을 생산해서 부모에게 “처음으로 주는 선물(first gift)”을 체험한 후 무의식적으로 똥과 물질적 재산이나 소유물 사이의 연관성을 배우게 된다고 가르친다.
똥은 손, 발, 배, 등, 해, 달, 물, 불, 꿈처럼 딱 한 글자로 된 순수 우리말. 누구든 ‘똥꿈’이라 하면 얼른 알아듣지만 ‘대변몽, 大便夢’이라는 한자어는 아예 사전에 없다.
똥꿈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의 민속신앙에서 길몽으로 손꼽힌다. 농경사회에서 똥이 비료로 쓰임으로써 농작물의 풍요를 가져왔기 때문에 ‘똥=재물’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는 학설이 그럴듯하다. 삼국유사의 보희가 꿈에 배설한 강물 같은 오줌발이 서라벌 벌판의 농작물을 위한 비료가 되는 길몽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신은 영국, 독일, 프랑스의 민속 전통에서도 똥꿈이 행운과 재운으로 알려진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어디나 농경사회였나.
1954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shitload’라는 비속어가 있는데 ‘똥 무더기 분량’이라는 직역이 가능하지만, ‘분량이 많다’는 의미다. Merriam-Webster 사전에 두 개의 짧은 예문이 이렇게 나와 있다. “You’re in a shitload of trouble.” - “넌 엄청난 곤경에 빠졌어.” “They have shitloads of money.” - “걔들은 돈이 엄청 많아.”
어떠냐. 똥무더기 분량이라는 표현이 ‘곤경’과 ‘돈’에 똑같이 쓰이지 않았느냐. 곤경=돈? 곤경이건 돈이건 엄청난 것은 도대체가 좋지 않다고? 글쎄다. 관리만 잘한다면 엄청난 돈은 괜찮을 것 같은데.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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